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를 접은 아주 발칙한 변명

by Aroana

첫 꿈이자 로망의 직업이었던 애널리스트는 두 번째 CFA시험의 포기로 인해 완전히 단념 되었다. 금융 자격증 공부는 이 시험을 끝으로 완전히 손을 놓아 버렸고 내 미래는 서른을 넘기면서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두 번의 시험과 연이은 실패, 남은 거라곤 머리에 여기저기 흐트러진 금융 지식만이 돌아다니고 있다. 이른 포기는 아니었을까? (호주의 외노자 생활을 통해 돈을 벌어) 경제적 여유가 제법 있었음에도 왜 나는 진로를 접고 다른 루트를 개척하게 되었을까? 이번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스스로한테만 내린 아주 발칙한 변명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실 꿈을 애널리스트로 정한 데엔 '기업을 분석하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는 것이 동기의 9할을 차지했다(1할은 사회적 지위?). 애초에 그 바닥은 전문 자격증으로만 대우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연봉 또한 스타 애널리스트가 아니라면(스타 애널리스트라 할지라도 천문학적인 연봉은 받지 못한다) 아주 높다고 볼 수만도 없었다. 반면에 엄청난 근무강도는 내 모든 시간을 잡아먹고도 남는다. 회사의 충성이 곧 나의 자기계발로 이어지며 야근시간이 축적될수록 쌓이는 건 업무 숙련도와 지적 재산 뿐이다. 물론 실력은 향상될 것이다. 돈을 받고 좋아하는 일로 자기계발이 가능하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그러나 철저하게 '프로'만이 살아남는 시장에서 나는 또 살아남은 자들과 박 터지게 경쟁해야 한다. 그게 애널리스트의 숙명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이 업의 강한 매력에 끌렸다.


나이 서른에 CFA 시험을 더는 포기하고 애널리스트라는 진로를 단념할 수 있었던 건 자격증 취득에 대한 부담감 때문만은 아니다. 결국은 이 업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버텨낼 자신이 (이제는) 없어서 였다. 여차저차해서 애널리스트가 되었다 한들 스스로가 살아남을 만큼 자기계발을 하면서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들었다. 좋아하는 일만 한다면 그 업을 일이라 여기지 않을 성향이라 여겨왔건만 살아보니 나는 지극히 보통 사람이었다. 자격증 공부에 투자한 시간은 생각보다 적었고 그마저도 끝난 후에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거나 운동을 하면서 나만의 여가시간을 가지기에 바빴다. 미친놈처럼 기업분석을 할 줄 알았지만 책 보단 유튜브를 더 시청했다. 꿈의 직업에 발을 담그기엔 나는 너무 멘탈이 약했던 것이다.


한 때 바쳤던 꿈을 포기했다고 인생에 크나큰 좌절을 겪진 않았다. 첫 번째 시험의 실패에서 후유증을 겪었다면 두 번째 도전에서 나는 제법 빨리 상처를 아물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의 본질로 돌아가 보자. 기업 분석의 궁극적인 목적은 투자이고 나는 결국 투자를 잘 해 큰 돈을 벌고 싶다는 아주 솔직한 욕심에서 이 직업을 택했다. 애널리스트는 단지 커리어를 거쳐 가는 직업을 뿐이고 나는 이 지식을 활용해 많은 돈을 운용하고 내 자산의 부를 일구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기에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이 내 인생의 종착역이 되는 직업은 아니었다. 내가 갖고 싶은 직업의 본질은 내 자산의 부를 일구는 데 기여하는 그 무언가. 그 무언의 직업이 결국 내가 되고 싶은 직업인 것이다.


꿈을 포기하고 들었던 생각은 일단 돈을 벌어가며 고민하자 였다. 애널리스트는 못 될지언정 나이에 맞는 부는 계속 증가해야 한다는 게 내가 가진 생각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스스로를 인생의 투자자라 여기며 자신만의 부를 일궈나가자 생각했다. 비록 애널리스트는 못 되도 '투자자'란 직업은 자격증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해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닌 내 인생을 위한 직업. 그렇기에 나는 생계활동은 따로 하고 있어도 돈 관리에 대해서는 '투자자'라 여기며 효율적인 자산배분을 위해 오늘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