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면접에서

by Aroana

애널리스트로서의 꿈이 좌절된 후 일정기간 방황을 거쳐 취준생 시절을 맞았다. 해놓은 것이라곤 금융과 재무 자격증 일부를 취득한 것이 고작이었고 끗발 있는 자격증이 아니었기에 내 진로는 험난함이 예상되었다. 정말 원하는 분야에서 한 번은 일을 해보고 싶었다. 배워왔던 금융·재무 지식을 현장에서 딱 한번은 활용해보고 싶었다. 결국 회계, 재무, 경영지원 분야 등의 일자리를 알아보다 상장기업의 IR(공시업무)을 컨설팅해주는 어느 회사의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이전의 평범한 이력서와는 달리 이번 지원서에는 내가 가진 진정성을 보여 주고 싶었다. 재무보다는 기업의 IR팀에게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무가 나에게 더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모르면 배울 의자가 충만했고 컨설턴트로서 성장하고 싶은 욕심이 누구보다 강함을 어필했다. 최선을 다해 작성한 이력서는 다행히 서류전형에서 통과 되었다. 나는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며 다가오는 면접날을 대비했다.


과제는 코스피 / 코스닥 시장에서 유망 기업을 골라 투자 포인트를 PPT 3장으로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DART(전자공시시스템)를 통해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즐겨 봤던 나는 나만의 유망기업 찾기에 흥미를 느껴 과제를 재미있게 수행했다. 면접날이 밝았고 도착한 회사의 사무실은 금융의 도시인 여의도 한복판에 위치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금융·재무 지식은 자신 있었다. 최선을 다해 요약정리한 PPT를 통해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논리적 근거로 답할 수 있을 만큼 준비를 철저히 했다. 그러나 면접이 시작되고 상황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취업시장에서 내가 가진 객관적 역량이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1대1로 치러진 면접에서 대표는 PPT를 흘깃 보더니 곧바로 내 이력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선 나에게 질문을 던지기 보단 이 업의 생태계를 말하기 시작했다.


"컨설턴트로서의 역량은 고객사가 컨설턴트에게 신뢰감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능력, 고객은 그 점을 가장 높게 평가합니다. 그런데 대익씨는 학교 어디 나왔죠?"

"네. 저는 대전의 xx대를 졸업했습니다."

"과는 요?"

"과는 무역학을 전공했습니다."

"고객이 대익씨의 스펙을 믿고 일을 맡겼을 때 과연 신뢰감이 들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

"네?, 저는.."

"그게 아니라(말문을 자르며) 저도 서울대 경영학과 나오고 이 바닥에서 10년 넘게 일을 해왔지만 여기가 엄청 경쟁이 치열한 곳이에요. 함부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살벌한 경쟁과 능력을 요구하는 곳이란 말이에요. 컨설턴트란 직업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직업이 아닙니다."


그의 조곤조곤한 말투는 배려가 아닌 상대에 대한 철저한 '비아냥'이었다. 차라리 그냥 마음에 안 든다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될 걸, 대표는 조언이랍시고 지원자의 스펙을 겨냥해 대놓고 무시하는 말투로 훈계했다. 마치 내가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기라도 한 것 마냥 대표는 계속 업계에서 요구되는 '능력'만을 강조했다.


더러운 기분에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취준생이었고 그의 다그침에 나는 '그래도'를 연발하며 어떻게든 내가 가진 역량을 강조하려 노력했다. 준비한 PPT에서는 질문 하나 나오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나는 허리 숙여 인사를 하는 등 매너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 결과에 대한 연락도 전달해주지 않는 그런 같잖은 회사였다.


흔하디 흔한 면접이라고 치부하고 싶었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사회는 냉정했고 내 이력서는 분명 한계가 있는 스펙임이 자명했다. 분했지만 내가 가졌던 욕심이 지나쳤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름 모든 과정을 정성스럽게 준비했건만 결과는 '더러운 탈락', 이 날 있었던 면접은 다른 때와는 달리 유난히 수치심이 느껴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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