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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Apr 23. 2024

순종적인 엄마의 대리자_2

아이러니




 ‘오더’는 끝나지 않았다. 


 동생이 직장을 다니면서부터는 직장 내 유부남동료와의 불륜관계가 문제가 되었다.

 같은 직장의 남자동료가 어떻게 알았는지 내게 전화를 하다못해 나를 찾아와서는 동생을 말려야 한다며 야단법석을 떠는 것부터 시작해서, 결국 회사에 찾아가서 동생과 그 남자를 불러내 관계를 끝내라는 엄마의 ‘오더’가 떨어졌다.


 태어날 때부터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돌쟁이 첫째를 남의 집에 처음으로 맡기는 불안감과 호기심 어린 동네아줌마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동생직장을 찾아가야 했다.


 카페에서 삼자대면을 하게 된 나는, 남자의 구구절절한 진실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환상적인 이야기와 어처구니가 없는 나를 향해, 매서운 눈빛을 보내며 남자의 아이도 내 아이처럼 키울 각오가 되어있다는 동생의 흥분 어린 목소리로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결국 인내심의 끝은 나보다 먼저 옆테이블에서 시작됐다. 험악한 아저씨의 쩌렁쩌렁한 소리, 나가라고 재촉하는 고함소리에 욕설까지 계속되었다.

 그 순간에도 내로남불의 커플은 자기들의 사랑이야기만 하느라 바빴지만, 나는 멘붕으로 시작된 현타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어린아이를 다른 이의 손에 맡기고 여기까지 와서 내가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솔직히 나는 불륜커플이 한심해 보이기만 했다. 내가 유부녀에 아이까지 있는 입장이 아니었어도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현실적이지 않은 머저리 같은 소리였다.

 게다가 거친 욕설의 항의는 저들만을 위한 것이었어야 했다. 내가 수치스럽게 한데 묶여 들을 소리가 아니었다.


 그 만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둘은 헤어지고 동생은 회사를 나왔다. 엄마집으로 내려간 동생 소식이 궁금해 전화를 건 나는 어이가 없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엄마가 동생이 이번일로 맘고생을 너무 해서 걱정이 되어 해외여행을 보내줬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날의 수치스러움이 스트레스가 되어 계속 자다가 벌떡벌떡 깨는데, 맘고생은 누가 했다는 것이고 해외여행은 무슨 상관이란 말인지 순간 내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화가 난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며 엄마에게 불륜이란 잘못에 대해 엄히 혼을 냈어야지 오자마자 해외여행을 보낸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도리어 내게 언니로서 너무 정이 없고 관심 없는 언사라며 혼을 내셨다. (아…) 경험으로 더 이상의 대화가 의미 없음을 알았다.


 장녀로서의 책임은 대체 어디까지인지 해답을 찾기 위해 날마다 나를 괴롭히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법적 성인이 됐을 때부터 나의 명의는 내 것이 아니었다. ‘가족을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매년 또는 필요할 때마다 엄마가 호출하는 대로 움직여 은행에서 사인을 해야 했다. 엄마의 심기를 거스르면 내 월급으로 나가는 신용카드가 나도 모르게 해지되어 있었던 적도 있었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다시 지방에서 서울로, 시시때때로 ‘오더’는 계속되었다. 회사에서 근무하는 시간에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독박육아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되는 엄마의 요구에 나는 지쳐갔다.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내 명의의 빚들이 오랫동안 숨통을 조여오기도 했다.


 긴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중년이 되었다. 이제는 그만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어떤 폭언에도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내 명의를 돌려달라고 엄마에게 말했다.


 그 뒤로는 내가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나는 온 집안에 공공연한 배은망덕한 자식이 되었고 신랑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그 와중에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를 도와드리는 게 뭐가 힘들어서 이 사단을 만드냐는 매서운 질타가 이어졌다. 나는 동생을 이해시키려고 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변함없었다.

 점점 억울함과 분함이 솟아났다. 나의 오랜 고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동생에게 홧김에 그럼 네가 대신 명의를 빌려드리라고 소리쳤는데 동생은 “내가 왜?”라며 대답했다.

 

 어이없는 그 순간, 짧은 정적 속에 가족으로서의 마지막 끈이 떨어졌다. 그렇게 통화가 끊어졌고 사이는 멀어졌다.


 하지만 엄마의 폭언은 장문의 문자로 신랑에게 계속 보내졌고, 계속된 문자에 힘들어하는 신랑의 모습에 내 핑계를 대며 연락을 하지 말라고 되려 부탁해야 했다. 그렇게 신랑도 사이가 멀어졌다.


 



#가족이남보다못할때도있다

#그사실에좌절한적도많았다

#내탓이아니다

#나를용서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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