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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Apr 09. 2024

발끝에 아슬아슬하게 닿아오는 두려움

상처를 펼쳐보다



 숨을 멈추고 눈앞에서 번쩍이는 물건에 눈길을 주었다. 순간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우리 집 식칼이 흉흉한 기세로 발끝에서 아슬아슬하게 돌고 있었다. 동생과 나에게 식칼을 던졌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내내 긴장으로 굳어있던 몸은 결국 급하게 치솟은 두려움으로 얼어붙어 버렸다.


 바로 그때 동생의 울음이 터졌다. 하마터면 위험한 상황에서 무방비상태로 얼어있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며, 번쩍 정신이 들었다. 지금 동생에게는 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매달린 동생을 뒤로 보내고 그대로 일어서서 식칼을 잘 안 보이는 구석으로 발로 슬쩍 밀어 치워버렸다. 식칼에 손을 댈 엄두는 도저히 나지 않고 그렇다고 발로 밀자니 무섭지만 안 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애써 쥐어짜 낸 용기였다.

 

 그렇게 바들바들 떨리는 마음을 애써 숨기고, 동생 앞에 서서 우리에게 왜 이러시냐고 물었다. 숙모는 내 물음에 욕설로 응수를 시작했고, 난 그 와중에도 엄마의 흠이 되지 않기 위해 가슴을 죄는 두근거림과 두려움과 화를 누르며 존댓말로 숙모가 진정하기를 바라며 말을 이어갔다. 또한 가능하다면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는 이 방에서 나가고 싶었다. 그렇게 내내 틈을 보며 말을 하는 사이, 현관문으로 나갈 수 있는 짧은 틈이 생겼다. 동생에게 도망가라고 소리치고는 나도 따라 뛰었다. 복도 안쪽 끝집이었던 우리 집에서 여러 집이 늘어선 복도를 순식간에 달려 엘리베이터 앞에 겨우 섰다.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는 사이 숙모와 외삼촌이 같이 달려 나왔다. 자기 방에서 씩씩거리고 방관하던 삼촌도 일이 커졌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우리를 잡으로 같이 나선 것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느끼는 사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환한 불빛과 함께 엄마가 내렸다. 맨발로 뛰쳐나와 선 우리와 씩씩거리는 숙모와 뒤따라온 삼촌 사이에 엄마가 서 있는 꼴이었다. 엄마가 좌우를 한번 둘러보더니 상황이 이해가 되셨는지 삼촌내외에게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질질 끌려가는 모양새로 집으로 들어간 삼촌내외는 식탁에 앉았고 엄마는 맞은편에 앉았다. 놀라서 울고 정신없었을 동생은 방에 두고 엄마가 나를 부르셨다. 그래서 나는 상황을 순서대로 간략하게 설명했다. 엄마를 앞에 두고 앉은 그 사이에도 숙모는 화를 참지 못해 내 이야기 중간중간 알아듣기 힘든 짧은 욕설을 뱉어냈다. 엄마 앞에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그러는 모양새가 우스웠지만 당시에는 아직도 가슴이 뛰고 있어 다른 감정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살짝, 숙모의 욕설에도 나는 존댓말로 예의를 지켰다며 속삭였다. 엄마는 잘했다는 듯 한번 쳐다보더니 나까지 방에 들여보내놓고 한바탕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호랑이 할아버지의 딸인 엄마도 호랑이였다. 매섭게 몰아치며 다그치는데 어느 누구 하나 고개를 들지 못하고 땅이 꺼져라 방바닥만 쳐다보고들 있었다. 그 와중에 엄마가 숙모에게 아이에게 욕설이 웬 말이며 그 와중에도 어린아이가 존댓말을 하는데 너는 느낀 게 없었냐며 어른답지 못하다고 또 한바탕 불같이 화를 냈다.


 결국 이 날의 일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서 큰외삼촌 이모들까지 모두 알게 되었다. 엄마를 따라 조부모님 집에 도착하자 큰방으로 모두 모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중앙에 앉으시고 그 양옆으로 큰삼촌내외와 네 명의 이모와 이모부들이 줄지어 앉아계셨다. 엄마가 어른들이 마주 보며 앉아계신 사이 중앙에 그 외삼촌과 숙모를 앉히자, 할아버지의 호통과 할머니의 울분이 동시에 터져 나왔고 양쪽에서는 경악스러운 숨소리와 화가 나 이글거리는 눈빛들로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는 그 광경을 활짝 열린 방문 문턱밖에 서서 보고 있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한참을 조부모님의 호통과 그 삼촌내외의 변명과 눈물의 반성으로 소란스러웠다가, 결국 기가 찬 할머니의 마지막 인내가 바닥나더니, 할머니가 바닥을 치며 토해내는 마지막 울분과 함께 분위기는 무겁게 내려앉았고, 결국 그날 그 삼촌의 존재가 외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시한폭탄 같던 존재였으나 철저히 배제했기에, 아무 일도 없는 듯 지낼 수 있었던 어른들은 엄마가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삼촌내외가 대형사고를 치는 바람에 손절로 이어지며 끝나버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숙모의 특채이야기를 비롯해서 순경경험담등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 할아버지의 재산에 욕심이 나 뒤늦게 아들로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건지, 아이들밖에 없는 집에서 주인노릇을 하고 싶었던 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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