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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맑음 Aug 23. 2024

[로맨스소설] X의 자서전 6화

6화


연수연의 고등학교 2학년. 그 여름까지 그녀의 삶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유복한 가정환경과 예쁘장한 외모, 전교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성적도 우수하였다. 그러니 더 밝은 미래를 꿈꾸는 것은 당연했다. 


연수연은 한새벽이 준 마카롱 상자를 들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소년은 밉살스럽고 귀여운 면이 있었다. 


불 꺼진 어두운 이층집을 잠시 올려다보다가 열쇠를 꺼내서 문을 돌렸다. 최근 자주 집을 비우는 부모님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저 왔어요.”


아무도 없을 것을 알지만 인사를 하는 건 그녀가 예의가 바르기 때문이었다. 불을 켜기 전, 손을 낚아채는 느낌에 비명을 지르기도 전 처음 보는 아빠의 다급한 표정에 말문이 막혔다. 


“수연아, 우리 지금 떠나야 해. 짐은 싸뒀다. 꼭 필요한 것만 챙겨라.”


‘여행을 가는 건가?’


그리 생각하기엔 짐이 단출했다. 최근 부모님은 자주 다투었고 침울해 보였다.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졌고 대화는 사라졌다. 늘 따뜻하던 집이 처음으로 무섭게 느껴졌다. 방학에 굳이 학생회실을 찾은 것은 그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어디 가는데요?”


발목을 감으면서 올라오는 음침한 기분의 정체는 불안감이었다. 아버지는 말없이 연수연을 독촉했다. 고작 고등학생 2학년인 그녀에게 챙겨야 할 만큼 중요했던 것이 무엇이 있을까.


연수연은 불안감을 애써 누르면서 교과서를 챙겼다. 그녀는 영문도 알 수 없으면서 교과서에 문제집까지 가방에 꾹꾹 채워 넣었다. 수연의 방을 방문한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내 단호한 표정으로 가방의 귀퉁이를 잡아서 내용물을 털어내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쓸모없는 것 말고. 돈이 되는 것 챙겨라.”


바닥엔 교과서가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불도 켜지 않아서 모든 게 어둡게 보였다. 서랍장을 뒤집으며 금반지와 귀걸이를 챙기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낯설었다. 


“…아빠, 우리 망했어?”


그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들은 도망치는 중이었다. 야반도주에 가까울 행위였다. 잠시 멈칫했던 아버지는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한새벽이 준 혀가 녹을 만큼 달콤한 마카롱이 바닥을 뒹굴었다. 


“잠깐만! 아빠!”

막무가내로 잡아끄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그녀는 한새벽이 준 바닥에 쏟아진 마카롱 중에 하나를 손에 잡았다. 예쁘게 포장된 봉지 안에 마카롱은 이미 꺠어져있었다. 기껏 포장한 정성이 아까웠다. 


“수연아! 시간이 없다. 쓸모없는 것은 잊어라.”


연수연은 하나의 마카롱만 챙긴 채로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차에는 이미 엄마가 타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는 연신 불안한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엇이 무서운 걸까. 왜 도망치는 걸까.’


말해주지 않으니 더 불안했다. 그들은 쫓기는 것처럼 움직였다. 차가 도시를 빠져나가서 시골길을 달릴 때쯤 연수연은 반쯤 졸고 있었다. 긴장감과 불안함에 잠도 자지 못할 줄 알았는데 사람은 습관을 이기기 힘든 모양이다. 


초조하게 속삭이는 말소리는 멀게 들렸다. 잠깐 의식이 끊겼다가 아버지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수연아, 내려라. 이제 다 왔다.”


창문 너머로 시골의 낡은 집이 보였다. 의아한 수연의 표정을 보면서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듯이 겨우 미소 지었다. 


“이제 우리 여기서 살 거야. 예전에 잠깐 신세를 졌던 분인데 고맙게도...”


“아빠, 저거 이상하지 않...”


운전대에서 고개를 돌리고 연수연을 바라보고 있는 아빠의 뒤로 연신 불빛이 흔들거렸다. 점점 가까워지면 맹렬해지는 그 속도에 위기의식이 깨어났다. 다급하게 앞을 가리키는 연수연의 손가락질에 아버지가 뒤돌아보기도 전에 덤프트럭이 충돌했다. 


“으아악!!!!”


유리창이 깨어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커다란 충격과 함께 몸이 튀어 올랐다. 피가 붉다는 것을 이토록 실감해본 적이 있을까. 눈앞에 온통 피범벅이었다. 누구의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머리를 부딪힌 것 같다. 누군가의 비명을 마지막으로 연수연은 의식을 잃었다. 깨어났을 때는 이미 병원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아버지의 지인이 눈물을 찍어누르며 연수연의 뺨을 다독거렸다. 그리고 연수연은 고아가 되었다. 그 사고에서 살아남은 것은 연수연 뿐이었다. 


* * * 


와인은 술치고 너무 달콤하다. 그 맛에 속아 주량을 넘긴 모양이다. 연수연은 비틀거리며 반지하의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쿰쿰한 곰팡내가 술에 취해서인지 잘 느껴지지 않았다. 


매트리스도 없는 바닥에 누웠다. 천장에 이상한 얼룩이 져 있다. 처음 반지하에서 살게 되었을 때 연수연은 사람이 이런 곳에서도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한새벽, 그 새끼. 여전히 멋있네.”


잘 다려입은 양복. 근사한 식사. 연수연에겐 사치인 모든 것이다. 연수연은 이번엔 몸을 웅크려 옆으로 돌아누웠다. 어둠에 잠긴 집은 이제 익숙했다. 


이제는 연수연에게 익숙한 고독이 느껴졌다. 그녀에게 이제 가족은 없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삶이 시작되었다고...”


연수연은 작게 중얼거렸다. 첫사랑을 이야기하는 한새벽의 얼굴이 짧게 떠올랐다. 


“나도 그런데. 새벽아, 내 삶도 고등학생 때 다시 시작되었어. 아니다, 나는 그때 학생이 아니었어.”


도망친 것이 무색하도록 그 밤, 부모님은 고인이 되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형사와 검사가 연달아 방문했다. 회사가 도산했으며, 아버지의 비리는 기사가 되어서 연거푸 터져 나왔다. 


연수연은 아버지가 하던 일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더 큰 성공을 도약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가 건설사였다. 대형 건설 프로젝트와 관련된 비리와 불법행위로 아버지는 조사받고 있었다고 한다. 


“뇌물 제공, 뇌물 제공을 위한 자금 횡령, 입찰 조작, 부실 공사, 주민의 동의가 없는 강제적 토지 수요의 불법적인 퇴거 조치. 자금세탁과 허위 보고서 작성.” 


그의 이름에 득실득실 붙은 혐의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큰 잘못인지 연수연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부모를 막 잃은 18살이었기 때문이었다. 


상념을 깨우는 전화벨이 울렸다. 연수연은 이름도 확인하지 않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이 시간에 전화하는 사람은 한명뿐이다. 


“수연아!”


“응…고모.”


연수연의 고모였다. 아버지의 지인이라서 고모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우습게도 그녀는 알지도 못하는 고모가 있었고 그녀는 수연을 키워주었다. 고모를 알지 못했던 이유는 그녀가 사생아였기 때문이다. 


‘우리 집안, 진짜 비리도 많네.’


처음엔 우스웠다. 마음 붙일 곳이 없이 돌아다니는 연수연에게 아직 핏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고모는 이복형제인 아버지의 자녀인 수연에게 정을 주었다. 어쩌면 그녀도 외로웠던 것이 아니었을까.


“응, 고모야. 우리 수연이 오늘은 밥 잘 먹었어?”


본래도 마른 연수연이 식사까지 잘하지 않으니 고모는 늘 걱정이었다. 평소라면 거짓말을 했겠지만, 오늘은 정말 잘 먹었다. 


“아니야. 오늘은 프랑스 코스요리 먹었어.”


“어머, 정말? 무슨 돈으로?”


“나 일한다고 했잖아. 자서전 써주기로 한 정치인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밥 사줬어.”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 정치인이면 좀 까다롭고 그렇진 않니?”


한새벽에 대해서 떠올려봤다. 당연히 까다롭고 이상한 사람이다. 그래도 고모를 안심시키고 싶어서인지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아니야. 되게…잘생겼고, 착해.”


잘생긴 건 사실인데 착하진 않았다. 아니 착하던가. 그녀에게 관심이 없으니 잘해줄 이유도 없을 것이다. 연수연은 한새벽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연애는 짧았고 세월은 이미 10년이 지났다. 강산이 바뀔 그 세월 동안 한새벽도 제가 알던 그와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연수연은 그날 꿈을 꾸었다. 사고가 났던 그날을 답습하는 꿈은 한새벽을 만난 탓일 것이다. 병원에서 깨어난 연수연의 주머니에는 조각난 마카롱이 있었다. 


연수연은 설탕 조각처럼 부서진 마카롱을 꾸역꾸역 먹었다.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서 뺨을 타고 바닥으로 흘렀다. 마카롱은 혀가 찡할 정도로 달았다. 병원에서 유일하게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었다. 


마카롱이 주머니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빠는 중요한 것만 챙기라고 했는데 남은 것은 한새벽이 선물한 마카롱뿐이었다. 그래서 한새벽은 연수연에게 조금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여고생이던 연수연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도 한새벽뿐이었다. 


그의 기억에서는 연수연이 부유하고 예쁘장한 또래 여자아이이길 가끔 바랐다. 그게 그녀의 위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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