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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Apr 02. 2024

현실에서 극적인 일들은 스릴보단 경악에 가깝다

발 앞에 던져진 것은?



 국민학교 6학년 2학기에 13층 높이의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갔다. 짧다면 짧을 국민학교 마지막 한 학기 동안 기억에 남는 이슈도 많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 다시 5명이 뭉쳐 다녔더랬다. 그렇게 우리 다섯은 그 학교의 마지막 국민학교 졸업장을 받은 졸업생이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매일 아침 마을버스를 타고 내려가 지하철을 타거나 시내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게 됐는데 맵고 따끔한 최루탄 냄새 때문에 나는 지하철을 더 선호하고는 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때쯤 엄마가 사업을 핑계로 지방으로 내려간 후로는 동생과 둘이서 집에 남게 됐다. 아침마다 싸가는 도시락준비도, 교복다림질도, 하교 후에 식사를 위한 요리를 하거나 설거지와 빨래, 청소에 동생 챙김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어차피 엄마가 있었을 때도 항상 내 일이었으니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엄마가 보내주는 한 달 생활비로 살림을 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내던 중 엄마가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을 외삼촌이라며 데리고 왔다. 그때까지 명절모임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큰외삼촌도 내가 알던 막내외삼촌의 얼굴도 아니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삼촌은 할아버지의 혼외자식이었다. 호랑이 같던 할아버지의 뜻밖의 이면이었다. 그 외삼촌은 우리 집에 혼자 들어오지 않았다. 자기를 특채로 들어간 순경이라고 소개했던 아내와 함께 들어와서 같이 살기 시작했다. 방 하나가 미닫이 문이라 거실로 쓰고 있었는데, 엄마는 그곳을 부부의 방으로 내주었다. 안방도 내 방도 내어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 뒤 얼마간은 괜찮았던 것 같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니 조심스러웠달까. 크게 불편하지도 크게 불쾌하지도 않았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은 어느 날 저녁식사 자리에서부터였다. 언뜻 보면 가벼운 장난 같은 말들이 이상하게 조롱처럼 느껴졌다. 동생과 나에 대한 지적이 우리는 전혀 재밌지 않은 상태에서 외삼촌과 외숙모만 즐거운 이상한 자리가 반복되었다. 그 뒤로도 계속 그런 느낌을 받을 때마다 나보다 어른들이라 지적할 수 도 없어 그냥 가끔 오는 엄마의 안부전화에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늦은 주말저녁 갑자기 외삼촌 부부의 싸움이 일어났다. 물건을 던지는 소리, 물건이 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소리, 악쓰는 소리에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고함소리로 이어졌다. 너무 놀라 동생을 데리고 전화가 있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오실 수 없냐고 물었다. 왜 그러냐는 엄마의 질문에 옆방으로 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듯이 상황을 이야기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지만 그때 전화를 안 걸었다면 어땠을지 아찔하다.

 밤새도록 끝나지 않는 싸움에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지방에서 올라올 엄마를 기다리느라 잠들 수 없기도 했다. 밤새도록 동생을 끌어안고 괜찮다고 달래며 재웠다. 하지만 나는 날이 새도록 긴장감이 도는 방밖만을 예의주시했다.


 그렇게 밤새도록 엄마를 기다리고 아침이 되었을 때 숙모가 소리를 지르며 안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애가 애답지 않다며 나에 대해 날 선 욕설이 난무했다. 엄마도 없는 상황에서 내 눈치를 보느라 맘대로 할 수 없어 부아가 난 모양이었다. 난 그저 갑자기 나타난 낯선 외삼촌부부에게 긴장을 놓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 동생을 책임져야 하니까! 그리고 은근한 엄마의 당부도 있었다. 나는 억울했지만 문을 열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저 ‘진정하세요’라며 온갖 욕설에 존댓말로 응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한참을 방문을 두드리던 숙모가 조용해지더니 다시 무언가로 문을 억지로 열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동생은 이미 소란에 깨서 내게 매달리듯 안겨있는 상태였다. 불길한 느낌과 함께 갑자기 문이 열리는 동시에 숙모의 손에서 무언가 번쩍이더니 방끄트머리에 서로 부둥켜안고 있던 우리 발 앞까지 순식간에 날아와 발끝과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돌아갔다. 동생과 나는 눈앞의 물건을 본 순간부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






#현실에서의 극적인 일들은 스릴보단 경악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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