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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 Apr 24. 2024

자존감은 대체 뭘까?

학창시절을 통 틀어서 고등학교 1학년부터 2학년 1학기 때가 가장 기억하기 싫고 추억도 없으며 인간관계는 어렵다는 것을 살면서 처음으로 느꼈던 시기이다. 외모에 제일 민감할 시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봐도 그 전이나 이후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걸 생각해보면 나 혼자 주눅 들어 있었고 그게 겉으로 알게 모르게 티가 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면, 내성적이긴 해도 소심하진 않았던 나의 성격이 그 당시 말도 못하게 ^양아치^였던 여자애의 숨길 생각도 없는 놀림을 정면으로 받고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 무시할 수 밖에 없었던 내 위치가 스스로를 작게 만들었던 게 하나의 계기가 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후로는 잘 맞는 친구들을 만나서 졸업까지 무탈하게 다녔고 지금도 연락하는 친구가 있으니 마무리는 나름 괜찮았다고 봐야하나? 사실 이 나이에 와서 되돌아보면 혼자 밥 먹고, 돌아다니고, 발표하는 것 등등을 왜 그렇게 창피해하고, 성격에 맞지도 않게 친구를 만들려고 바둥거렸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원래 사춘기 청소년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니까 어쩔 수 없지.


대학 입학 후에 만난 친구들을 보면 내가 굳이 친하게 지내려고 발버둥 치지 않아도 결이 맞는 사람끼리는 늦든 빠르든 자연스럽게 섞여든다는 것이다. 1학년 때의 무리가 졸업 때까지 갈 줄 알았지만 2학년 때는 한 명이 교체되듯 변했고, 학년이 변하기 전에는 말도 안 해봤던 한명이 무리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편입을 한 이후에는 쌓이고 쌓인 불만이 터져 한명이 이탈했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고는 최종적으로 한 명이 더 이탈하여 지금의 멤버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친구라는 말을 잘 믿지 않는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단짝으로 지냈고 그렇게 평생 지낼 줄 알았던 친구는 지금 전화번호조차 모르며, 고등학교 3학년 때 알게 된 친구는 졸업하고 연락이 끊겼지만 우연히 길에서 만난 이후로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하며 밥을 먹는다.


그리고 대학 때 만난 친구들을 보며 나는 비로소 아, 얘네를 만나려고 그렇게 힘들었나? 싶을 정도로 아끼고 좋아한다. 애초에 얉고 넓은 관계보다 깊고 좁은 관계를 선호하는 성향이기도 하고, 연락을 하는 것도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귀찮아 하는 스스로를 알기 때문에 연락 패턴이 맞고 서로 다른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그 대학에 간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살면서 내 성격은 계속 변하겠지만 아직 자아가 형성되고 있을 시기에 나의 도전이 아니라 누군가의 철없는 행동으로 좌절감을 겪으며 깎인 내 자존감과 자신감은 대학 때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회복될 수 있었다. 물론! 전공의 특성상 계속 되는 연주와 노력한 만큼 받는 칭찬도 많은 도움이 되었기에 내가 피아노를 싫어할 수 없는 것 같다.


*


지금과는 다른 의미지만 대학 입학 전까지 나는 화장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지금도 나는 선크림이 최종 단계이다. 직장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눈 화장은 했었는데 지금은 그 조차도 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도 화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게 영향이 온 걸 수도 있겠지만 그냥 화장품에 돈 쓰는 게 아까워서인 것 같다.


엄마와 내가 이렇다 보니까 내 남동생은 어린 시절부터 여자 화장품 냄새라고는 맡아본 적이 없어서 밖에서 화장을 진하게 하거나 향수 냄새가 독한 사람이 옆에 지나가면 속이 뒤집어 진다... 그래서 화장 진하게 하는 사람 안 만나는 거니? 아무튼 나에게 화장은 그렇게 멀어져갔다.


내 외모에 백퍼센트 만족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괜찮은데? 같은 생각은 가끔 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독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 얼굴형이었다. 흔히 귀족턱이라고 하는 각진 턱을 가졌는데 한창 달걀형 얼굴의 유행과 맞물리면서 단발을 하든, 긴 머리를 하든 최대한 턱을 가리고 다녔다.


머리를 묶어야할 때면 밑으로 묶었고, 잔머리를 빼거나 절대 꽉 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 어쩌면 가장 많이 바뀐 건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똥머리를 하게 됐고, 잔머리를 빼더라도 턱을 가리려고 하진 않는다.


하나씩 이건 괜찮고, 저것도 괜찮네, 여긴 마음에 드는데, 같은 생각을 늘려가면서 언젠가는 내가 나이기 때문에 그저 좋아지는 때도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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