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감에 대해

by Aroana

코로나로 관계의 단절이 극에 달했던 날이 있었다. 이 때 나는 카페에 가서 짧은 글 하나를 지었다. 이유는 괜스레 버려진 것 같은 나 자신을 위해서 였다.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지독한 관계의 고립감을 맞이해야 했던 내 바로 아랫세대를 위로하고 싶어서 였다.


서른 한 살, 누구보다 관계 형성에 목이 말랐던 나는 코로나로 인해 전체적으로 외부활동이 침체 됐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 어디서든 내 인연을 찾아보고자 불철주야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두 번째 에세이에 대한 초안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나는 주말만 되면 소모임 앱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간을 내어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다행히 그 때는 아직 코로나가 심하지 않은 때였다. 세계적으로는 나라별 셧다운을 시행할 만큼 심각했으나 우리나라는 초반의 방역이 잘 진행된 덕분에 감염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지 않고 있었다. '권고 자제' 덕분에 모임의 갯수가 늘지는 않았지만 참여가 기대되는 모임은 많았다. 나는 독서모임과 토론 모임 두 가지를 병행하며 서울에서의 인연들을 만들어 나가는 데 노력했다.


한 두번 참여 횟수가 늘어나고 술자리를 갖는 등 친목의 관계가 형성될 쯤에 코로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일었다. 곧이어 정부가 사적모임에 대해 규제를 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렵게 통성명을 주고 받았던 사람들과의 만남은 이제 기약 없는 신세로 전락돼 버렸다. 코로나 때문에 내 책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이번엔 사교모임도 막는다는 생각이 들자 억울함이 밀려왔다.


'불필요한 외부활동은 삼가 주시고 당분간은 친목활동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사람 간의 인연은 어디서 쌓아야 하고 나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서 사람들을 만나야 하지?"

"하.. 나는 진짜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구나..."


정부에서 나오는 저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 들여야 할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 해야 하는지 선뜻 분간이 서질 않았다. 그러던 와 중에 캐주얼 바에서 일하던 출근 일수가 매상 감소로 줄게 되었다. 초반에는 내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어 글 쓰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해 좋아했는데, 이는 어느 덧 생계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침범해 버렸다. 수입은 줄고 외로움은 커지는 데 연락하는 친구들마저 각자의 사정으로 줄었다. 그렇게 결국 혼자 책을 읽고 또 홀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여유로운 날, 일부로 멋을 내고는 밖을 나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카페에 갔다. 그곳에서 아메리카노와 함께 노트북에 썼던 글엔 전부 우울과 외로움이 터진 채 감정이 짙게 베기 일쑤였다.


스스로와의 대화에 지쳐 사람을 만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관계의 고립을 권유한 정부의 규제는 밖을 나가보려는 내 의지를 상실케 했다.


"아.. 진짜 거지같은 세상이다."


어느새 나는 소속된 단체 카톡방을 모두 나가 버리고 채팅의 상위 목록에는 곧 내 프로필만이 올라와 버렸다.

젠장할.. 안될 놈은 안 되는 가 보다.



당시 썼던 글.


이삼십 대와 혼돈의 삶에 대해


너의 세대는

그리고 나의 세대는

어쩌면 버려졌는지도 모르겠다.


어둠의 터널을 지나

칠흑 같은 앞날을 마주하면서도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하며

그 누구에게도 의지를 거부당했다.


우리가 배워왔던 사회와

당장에 마주하는 현실은

다름을 넘어 배신에 가깝다.

우리가 부딪히는 현실과

앞으로 겪게 되는 미래는

연대가 아닌 철저한 고립

체념만이 짊어줄 무게이다.


어쩌다 태어나져버린 삶 속에

어떻게든 살아야할 사회 안에서

찢기고 내처지면서 버티고 있지만

처음 겪는 사회의 민낯은

너무나 낯설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 힘도 없지만

짊어질 책임만은 커지기에

우리 세대는 오늘도 두렵고

너의 세대는 오늘도 쓰렸다.


혼돈의 삶

너의 세대

그리고 나의 세대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해줄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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