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혼술을 즐겨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했을 때 부터였던 것 같다. 시기로 따지면 2학년쯤 이었던 것 같고 그 때 마다 TV 예능은 내 친구가 돼주었다. 혼술을 즐겼던 이유는 단지 편해서였다. 물론 친구들끼리 마실 때도 많았지만 특별히 모임을 찾으려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혼밥도 잘했던 나는 혼술도 혼밥처럼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특이한 건 20대에 나는 혼술의 대부분을(특히 20대 후반까지)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셔댔다는 것이다. '적당히'라는 용어는 내 사전에 없었다. 때문에 취하고 난 후의 나는 늘 그 날의 어지러운 흔적에 머리아퍼 했다.
혼술을 시작했을 초반의 무렵에는 외롭다기 보다는 단지 술이 좋아서 마셨다. 잔고는 '모자람'에 허덕였고 매번 뜻이 맞는 친구와 술을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치킨+소주의 조합은 당시 내 최애였고 그것을 먹을 때면 스스로에게 어떤 보상을 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혼술에서 전반의 추억은 내게 나름 즐거움을 안겨주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후 여러 금융 자격증에 도전하고 인생 첫 인생 자격증(CFA 1차)을 준비하면서 마셨던 혼술은 점차 맛이 아닌 고통을 잊기 위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기숙사는 어느새 월 15만원의 허름한 자취방으로 바뀌었고 최고의 안주만을 고집하던 습관은 싸구려 음식으로 대체되었다. 서서히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내 자아를 지배하던 시기였다. 마치 내 안의 '내'가 내 안의 '타인'을 부르고 싶을 때 찾는 느낌이었다. 초반에 마셨던 혼술의 끝은 기억상실에 가까운 필름의 삭제였지만 이 시기에 마셨던 술의 결말은 매번 찝찝했고 알 수 없는 감정에 쉽게 동요되었다. 같은 시험을 준비하려는, 또는 비슷한 길을 걸어가려는 친구가 없었다. 과(무역학 전공)의 특성상 대부분은 무역회사에 들어갔고 전문직을 원한다면 모두들 관세사를 준비했다. 금융 쪽 진로를 준비했던 나에게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은 동기들에게 생소한 직업이었다. 별다른 커뮤니티가 없었던 나는 혼자 그 꿈을 막연히 키워나가야 했다. 그런데 웃긴 건 이 때 나는 나름 성실히 준비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성취를 갉아 먹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예를 들어 목표한 인강을 완료했거나 그 날 주어진 공부량을 채워 놓으면 밤에는 술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 했다. 누구를 위한 술인지도 모른 채 마셨던 것 같다. 그러니 시험에서 떨어진 건 너무나 자명한 결과였을 지도...
서울에 올라와 마셨던 혼술도 고통을 잊기 위한 연장선이었다. '적당히'는 여전히 멈출 줄 몰랐고 취하고 싶어 마셔대는 술의 내공만 계속 늘었다. 물론 지독한 체중감량을 달성한 후 마셨던 경험처럼 좋은 의미의 혼술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미래가 불안해서 마셨다. 이상과 현실이 부딪힐 때 마다 마셔댔던 술은 잠시나마 괴리감을 잊게 해준 좋은 도구였다.
20대를 관통했던 혼술은 시기마다 마시려는 이유가 조금씩 달랐지만 그래도 하나의 분명한 키워드가 있었다. 그건 바로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고 마시려는 욕심이었다. 멀쩡히 마시다 취하면 갑자기 필름이 끊어지는 고약한 술버릇을 가진 탓에 채워진 술잔에 다음 날 눈을 뜨는 경우가 많았다. 스스로가 취함의 정도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그 날의 우울 상태에 따라 취기가 결정되었다. 혼자 술을 마시면서도 내 안의 '타인'에게 조차 고민을 털어놓지 못했다. 어쩌면 이성을 마비하기 위한 목적보단 술에 적신 감정에 기대고 싶어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30대인 지금도 혼술은 이전과 별 다른 이유 없이 그냥 즐겨 마신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지금은 조금 절제하며 마신다는 정도랄까. 취하지 않아도 내키지 않으면 끊을 줄 아는 법을 배웠다. 성숙해졌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글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