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다. 서울에서 고객 DB명부를 바탕으로 영업을 이어가던 중 대전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닿아 출장을 가게 되었다. 토요일 오전, 바삐 정장을 차려 입은 나는 긍정적인 마음을 지닌 채 지인이 머물고 있는 숙소에 가기 위해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지인은 내가 자란 시골 고향에서부터 안면을 터왔던 형님들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본 관계 였기에 계약에 대한 욕심은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대신 그간의 근황과 내 일에 대한 소개를 말하며 소원했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계기를 삼았다.
숙소에 도착을 하고 어느덧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술을 좋아했기에 외식은 술 안주를 곁들일 수 있는 고기로 정했다. 한 번씩 잔들이 오가며 서로의 근황에 대한 소식이 오갔다. 현장 건축 일을 하시는 형님들은 보험설계사로 일한다는 내 말에 조금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약간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다.
"그거 하면 돈 많이 버냐?"
"우리한테 보험 팔려는 얘기 하려고 온 건 아니지?"
"그런데 재무 상담이란게 뭐야?"
이미 보험설계사로서의 사회적 편견에 익숙해진 나는 그들의 시선을 이해해가며 나름대로 내 업의 장단점을 솔직 담백하게 말해주었다.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지 않는 한 대부분의 설계사들에게 큰 소득은 구경도 해보지 못한다는 것이 이 업계의 냉정한 현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취기가 무르익자 나는 형님들이 지내는 숙소에 가서 2차를 맞았다. 그러자 형님들은 장난기가 발동한 건지 아니면 시비를 걸고 싶었던 것인지 내가 하는 보험업을 무시하며 내 안의 화를 돋구었다.
자발적인 의지로 보험설계사를 시작했음에도 업에 대한 존중이 무너지는 행위들은 나를 끊임없이 좌절시켰다. 계약을 하러 온 것이 아니고 가까운 친분을 쌓아보고자 했던 나의 관계 맺기는 형님들의 시선에서는 철저히 계산적으로 보였었나 보다. 원치 않는 재무상담은 진행하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지만 어느새 나는 그들로부터 불편한 존재가 되어갔다. 형님들의 도발은 멈출 줄 몰랐다. 차라리 화를 냈어야 했던 순간에도 나는 계속적인 항변을 했고 자존감은 이내 고갈되어 버렸다.
결국 나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서러운 눈물을 선보이며 싸움에서 패배를 선언했다. 눈물을 흘려가면서까지 '아니'라는 항변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은 너무 치욕적이었다. 그 때 나는 대체 무엇을 얻겠다고 그따위 동정심을 구걸했던 걸까?
내가 가진 업의 비젼이 형님들 앞에서 부정당해지는 것을 겪으면서도 다음날에는 웃으면서 그들과 헤어졌다. 이후에는 더 이상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별로 친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인생의 서러운 순간 중 한 일화를 공유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