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1학기 학과 생활 1편

by Aroana

작년 한 해(2012년)는 출발은 좋지만 끝이 구렸다. 재경관리사 합격을 시작으로 토익을 정복해 보겠다고 야심차게 (저녁)알바까지 포기했건만 영어란 놈은 그런 나를 철저히 짓밞아주었다. 이번에 또 다시 토익에만 전념을 하기에는 왠지 위험한 도박으로 비춰질 것 같았다. 취업을 위한 대외활동으로도 G-tep(무역동아리) 하나만으로는 부족해 보였고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해 특기를 살릴 필요성이 있어 보였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3학년 1학기, 올해는 금융 3종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 첫 포문을 연 자격증이 있었으니, 바로 펀드투자상담사(이하 펀투) 였다.


4월에 있을 펀투 시험을 위해 나는 2월말부터 해당 시험을 본격 준비했다. 금융 3종 자격증을 준비한 이유는 별 게 없다. 내가 단지 경제·금융 분야에 많은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2월에 이미 GS 건설의 기업 보고서를, 작년에는 10페이지에 달하는 주식시장 보고서와 부동산 보고서를 스스로 작성해 봤을 만큼 나는 회계와 경제지표를 활용하는 것에 많은 흥미를 느꼈다.


이즈음 나는 전공을 살려 취업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무역학과는 경상계열의 일부라고만 생각했고 G-tep 역시 취업에 유리한 대외활동이라 지원한 것이지 이곳에서 대단한 성취를 이뤄낼 생각은 없었다. 무역협회가 주관했다는 활동 실적만 착실히 기록되어도 충분했다. 나는 이 기간을 이용해 좋아하는 분야를 마음껏 공부한 후 내가 진짜 되고 싶은 직업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생활비였다. 특히 이번부터는 저녁에도 알바를 뛰어야 생활이 가능했다. 작년에는 1학기 때 모아놓은 돈으로 2학기를 충당했다지만 3학년이 되어서 쟁여놓은 돈은 한 달치 생활비가 전부였다. 동아리 특성상 방학에는 여러 전시회 활동으로 인해 장기 알바가 힘들어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학기 중에 악착같이 벌어놓은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행히 교내 미화 이모님이 꾸준히 나를 좋게 봐주셔서 '학교 도우미' 알바는 수월하게 연장되었다. 3월 한 달 동안에는 기숙사 사감을 신청해 간신히 생활비를 마련했고 4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안정적인 저녁 알바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교내 주차관리'. 대학 내 차량이 통과되는 지점에서 차단기를 여닫는 것이 주된 업무인데 시급이 무려 6,500원이었다(당시 최저시급은 6,000원 남짓 되었다).


"우와. 이거다. 빨리 지원하자!"


주5일,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의 알바시간을 확보해 총 급여는 기존 25만원에서 77만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생활비는 물론 일부는 저축이 가능할 정도로 삶에는 여유가 있었다. 주차관리 알바는 생각보다 꿀이었다. 혼자서 보는 일이었기에 나는 내 시간을 참 알차게 사용했다. 그곳에서 많은 독서가 이뤄졌으며 영화도 한 편 보면서 바쁜 일상에 최소한의 '쉼'을 불어 넣기도 했다.


한 학기에만 3개의 시험을 연달아 준비해야 하니 저녁이 있는 삶을 포기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래서 그런지 삶에서 적막함을 느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알바도 따로, 공부도 따로, 사람과의 관계는 분명 넓어진 것 같지만 모든 고민을 혼자 짊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이 때는 굉장히 목표 지향적이었고 미래 계획을 촘촘히 그려 왔었다. 바쁘고 외로워서 그랬는지 뒤를 돌아볼 여유가 참 없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우리팀 G-tep 멤버들이 내 생일을 서프라이즈로 맞이해 준 사건이다. 주차 관리소에서 차단기나 바라보며 보초를 서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관리소의 창문이 똑똑 거리며 누군가 노크를 하고 있었다. 밤 늦은 시간이라 순간 귀신인줄 알고 황급히 놀란 나는 창문을 내리며 멤버들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봤다. 그런데 그들이 순간 케이크를 건네주며 나에게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 아닌가. 당황하면서도 눈시울이 붉어진 나는 말똥 같은 눈물을 보일락 말락 하면서도 고맙다는 말 대신 어떻게 알았냐는 품위 없는 질문을 던졌다. '생일 축하해요. 힘내요 오빠!' 라는 말을 들으며 마지막으로 멀어져 가는 그들을 보면서 많은 고마움과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 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꽤 좋았던 순간들도 분명 있었는데..."


너무 힘들었던 시간만 떠오른 게 좀 아쉬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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