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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먹는 여우 Sep 04. 2024

단순한 열정 -by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by 아니 에르노-

누구나 사랑을 안다고 말하지만 그 사랑을 온전히 다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랑만큼 모순된 감정이 또 있을까?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사랑일수록 그 내면에서는 치열한 고뇌가 있다. 열정의 크기만큼 고통의 깊이도 깊어진다. 열정적인 사랑은 가장 황홀하고, 행복한 순간을 선사하면서도 동시에 그 뒤에는 불안, 집착, 질투, 슬픔, 고통이라는 감정이 뒤따른다. 마치 죽음이 있어 삶이 있고 삶이 있어 죽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강렬한 감정일 것이다. 사랑이 문학과 예술의 단골 소재가 되는 이유이며, 문학과 예술 속 사랑을 통해 사랑과 욕망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공감하기도 한다.


어떤 사랑을 경험해 보았나요? 지독했던 사랑의 감정, 숨 막혔던 열정, 그리고 고통스러웠던 상실의 슬픔...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원제 "Passion Simple"은 40대 후반의 작가가  38세였던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을 만나 뜨겁게 사랑하고 이별하며 겪었던 이야기로 열병과도 같았던 사랑과 그 사랑이 끝난 후의 내면의 심리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아냈다.


"단순한 열정"이라 쓰고 결코 "단순하지 않았던 열정"이라고 읽어야 했던 소설이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 대부분은 스스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소설 역시 자신의 온몸과 영혼을 뒤덮었던 한 남자와의 치열한 사랑의 기억을 고백한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p.11)


모든 것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있었다. 그녀에게는 그때가 끝내고 싶지 않을 만큼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라고 기억한다. 하지만 모순적인 사랑의 속성 때문일까?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 사랑에 대한 불안과 고통도 따라서 커져만 간다.

그녀는 그토록 기다리던 그 남자가 찾아오는 순간이 오면 항상 온 신경이 곤두서면서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p.14)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해서 두 사람의 약속이 깨지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시달렸다.(p.15) 그 남자와 함께 하는 시간은 단지 몇 시간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려 애써야만 했다.


도대체 현재란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나를 관통하여 지나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을 뿐이었다(p.16-17)


사랑을 할 때마다 서로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음을,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음을 자각한다.(p.17)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고통과 불안은 점점 커졌다. 그의 전화를 받지 못한 채로 여러 날이 지나면 그 사람이 자신을 떠난 게 틀림없다고 단정 짓곤 했으며, (p.18) 언젠가 그 사람이 다른 여자에게 욕망을 품게 될 것이라는 것도 예감했다.(p.19) 그토록 기다리던 그의 전화가 도착한 순간에도 여전히 고통스러운 긴장감에서 놓여나지 못했다.(p.39) 그에 대한 열정이 깊어질수록 그 사람과의 이별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나는 언젠가 그 사람이 떠나는 순간이 올 거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나는 고통스러운 미래의 쾌락 속에 살고 있었다.(p.39)


그 남자와의 사랑이 시작된 직후부터 줄곧 그녀를 따라다닌 불안과 고통 때문에 그녀는 이별을 고민하고 여러 차례 결심도 하지만, 그 남자가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내 포기하고 만다. 결국 예감대로 남자는 떠났고, 사랑을 상실한 이후 그녀가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시간들은 그녀의 열정의 크기만큼이나 고통스러웠고 무기력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라는 말이 있다. 폭풍 같은 사랑에 대한 기억도 그리움도 결국 흐르는 시간 앞에, 세월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그녀는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그 남자에 대한 열정을 목도한다. 흐릿해지는 기억 앞에서 그녀는 무엇을 하려 했을까? 강렬하게 휘몰아친 열정 이후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에서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그녀는 잊혀 가는 그 남자와의 기억을 붙잡아 두기 위해 기록한다. 스스로 고백한다. 자신은 여전히 그 남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미련인가? 집착인가? 굳이 사그라들던 사랑의 기억을 들춰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보통 잊어야 할 것들을 서둘러 잊기 위해 그와 관련된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킨다. 하지만 작가 아니 에르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사랑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그녀에게 마치 꺼져가는 재를 뒤적거려 다시 불씨를 살리려는 듯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사랑의 열정, 그때의 롤러코스터 같았던 감정들과 다시 마주함으로써 진정한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감정 일기를 써 보았다면 알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면 좀 더 명료해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는,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립스틱을 고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p.52)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p.66)

사랑에 대한 여성의 욕망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은 여전히 지난한 일이다. 열정 속에서 살아갈 때는 느끼지 못했던 '부끄러움'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던 것도 '출판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세인들의 정상적인 가치 기준과 판단' 때문이었다. 소설의 첫 페이지가 흐릿한 TV화면 속 포르노 영화의 한 장면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도 아마 작가의 의도된 장치일 것이라 추측해 본다. 포르노 영화를 처음 보았던 자신도 당혹스러움을 경험했지만 여러 세대가 지난 지금은 자연스러운 장면이 된 것처럼 자신의 이 글 또한 그러할 것이라고 말이다.


“아마도 이번 글쓰기는 이런 정사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인상, 고통, 당혹스러움, 그리고 도덕적 판단이 유보된 상태에 줄곧 매달리게 될 것 같다,” (p.10)

이 소설을 읽으며 놀라웠던 점은 연애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내면의 심리 묘사이다.

때로, 그 사람이 내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건 아닐까 자문해보기도 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태연히 잠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하고 웃는 그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p.33)
그가 분명히 다른 곳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이탈리앵 거리를 진땀을 흘리며 걸었다.(p.38)
나를 처음 만난 날 내게 그랬던 것처럼 어떤 여자 곁에 서서 환심을 사기 위해 웃고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p.40)
나는 그 사람이 곁에 없을 때조차도 상상과 욕망으로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p.45)
호텔이나 공항에서 그 사람과 우연히 마주친다거나 그 사람이 내게 편지를 보내올 경우를 상상해 보았다. 그 사람이 하지도 않은 말에 대답하고, 보내지 않을 편지에 답장을 하기도 했다.(p.48)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낙심하여 잠자리에 들면서 비로소 내가 하루 종일 그 사람이 정말로 전화해 줄 것으로 믿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p.49)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 보편적인 경험으로 확장되어 공감을 이끌어내는 순간이다.


사랑 앞에서 미혹되는 이유가 사랑의 두 얼굴. 이율배반적인 사랑의 속성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해 본다. 다시 페이지로 돌아가면, 흐릿한 화면과 지글거리는 소음. 희미한 영상 속 두 남녀에게서 희미해져 가는 기억 속의 작가 본인과 그 남자가 떠올려지게 되는 것은 결국 사랑이란 남녀의 육체적인 결합과 같은 단순함이 본질이라는 알아챔일까? 사랑은 유치할수록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그 단순함이 사랑을 더 열정적으로 만드는 것일 수도 있겠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 사랑을 상실해 가슴 아파하고 있다면 아니 에르노의 결코 단순하지 않았던 열정을 마주하며 위로받기를….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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