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퇴사

by Aroana

보험설계사로 일한 기간은 겨우 3개월이었다. 영업으로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의 책을 읽고 의욕적인 자세로 이 업에 도전했지만 내가 체결한 계약이라곤 고작 1건에 불과했다. 최소 실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급여는 들어오지 않았기에 통장에 있는 잔고는 씨가 말라갔다.


점점 하루하루가 절망의 늪으로 빠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차라리 몰랐으면 모를까 모두 예견된 사태라는 것을 알았다는 게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초반 영업이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서울에서 연고도 없이 영업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충분히 짐작했다. 그럴수록 나는 책을 통해 성공한 영업인들의 노하우를 익히며 악착같이 버텨보려 노력했다. 돈이 떨어지면 차라리 알바를 통해서라도 이 업을 1년 만이라도 아니, 단 6개월만이라도 버텨보자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그러나 결국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지키지 못해 이 곳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상황을 궁지로 몰아갈수록 나는 '버틴다'의 의미가 어떤 뜻인지 정말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한 달치 생활비만 겨우 남았을 때 였다. 통장에는 아마 40만원이 채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음이 느껴졌다. 예정대로 정말 알바라도 하면서 이 업을 유지해야 할지 아니면 새로운 혼란에 나를 또 가둬야 할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사실 답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이미 이 달 내내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라 지점장과의 면담을 밥 먹듯이 겪은 후였다. 뭐라도 하면서 버텨보겠다는 의지는 온데 간데 없고 계속 못하겠다는 말만 내비쳤다. 지점장은 온갖 유인책으로 설득하기 바빴고 그럴 때 마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멘탈이 흔들리며 스스로에게도 도저히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만두기로 결심한 날, 그 날은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도 없는 한적한 시간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어지럽게 놓여진 내 책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곳과 작별 인사를 준비 했다. 편의점에서 소주 두 병을 사가지곤 사무실에서 한 병을 연거푸 들이켰다. 깡소주로 마신 탓인지 술 기운이 바로 올라왔다. 가방을 열어 내 짐을 하나씩 싸기 시작했다. 취기 탓인지 침울한 얼굴에 눈물이 글썽였다. 그럴수록 더 술에 의지하며 빠른 속도로 책상의 물건을 정리했다. 그렇게 빈 자리가 되었다.


사무실을 나서기 전 그냥 말 없이 도망갈까도 생각해봤다. 기분 좋은 퇴사는 아니었기에 사람들에게 내 무단퇴사를 알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여겼다. 그러나 끝까지 나를 격려해준 지점장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라도 의미를 남기고 싶었다. 나는 작별을 손편지로 대신해 지점장의 책상에 놓고는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이 날의 무단퇴사는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이번 퇴사에서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패배감을 느꼈다.


"내가 내 자신에게 진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기분이구나"


이토록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내가 겨우 이 정도로 보잘 것 없는 의지와 자신감을 가지고 사회를 살아가려고 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월요일이 되자 잠에서 깨니 연락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나는 그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며 단지 전원을 끄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다. 그렇게 보험회사에서의 내 첫 사회경력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상처와 좌절, 무시와 냉대로 얼룩진 이 3개월간의 고통은 이후 급격한 체중증가의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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