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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peace Jul 27. 2024

교실에서 바라본 세상

나는 괜찮은 양육자일까

 아이를 관찰하고 기록해 보세요. 아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눈에 보입니다. 게다가 그 기록은 내가 꽤 괜찮은 양육자라는 증거가 됩니다. 그럼 엄마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렇게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겁니다."   
출처: 중앙일보 펠로페어런츠  
@parents_hello



시험준비만 하다가 진짜 영어는 언제 해볼까?

영어 사교육 시장의 매출은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현주소를 반영한다. 영어는 말 그대로 언어이며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이다. 세계공용어로서 영어의 위상은 날로 강화되어 왔지만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은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한 대안보다는 사교육 억제에 더 집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보다 실질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한 지 오래다. 돌고 도는 해답 없는 이 혼란 속에서 우리가 다시 집중해야 하는 과제는 무엇인가.


 '영유아영어'부터 소위말하는 '입시영어'까지 전 연령대의 영어수업을 해본 경험으로 보면 직장의 업무일지처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의 교사 혹은 보육교사 등 모든 교사들은 관찰일지라는 것을 매일 쓰고 가정으로 보내고 학부모들도 약간의 의사소통 창구로써 유아수첩(가정통신문 등과 같은 전달수단)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의외로 내 아이를 가장 잘 알고 가까울 것 같은 학부모, 특히 '엄마'라는 자리는 이 부분을 간혹 크게 놓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대화법이 있다. 대화 중 흔히 들어본 화법인데.  바로 '나(I) 화법'(I-message, I-statement)에 관한 내용이다.  이것을 우리말로 바꿔 '1인칭 화법'이라고 부른다.


교사들은 아이의 원생활, 혹은 학교생활을 부모에게 전달하거나 일지로 기록해 남겨둔다. 그리고 부모와의 상담 시간에 아이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보다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고 제공하기 위해 힘쓴다. 그런데 간혹 가다 문제(?)의 학부모들은 교사를 지치게 하거나 때론 막다른 길로 몰고 가는 불행을 겪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다.


말하고 싶은 요지는 이것이다. 내 아이와 한 집에서 한 식탁에 둘러앉아 부모가 되었다고 해서 아이에 대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자가당착에 빠져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와 얽힌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화살이 되어 고통을 준다.


어느 부모가 아이가 수족구에 걸려 원에 결석하게 되었고, 1대 다수의 아이들을 케어하는 교사는 며칠 후 원장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아이가 아파서 못 갔는데 당일에만 전화통화하고 애가 궁금하지도 않은지 사흘이나 지났는데 담임이 전화 한 통 없는 게 말이 되느냐며 원장에게 담임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는 것이다. 담임이 어쩜 그럴 수 있느냐며 상식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것은 입장의 차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분명히 잘못된 화법이다. 솔직히 기대가 다르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지라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만약 그 부모가 조금 다르게 표현했다면 부드러운 통화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았을까 싶다.

'어쩜 전화 한 통화 없느냐' 보다는 '아이가 선생님 목소리 듣고 싶어 했다', 혹은 '매일 가던 유치원에 못 가서 아이가 답답해하는 거 같더라. 어서 회복해서 빨리 선생님과 친구들 다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식의  '1인칭 화법'으로 소통했더라면 조금은 더 자연스러웠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내 아이의 영어교육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내  아이를 그저 학교나 학원에 내팽개쳐 두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좀 격한 표현처럼 들릴 수 있지만 23년의 교사생활을 한 나로서는 그런 학부모들을 매우 많이 봤고 나 역시 그 부분이 얼마나 위험한지 정확히 알리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언짢은 말일 수 있고 화가 날 수 있지만 이것은 모두의 과제임에 틀림없다. 상식처럼 우리가 알고 고쳐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학 시절 영어강사할 때 이런 어머님을 뵌 적이 있다. 느닷없이 화나가서 갑자기 학원을 관두겠다며 환불해 달라고 전화가 왔고, 상담전화가 꽤 길어졌다. 요지는 애가 학원을 두 달이나 다녔는데 아직도 단어를 제대로 못 읽는다는 것이다. 화가 날만도 하다. 알아서 잘해줄 거라 믿고 돈을 지불하고 학원에 보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부모가 알아야 할 분명한 사실이 있다. 과연 전화를 한 부모에게는 전혀 책임이 없으며 오롯이 교사의 무책임 때문이라고 해야 맞을까?


다시 이 상황 속으로 들어가 위에 언급한 '1인칭 화법'으로 교사인 나는 대화를 이끌어 상담을 진행했고, OO가 영어에 대한 흥미가 매우 떨어져 있어서 흥미 위주의 관심을 먼저 끌어올리는 목표가 더 중요했고, 단순히 단어를 익히고 기계적으로 문자를 읽어내는 기술은 그다음 문제라고 생각했다'는 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


여기에서 부모는 학원이나 학교를 성적 올리는 기계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우리가 다시 집중해야 하는 과제는 바로 이것이다.

내 아이의 1차 관찰자는 반드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부모= 주양육자)

돈만 내면 다 되는 그런 교육이 아니라 학원이든 학교든 1차적인 책임은 무조건 부모에게 우선되어야 한다.  오르지 않는 영어점수 자체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학원을 보냈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이유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부모가 가정에서 먼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무책임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바꿔 말하면 부모인 '나'로 시작하는 입장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 아이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야 하고 이해를  위한 괜찮은 양육자가 되기 위해서는 두리뭉실하게 대충 얼버무리고 마는 주먹구구식 관찰로는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내 아이는 도대체 영어를 언제 한단 말인가.

영어라는 것 역시 대화의 수단이며 대화라는 것은 물리적인 소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기분 생각을 담아낼 때 비로소 언어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득력을 잃어버린 '영어'는 과연 그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기계처럼 열심히 외워 앵무새처럼 아무 의미 없이 읊어대는 소음과 무엇이 다를까 싶다.

안전한 건물을 짓기 위해 탄탄한 기초를 쌓고 바닥공사를 하고 정확한 설계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당장 오늘부터 시작해서 한 달 후 파닉스를 끝내고, 두 달 후부 터는 아이가 문장을 읽기 시작한 후 6개월만 다니면 어느 정도 책을 읽고 1년 후에는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룬다고 해서 그게 전부가 될 수 없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그냥 광고다.


 최소 하루에 단 15분 만이라도 내 아이를 위한 진지한 관찰을 할 수 있는 부모라면 우리는 이미 괜찮은 양육자라고 자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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