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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UK Sep 04. 2024

PROLOG : 감정의 밑바닥

가족, 친구, 연인, 사람, 운명, 감정, 그리고 나 자신

_____을/를 잃었다.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흘러가고 있다.

정착역에 멈춰 서서 서성이다가 자리에 앉아 심호흡을 깊게 해 본다.

다른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저 지나가는 태풍이 아니라 내 옆에 없었던 비처럼 가끔씩 찾아오는 통증일 것 같다. 그리고 염치없게도 그저 지나가는 소나기이길 빌어본다.

상처 주고 오해라고 말해봤자 그 틈을 좁히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걸까. 상처를 주고도 내가 더 아팠다.

기다리는 게 힘든 건 아니었다. 기다리다가 다칠까 걱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기심이 걱정하는 마음보다 커져버려서 고통을 감내하도록 해야 했다.

우습게도, 미워하는 마음도 보고 싶은 마음도 다 진심이었다.

기다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내 오산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성에 나 혼자 기다리는 사람처럼 끝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함에도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더 아픈 사람은 없다.

누가 더 상처의 개수가 많은지 그뿐이다.

탓을 하고 싶다가도 네게 남겨진 흉터를 들어낼까 봐 그게 더 두려워져 한 발자국 물러난다.

이러다 영영 멀어질까 봐 두려우면서도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음에도 서로의 흉터와 아픔의 자국을 보고 있음에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돌아설 때의 발걸음은 그 어떤 것보다 무겁다.

그리고 이내 두려움이라는 큰 파도가 들이닥친다.

서로가 전부가 아니었다. 다른 방법도 여러 가지 있었다.

다가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서성거리며 곪아서 터질 것 같은 큰 상처는 감춘 채 애써 웃어 보인다.

서로의 진심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너는 내가 나는 네가 잘 되길 비는 것도 모두 진심이었고 그게 사랑인 줄 알면서도 나는 끝내 멈추어 버린 것뿐.


정말 우습게도, 사랑하는 마음도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도 진심이었다.

나를 바라봐주면 하면서도 잘 가라는 말과 함께 떠나 주기도 바랐다.

너무 큰 욕심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내가 뭐라고 너무 큰 욕심을 품어버리고 뜨거운 햇살이라도 만지듯이 온전히 가지지도 못했다. 결국 그 햇살은 떠나버리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미련 때문이 아니다. 널 사랑하는 마음이다.

진심으로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이다.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차라리 간다는 말이라도 하고 떠났으면 덜 슬프고 덜 상처받았을 텐데.

너도 나도 서로에게 상처 주는 모습을 생각해 본 적 없어서 상상해 본 적 없어서 그리고 믿기 힘들어서 기다릴 뿐이다.

이제 나는 너에게 다가갈 용기도 없고 방법도 모른다.

알더라도 할 수 없고 내 상처도 치료하기 바쁘다.

나에게 마음의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결말이 달라졌을까.

정말 달라졌을까. 잘 모르겠다.

먼저 다가오지 않으면 이제 나는 방법이 없다.


 


 

궁금한 건 있다.

너도 나를  _____으로/로 생각했는지.

분명 나한테까지 다가오지 못했다는 건 너에게 있는 상처 때문이었겠지.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겠지. 내가 모르는 상황이 있었겠지.

그렇게 1주, 2주... 한 달, 두 달...

내가 먼저 계속 다가가면 먼저 다가오는 날이 있겠지. 하면서 기다리기를 몇 주 더...

그러다 문득 정말 나와 이야기할 생각이 없는 거면 어쩌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보물하나가 손가락 사이로 없어지는 걸 눈으로만 보고 있자니 너무 괴로웠다.

그런데 그 보물은 없어지려고 작정한 게 아니다. 어쩌면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 분명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걸 몰랐던 나는 야속하게도 이제 와서야 뒤돌아본다.

그리고 떠나지 말라고 후회하는 모습은 누가보아도 초라해 보이고 나쁜 악역처럼 느껴진다.

세상에 악역 같은 게 어디 있어 다 만들어진 거지.라고 생각했던 나도 그 악역은 내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아이러니라니. 웃음도 울음도 나오지 않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웃기는 소리다. 소식이 없는데 나쁜지 좋은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기다리는 사람이 다 자기 마음 편하자고 하는 소리이다.

어쩜 이렇게 나만 알고 이기적일 수 있을까.

오만하고 오해와 증오에 빠져사는 이기적인 나 자신이 밉다.

나도 나 자신이 싫고 그 행동이 다 드러날 텐데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누군가 상처받았을까 봐 그것도 두렵다.

이제 그만하자.

다 끝났다.

_____을/를 잃었다.

그리고 이건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the end








사람 마음을 다 알 수는 없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었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었으면 싶다가도 태풍처럼 모든 것을 쓸고 가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자 저기 아래에 있는 내 감정의 밑바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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