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의에 빠진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사고의 전환
끊임없이 그리고 변함없이 흐르는 시간과 세월 속에서,
우리들도 지속적으로 흔들림 없이 앞만 보고 자신의 길을 걷고자 노력하지만,
걷는 도중에 경험하는 수시로 외부에서 때로는 내 안에서 불어 닥치는 폭풍우와 회오리바람으로,
어느 순간 갑자기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방황의 진창으로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시간들을 겪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단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삶이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풀려가는 것 같아서 긴장이 풀리게 되면 불현듯 찾아오는 내면의 또 다른 내가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
이때가 위기일 수 있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순간의 욕망이 나를 주체할 수 없도록 마음의 빗장을 여지없이 파괴시켜 버리는 것!
그리고는 그 욕망의 늪으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빠져들어 가게 된다.
아! 이것이 나의 한계인가?
이것이 나의 실상, 나의 본모습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 결과는?
그렇다! 남는 것은 결국 후회와 탄식......
중요한 것은 바로 이때다.
As soon as possible(ASAP), 이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혹시라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늪 속에서 허우적 거린다면 위기와 슬럼프가 이어질 것이다.
나 자신조차도 나를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은 수시로 발생한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로마서 제7장 제21~23절)"
신약성경 로마서를 기술한 믿음의 사도 바울조차도 자신의 내면의 갈등을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지금까지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 선생님께서 솔직하게 고백하신 이 말씀을 간직하고 있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특히 나 자신이 그러한 갈등과 고민에 빠져 괴로움을 겪는 때에는 이 바울의 고백에 위로와 연민에 빠진다.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한 용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용서 하면서 왜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겠는가?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태복음 제18장 제21~22절)"
그렇다고 용서받기 위해서 계속 잘못을 저지를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어차피 용서받을 것이니 계속 잘못을 범한다는 것 또한 올바른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 나는 이러한 상황 속에 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나를 용서하고 싶다.
이제 다시 일어나야 할 때다.
주저앉아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귀하다.
오늘은 어제 병상에 누워 오늘 하루의 삶을 더 살기를 간절히 원했던 환우들의 날이기 때문이며 그만큼 나에게도 의미있는 오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도 나는 그분에게 용서를 받는 날이다.
그래서 더 겸손해져야 겠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이사야 제60장 제1절)"
할렐루야!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