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 한 마디면 됐었는데...

by Aroana

기자가 되고 난 후 나에게 글쓰기가 허락된 요일은 금요일과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글쓰기를 가장 안정된 상태에서 쓰는 것을 선호했다. 그러자면 실질적으로 글빨이 가장 잘 받는 요일을 선택해야 했고 나에게는 그 날이 토요일이었다. 그래서 토요일만 되면 온갖 감성에 젖은 채 글을 쓰려 시도하다 실패하는 날이 참 많았다.


기자 였을 때 나는 내 글을 참 못 썼다. 얼마나 못 썻냐면 도저히 문장형으로 완성시킬 자신이 없어 그냥 시와 산문 어딘가에 걸친 글들이 전체의 80%를 차지했다. 마음은 온갖 스트레스와 외로움, 공허감을 느끼는데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너무 서툴렀다. 어떻게 운을 띄어야 할지 막막했고 나아가선 노트북에 전원 버튼을 누르는 것 마저 힘들었다.


왜 그렇게 힘이 들었을까를 고민해보면 아니러니하게도 내가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업이 기자였고 일주일에 8~11개가 넘는 크고 작은 기사들을 도맡다 보니 한 주의 대부분을 '고민' 하는 데만 집중했다. 매일 매일 '일일보고'에 올릴 내용을 걱정해야 했고 힘겹게 보낸 다음에는 도저히 내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목요일에 마감을 치고 난 당일에는 이미 밤을 샌 상태 임에도 기어이 술을 마시고 잠을 잤다. 금요일에는 전날의 짧은 혼술이 못내 아쉬워 이를 연장했고 토요일에는 혼자 남겨지는 것이 싫어 술을 마셨다. 일요일 오후에는 월요일에 취재할 기삿거리를 찾아보느라 노트북에 눈이 빠지도록 달려들고는 결국 이를 술로 달랬다. 그렇게 3일을 늘 무언가에 쫒겨 가면서도 결말은 술로 채웠다.


기자로 있었던 시절, 나는 도대체 무슨 글을 그렇게 쓰고 싶었던 걸까? 사실 돌이켜 보면 그 때는 '힘들다'는 말을 많이 내뱉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늦은 퇴근과 새벽에도 일어나 기사를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누를 때가 많았다. 그러나 가족과 '하고 싶은 일'과 관련해 지독한 트러블을 겪은 이후 나는 내 약한 점을 결코 가족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기로 했다. 겉으로 보면 괜찮았던 직업이었기에, 그리고 분명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기에 나는 절반은 내 감정을 뭉개고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꽁꽁 숨겨놓기 바빴다. 결국 바깥에서 보여지는 내 모습은 진솔하지 못했다. 나는 이 감정을 그저 '답답하다'고만 토로한 후 모든 처해있는 상황을 무마시키려 했다. 세상에서 가장 의미없는 단어, '답답하다'는 내 무의식적인 감정이 드러내 보이기엔 너무나 많은 한계를 지닌 어휘였다.


2021년 4월 25일, 내 블로그에 쓴 '답답하네' 편의 글을 다시 읽어보며 이번 글을 적어봤다. 이 때 당시 나는 '왜 사는 여건은 나아지고 있는데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그 때의 상황에 젖어보니, 나는 이 때 분명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힘든 감정을 낯설어했다. 그리고 겨우 대체해보겠다고 했던 말이 고작 '답답하다' 였다.


"힘들다고!,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고!, 존나 힘들어서 그 어떤 글도 써지지 않는다고!"


그 날 내 블로그 글에는 어쩌면 이 한 줄이 꼭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당시 썼던 글

2021년. 4월. 25일. 0:08분

'답답하네'


정말 어렵게 시간 내서 지금 이렇게 분위기 잡고 글을 쓰려 하는데..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하.. 이것 참 난감하네..

머릿속에는 이것도 쓰고 싶고 저것도 쓰고 싶은데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까먹은 것 같다. 이럴려고 기자된게 아닌데..

최근에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매번 배운다 배운다 말로만 하다가 기어코 집 근처 학원에 가서 바로 결제를 하고 한 달 조금 넘게 다니고 있다. 그리고 결국엔 피아노를 샀다. 그것도 70만원대의 피아노로.. 하.. 돈도 없는데..

일이 정말 미치게 바쁘게 매주 마감 전 날에는 밤을 새지만 공허함,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나름 피아노를 치면서 취미생활도 하고 다시 런닝도 하면서 뭔가를 하려는 노력은 하는데 분명히 어딘가에서 계속 공허함을 느낀다. 이게 무슨 감정일까?

그래도 예전에는 이런 감정을 글로 표현하려 했는데 요새는 그것마저 쉽지가 않다. 기사에 치이다 보면 정말 내 글을 쓰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뭔가를 생각하고 구상한다는 것 자체에서부터가 스트레스다. 그냥 막 머리를 식히고 싶다. 매번 쓰고 싶다 쓰고 싶다 생각은 하지만 노트북을 켜기까지의 과정이 참 어려운 것 같다. 나도 쉬고 싶고 놀고 싶고 자고 싶다.

책을 2권이나 써봤지만 이렇게 글 쓰는 게 어려울 줄이야... 그 때 그 때 감정을 표현하는 짧은 에세이도 좀 쓰려 하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다. 그냥 다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중략)


여기저기 모임을 통해 사람들도 만나보고 하는데 모르겠다. 그냥 일회성으로만 그치고 나도 뭐 적극적으로 관심을 안 가지니까 그냥 딱 거기서 끝나는 것 같다. 새로운 관계를 좀 만들어보고 싶은데 이번에는 유독 어려운 것 같다.(중략) 기자로 일하면서 다양한 회사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다들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만 한다. 물론 내가 물어봐서 그런 것도 있지만 결혼, 집, 회사 등 아직 친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너무 뻔한 주제들만 있어서 그런지 별로 흥미가 없다. 그렇다고 다른 모임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면... 다들 저마다 부자되는 법, 브랜드를 갖추는 법 등등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니까 그것도 그렇게 흥미있는 주제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냥 다들 다 돈 얘기만 하는 것 같아서.. 약간 뭐랄까.. 답답한 것 같다.(중략)


방금 내가 쓴 글을 읽어봤는데 하.. 좀 아쉽다. 글 정리가 전혀 안 돼 있네. 형식을 갖춘 에세이 글을 녹여보고 싶었지만, 그래도 다시 그런 글을 쓰기 위해 집중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지금 내가 너무 힘이 없다. 어떻게든 글을 써서 내 마음을 표현해 보고.. 그런데 잘 쓰자니 너무 피곤한 일이고..(어차피 이 짓을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또 할텐데..) 참 나도 문제가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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