입원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첫 일주일이 부정과 적응의 시간이었다면 그다음은 어떻게든 빨리 벗어나기 위해 의지와 노력을 불태우며 버텨내는 시간들이었다.
오롯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쉽지는 않았고, 특히 병원에 오기 직전의 아이는 가족에게도 감정적 선긋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10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나와의 시간을 수용하는 느낌이었고, 별거 아닌 얘기를 나누는 것에서도 느껴지던 미묘한 거부감과 불편함이 서서히 사라졌다. 주치의와 전담 교수와의 면담을 통해 아이의 성향을 고려한 부모의 태도나 행동지침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앞서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정신병동 입원의 가장 큰 목적은 환자의 안전 확보와 치료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맞는 약물을 찾는 것이었다. 진단과 증상에 맞는 약물을 처방하지만 환자에 따라 약물의 흡수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약물치료 효과 역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입원 기간 동안 꾸준히 채혈을 통한 약물농도검사와 각종 신체진단검사를 진행하며 최적화된 약물의 농도를 맞추게 된다. 또한 매일 주치의와 면담, 종합심리검사, 사회복지사 면담, 분야별 치료 프로그램 참여하며 부정적 사고 패턴들을 인식, 파악하고 대안적 생각으로 전환시키는 연습을 했다.
나는 나대로 아이의 치료를 위해 부모용 설문지를 작성하고 아이에 대한 정보들을 제공했다.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나와 아이를 상처 입히던 것과 부모로서 나의 태도나 생각들을 돌아보며 상황과 감정들을 나름 객관적으로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진료과 입원병동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환자도 보호자도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특정 프로그램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며 절제된 소통을 나누기는 하지만 무료한 시간을 달래며 함께 tv를 보거나 수다를 떨기도 하는 다른 입원병동에서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각자의 감정공간과 시간들에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기술과 인터넷의 발달로 타인의 삶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고 소통이 가능한 시대다. 다양한 편리와 각종 정보의 풍요를 누리지만 그만큼 자신을 온전히 마주하고 챙기기도 쉽지 않다. 병동에는 그렇게 자신을 돌보지 못한 마음 여린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드라마 속에서나 볼 법한 환자들의 모습이나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놀라기도, 무섭기도, 슬프기도 했지만 아이도 다른 환자들도 결국엔 자기 자신을 욕심껏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버거웠던 사람들이었다.
전공의 파업 사태로 4인실을 1인실처럼 사용할 수 있어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연히 보게 되는 다른 병실은 갈등과 슬픔이 더 많아 보여서 (내가 보기에 비교적 안정적인) 아이의 상태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곳에서 상대적인 걸 찾는다는 게 이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다른 환자들만큼 (적어도) 나는 힘들지도, 아프지는 않으니까 내 힘을 아이에게 나누어 줘야겠다는 의지가 생기기도 했다.
새로운 경험이 주는 짬짬의 긍정 순간들은 나를 버티게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첫 산책이 허락된 이후로 병실을 탈출해 시간을 꽉꽉 채워 환기를 누렸다. 물론 병원을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별거 없는 편의점에서 매일 간식 쇼핑을 하고(병원생활 중 편의점 결제액은 살면서 이용했던 편의점 결제액을 넘어섰다)
원내 카페에서 달콤한 딸기타르트를 사 먹으며 작은 행복을 느끼고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스크림 콘을 병실에 반입해 먹던 날은 아이스크림을 세상처음 먹는 사람처럼 감동했다.
비가 오는 어느 날은 병실의 통창에 새겨지는 실빛줄기 그림이 어떤 예술작품보다 아름다웠다.
비록 자유는 뺏겼지만, 잊고 있던 일상의 소중함을 순간순간 느낄 수 있었다.
약간의 수전증, 두통, 시야 흐림, 변비, 체중 증가 등 부작용을 보이기도 했지만 즉각적인 관찰과 피드백을 지속하며 약물처방이 맞춰지면서 적당한 적응과 함께 반복되는 일상의 안정감으로 우리는 조금씩 좋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의사가 제안하는 다양한 치료과정을 거치면서 컨디션도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다.
꽉 찬 2주일이 지나고, 3주가 지나고, 4주째에 들어서면서 조바심을 내면 안 된다고, 천천히 생각하자고 다짐하면서도 쉽지 않은 시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한숨 쉬고 다시 나아가야지.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자.. 라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보호자의 마음이 바빠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아이와 속도를 맞춰야 하는 걸 잊으면 안 되었다.
아이는 느린 속도로 “자신이 좋은 점”을 찾아가고 있었다.
“내가 나를 좋아하는 것”
누군가에게는 너무 쉽고 당연한 일이 아이에게는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이자 앞으로도 살아갈 이유가 될 것이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아이
자신이 좋은 것들을 찾아가는 아이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막연한 불안과 걱정을 키우는 생각이 아니라 목적이 있는 시간들이라… 안쓰럽기는 하면서도 응원을 해야 했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다양한 환자의 이야기들은 슬픈 결말로 안타까움을 보여주기도 하고, 길을 찾아가는 결말을 보여주기도 했다.
깊이 감정을 이입하며 공부하듯이 시청한 드라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허구였지만,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밤을 지나 반짝한 아침을 맞이할 거라는 희망 메시지는 믿고 싶었다.
아이의 치료 프로그램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자주 바라보던 풍경이 있었다.
비상구 표지판을 머금은 창가 풍경.
아이도 다른 환자들도 병동 밖으로의 외출이 제한되기에 운동삼아 걷던 복도의 끝에 있던 창가는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아이와 나는 창가에 서서 탈출(퇴원)을 꿈꾸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온전히 아이와 시간을 공유했던 그 시간이 종종 그립기도 하다.
우리는 드디어 4주 차에 외박(퇴원 전 일상 적응의 시간)을 허락받았고, 복귀 후 바로 퇴원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