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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Apr 30. 2024

‘내 손에’는 없었다.

애초에_




돌아보면 내게_‘쉬운 것’은 애초에 없었다.

미래계획도, 목표도, 선택도 ‘내 손에‘는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선택의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해, 그저 하라는 대로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무엇에 재능이 있고, 무엇에 호기심이 있으며, 어떤 목표를 쌓아가는지 어머니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그려놓은 미래 청사진대로 움직이는 ‘자랑스러운 트로피’가 필요했던 것 같다. 집에서는 폭언과 무시에 비뚤어진 시선을 받는 ‘’의 성적을 회사에서는 자랑했다고 들었으니 말이다. 나도 들어본 적 없는 내 칭찬을 듣는 사람들은 나만큼 칭찬에 목마르지 않았을 텐데_잘못된 목적지에 도착한 칭찬이었다.


어느 고등학교로 진학할지부터 진학 후에 문과/이과의 선택도 어머니가 지시하는 대로 이루어졌다. 특별히 가고 싶었던 고등학교가 있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이과를 선택하고 싶었다. 내 비밀노트를 흔들어대던 본인의 모습이 자신에게는 꽤나 좋은 인상으로 남았는지 선택의 순간, 어머니가 문과를 고집하는 바람에 나는 내 바람을 말로 꺼내보지도 못하고 문과로 배정됐다. 사춘기 과정을 겪으며 어머니와 대립하면 어떤 결과가 따라오는지 이미 알고 있었고, 어느새 체념의 단계에 접어들던 시기였다. 졸업 후 마지막으로 꺼낸 재수에 대한 열망도 그대로 꺾여 나도 모르게 넣어진 대학교와 학과에 떠밀리듯 진학해야 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생활비는 고사하고 전공서적을 살 돈도 받지 못해 동동거리면서 ‘선택권’이 없는 나는 계속되는 꺾임과 나의 꿈사이에서 번뇌하고 방황했다. 지치고 지쳐 내 손으로 대학에 자퇴서를 내기까지_계속_.


나는 어린 시절 만들기를 좋아했다. 빳빳한 색색의 종이와 테이프로 열고 닫는 각종 가방들을 만들었었다. 그다음에는 하드보드지로 전개도를 그려 연예인 사진으로 도배를 하는 필통 만들기에 빠졌었고 그다음에는 내지까지 직접 만든 다이어리를 사용하고는 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그림에 빠져, 연필로 하는 스케치부터 남은 커피를 이용한 그림,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점묘법으로 그림 그리기, 잘 안 쓰는 매니큐어로 그림을 마무리하는 등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취미가 그림을 복사하듯 베껴 그릴 수 있는 수준까지 오르기도 했었다. 이런 취향은 나이가 들고 아이가 생기면서 여러 가지 창작활동에 이어 자연스레 미싱으로 이어졌다. 작고 귀여운 내 아이들에게 내 손으로 만든 옷을 입히는 재미, 아이의 얼굴을 드로잉 해서 가족티를 제작하기도 하고 아이의 성장을 담아 책을 만들기도 하는 창작활동에 나는 많은 관심이 있었다. 사진작품이나 미술작품들 또는 예술인의 생애를 모티브로 한 영화를 보는 게 나의 힐링모먼트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독하게도, 결혼하고 어머니의 비뚤어진 시선은 계속됐다. 우리 집에 올 때면 한 번씩 폭탄을 던지고는 했는데, 29살의 노산이 걱정된다든가, 집이 너무 좁고 초라해서 건강이 걱정이라든가, 아이 낳고 저렇게 살이 쪄도 되는지에-당시 55 사이즈를 유지하고 있었다-대한 걱정, 명함이 없는 가정주부 역할에 대한 불만, 그리고 ‘그놈의 미싱’ 좀 버리라는 압박부터, 육아에 대해 한 번도 친정에서 도움을 받지 못했던 내게_겨울에 둘째를 낳고 한 달도 안 된 아기와 어머니집에서 쫓겨나 산후조리도 못하고 두 아이의 독박육아를 한 내게, 아이를 시설에 맡기고 밖으로 나가 일하라는 요구까지 끝이 없었다. 그 와중에 순종적인 엄마의 대리인의 역할도 해야 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나는 매일이 전쟁이고 전투였다. 어쩌면 마음 쉴 곳이 필요한 내가 지금의 신랑을 만난 건 운명인지도 모른다. 잡은 손이 따뜻하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며 같이 고민해 주는 다정한 신랑을 만나 나의 쉼터를 꾸릴 수 있었음은 필시 행운이었다.


때때로 몰아치는 어머니의 지나친 요구와 정신적 폭력만 아니라면 완벽했을 새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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