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nly way to learn is to live
그런 날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그래 오늘만은 꼭 살고 싶어지는 그런 날.
별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으면서
눈물은 항상 애교 살 위로 두텁게 있고
물방울은 내려가지도 삼켜지지도 않게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툭 거드리면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러나 나는 절대 울지 않는다
울어서는 안 된다 절망 같던 내 삶은 끝나도 된다는 것처럼 선고 내리는 기분이니까
항상 유서를 들고 다닌다 누가 읽을지도 모르는 그 유서는 내 품에 있다
아
내가 죽으면 오는 이가 없겠구나
하다가도 운명적인 만남으로 누군가 나를 봐줬으면 하는 그런 생각으로
참 웃기지 누가 나를 봐준다고
그래도 죽는 날 그 하루만은 밝은 기운이 몰려올 것 같기도 하다 죽으면 편해질까 이것도 웃긴 소리다
그래 어쨌든 지금은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삶을 연명하고 있는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나도 그들에게 개미 다리만큼도 관심 없는 걸 그러니 그들에게 나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런 날이 있다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어도 오늘만은 살고 싶어지는 그런 날
항상 옷은 검은색, 검은 네일, 검은 머리에 검은 가방 꼭 누구 장례식에 가는 것처럼 그게 내 장례식이 되려나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품으면서
좋아하는 건 날아가는 검은 새들과 그래 검은 사진들 그리고 몸 구석에 있는 영정사진과 유서. 그런 걸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거였나 나에겐 사치일 뿐인데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고 출근길에 몸이 끼여 출근을 해도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인사 비참함을 느낄 새도 없이 어제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갖고 오라며 윽박지르는 상사 XX
그래 이 정도는 늘 있는 일 어디를 가도 이 정도는 힘들 거 이해한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오후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태풍 번개가 치면서. 1년 중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날은 처음이었다 예정에도 없었던 비. 마치 이 건물도 이 세계도 전부 쓸어버려 없애줄 것처럼 마치 그래줄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쓰나미가 밀려와 곧 건물이 잠길거라는 경보였다 나를 X같이 쳐다보던 시선들이 전부 이제야 두려움에 휩싸여 몸을 덜덜 떨었다 역겨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나를 괴롭혀 놓고 무서운 건 무서운가 보지 그래 내가 사이코인 걸까 그중 나만 웃고 있었다 오직 나만
유서는 종이로만 쓰지 말걸 글로 어딘가 남겨둘걸
옥상으로 대피한 나는 결국 살았고 더 이상 태풍도 쓰나미도 밀려오지 않았다 오직 나만이 그중 나만이 살았다
아아 이걸 위해 나는 오늘까지 살았던 건가
구겨진 유서를 들어 올려 싸구려 폰에 유서를 적기 시작했다
안녕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야
이 유서를 본다면 난 죽었겠구나
매일을 유서만을 고치며 살았는데 용케도 지금까지 살았구나 삶이라는 것이 참 덧없지 울고 싶다가도 웃고 웃고 싶다가도 울고 말이야 죽고 싶다가도 살고 싶어 지니
내 시신을 발견한다면 무덤 말고 유골을 바다에 뿌려줘 동해바다였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 다 거기 계시거든
무리한 부탁이라면 안 해도 괜찮아 고마워
더 쓸 말이 없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줘서 고마워 차마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은 못 하겠다 모든 날이 힘들었으니 그래도 내가 죽은 그날만큼은 눈부셨겠다
잘 가 안녕
이름 모를 누군가가
그 후의 이야기는 나도 모른다
나는 그 유서를 발견한 누군가이고 유서를 발견한 후에 지어낸 이야기처럼 쓴 말들 뿐이니까
맞다 유서 빼고는 모두 지어낸 이야기다 죽기로 결심한 사람의 마음을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유서는 진짜였다 그 쓰나미로 생존자는 없었다
시신은 수습하여 동해바다에 잘 뿌려주었다
그 시신인지 어떻게 알았냐고? 건물 옥상에 피를 흘린 채 누워있는 시신 옆에 유서가 있었으니까
그래도 시신이 죽은 시간대는 태풍이 끝나고 해가 번쩍 뜬 시간대였다 아마 그래서 눈부시다고 적은 걸까 나로선 이해하기 힘들었다
도저히 알 수 없는 감정이었지만 차마 지우기도 힘든 감정이다 죽은 사람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눈물이 났다
잘 가 누군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