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 추모글
故 류이치 사카모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은 언젠가 나를 아프게 한다.
사랑하고 싶지 않아도 사랑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면,
내 품을 파고드는 큰 골든 레트리버
여유롭게 하품하는 검은색 고양이
머리가 복잡할 때 내 곁에 있어 주는 친구 또는 연인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는 엄마
씻고 나와서 로션을 바르고 누웠을 때 느껴지는 따스한 이불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들을 나는 사랑한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그렇게 사랑하는 걸로 나를 채우다 보면 어느새 행복하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내가 웃고 있다는 걸 느낀다
사랑이라는 게 어렵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그리워하게 되면 그때 나의 불행은 시작된다
그리움과 사랑은 한 끗 차이라 내가 그렇게 정해버리면 이제 더 이상 그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그리움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립지만 사랑하는 것들
그것들이 나를 아프게 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이 모든 건 내가 정한 나만의 틀이었다는 걸 조금 후에 깨닫는다
내가 만든 틀에 갇혀 버린 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그저 그것들을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되는 순간들에 나는 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네가 먼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죽기 전에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야 하니까 이 사랑을 끝내야 하니까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너를 좋아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세상에 영원한 건 없듯이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도 한순간 일 거야 아니 그랬으면 좋겠어
내가 아프지 않게 너를 사랑하면서 잠식되지 않도록
인생은 짧고 사랑은 어렵다지
그러나 내 인생은 너무 길게 느껴지고 사랑은 너무 쉽다
사랑이 뭐 별거 인가
내가 애정을 쏟고 좋아하고 생각하면 사랑 아닌가
사랑보다는 사람이 사람보다는 인생이 더 어렵다
나도 사랑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사랑이었나 의심이 든다
난 사랑을 하면서 나 자신이 채워진 적이 없는데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된 적이 없는데
나는 사랑을 하며 볼품없는 나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런데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는 나는 혼자 사랑을 한 거다
홀로 누군가를 사랑했던 거다
그러니까, 그러니...
네가 날 채워줬으면 좋겠어 사랑으로
이 글을 쓰고 나서야 류이치 사카모토 씨가 죽었다는 게, 여기 없다는 게 실감이 난다. 이젠 받아들여야겠지. 내 우울을 음악으로 승화시켜 주신 그의 음악은 내겐 단순히 음악이 아니었다. 너무 슬프지만 남긴 음악을 들으며 달래 본다. 감사하다는 말로 다 표현 못하지만 감사했습니다.
(본 글은 류이치 사카모토 씨가 별이 된 2023년 3월 28일 직후에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