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1학기 학과 생활 2편

by Aroana

금융 3종 시험(펀드투자상담사, 파생상품투자상담사, 증권투자상담사)은 내가 금융 지식에 관한 기본 소양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수단이었다. 주식관련 책도 다수 읽어보고 계좌 개설과 함께 HTS 프로그램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 나는 왠지 이것과 연관된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이전 회계 자격증처럼 제대로 된 체계적인 지식을 한 번 접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여러 투자 관련 자격증이 많았지만 난이도는 펀투가 가장 낮았기에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잔인한 3연전의 첫 포문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4월에 펀투, 5월에 파생상품, 6월에 증투 시험으로 이어진 죽음의 레이스는 내 삶을 참 피폐하게 했던 시절이었다. 마치 매 달 마다 평가를 받는 기분이 들었고 빽빽한 일정들 속에 현타가 왔던 적도 여러 차례 있었다. 남들도 학기 중에 본다고 하는 시험이라지만 막상 내가 겪어 보니 전혀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가 없었다. 팀플 과제가 발생하면 도중에 하던 공부도 멈추어야 했고 저녁을 먹고는 얼른 알바를 향해 가야 하니 늘 뛰어다니기 바빴다. 일을 마치면 새벽 2시까지 졸면서 강의를 들었다. 주식책과 다르게 교재는 생각보다 따분했으며 핫식스를 마시면서도 졸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볼 때면 그냥 측은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심하게도 느껴졌다.


"나도 참... 이게 뭐라고..."


학기 중 시험도 무시할 수 없었다. 기숙사와 국가장학금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성적도 어느정도 받쳐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당시에는 3.0 이상을 맞아야 했다). 특히 2학기부터는 아버지가 은퇴를 하기 때문에 무조건 국가장학금을 받아내야만 했다. 기숙사비를 지원받는 마당에 등록금까지 요구하는 것은(자격증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학기 성적을 소홀히 한다는 것이) 그냥 핑계에 불과한 모지리 같은 행동이라 여겼다. 자격증에서 장렬히 전사할 수는 있어도 학점이 3.0 밑으로 떨어지는 참사만큼은 벌어져서는 안 되었다. 두 탕의 알바를 뛰며 자격증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내가 설정한 허들은 늘 이렇게 높기만 했다.


펀투 시험을 보고 합격자 발표를 확인한 날, 사실 합격했다는 사실이 그리 유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낮은 난이도였기에(또 가장 안정된 상태에서 공부를 했기에) 이 시험은 그냥 무조건 합격해야 한다는 당연함만 내 마음에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기쁨 보다는 안도가, 웃음 대신 적당한 보람을 느낀 채 다음 시험을 준비했다.


파투 시험에서는 65점(60점 합격)으로 점수로는 합격이었지만 한 과목에서(한 문제 차이로 ㅠㅠ) 과락을 당해 최종 불합격 처리가 되었다. 결과지를 받고 스스로를 자책함과 동시에 세상을 원망하며 비통함을 느꼈던 것 같다. 펀투 시험이 끝나자마자 다가온 중간고사로 애초에 많은 준비를 하지 못했던 탓이다. 알바로 인해 공부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았던 것도 억울했고 마지막에는 일정에만 이끌린 채 시험을 친 것에도 화가 치밀었다. 이제는 1승 1패, 나는 방전된 체력과 누적된 무기력을 안고 마지막 시험인 증투에 돌입했다.


증투는 생각보다 범위가 넓었고 문제의 난이도는 더 까다로웠다. 마치 펀투와 파투가 막 짬뽕해서 나를 괴롭히는 느낌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기간은 고작해야 한 달이었고 그것도 기말고사 시즌과 공유해야 하니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지도 갈팡질팡 했다. 파투의 후유증이 나를 짓누르며 교재의 진도는 더디기만 했다. 중국 전시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증투 공부로 인해 거절할 때는 이게 맞나 싶기도 했다.


하나님이 나를 가여삐 여기기라도 했는지, 증투의 결과는 의외로 63점을 맞으며 합격을 했다. 준비를 하는 내내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이며(개인적으로는 증투가 가장 까다로웠다)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자고만 생각했던 것에서 운이 작용했던 것이다. 이 때는 합격 소식을 듣고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정말 별에별 생각이 다 나면서 그 동안의 힘듦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런 감정을 느껴보기 위해 학기 내내 그렇게 개고생을 한 거였구나"


기말고사도 운이 좋았는지 성적은 3.58이라는 그럭저럭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 3학년 1학기를 무사히 마친 것을 다행으로 여긴 나는 아슬아슬하게 진로에 대한 탐색을 계속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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