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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 Apr 17. 2024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자고 제대로 결심하고 걷기 시작한 길은 하루에 강의를 한개만 들어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느라 아예 듣지 못하더라도 불안감을 형성하지 않게 해주었다. 지난 시간처럼 조급하고, 언제까지 이런 위치에서 지내야할지 알지 못한 채로 눈 앞이 흐린 상태에서 선택했다면 절대 겪지 못했을 것이다.


뭐든지 편한 일은 없다지만 그럼에도 그나마 쉽고, 앞으로도 계속 도움이 될 길을 내버려두고 선택한 길이지만 내 성격 상 이런 게 맞는 건가 싶다. 그렇다고 ai를 아예 버리진 않을 것이다. 아직 스스로가 메인으로 선택한 것에 대해 초보 수준이라 보조가 필요없을 뿐이지 계속 발전한다면 분명 보조 역할을 톡톡히 해줄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영어 공부, sns 게시글 포스팅과 같은 작업을 실행할 때 ai 하나로 지금까지 사용했던 돈보다 적게 쓰고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아마 일을 아예 그만두더라도 ai는 포기할 일이 없지 않을까 싶다.


*


사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단호하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지금은. 퇴사하고 2년이 넘는 시간동안 포기한 것들이 너무나 많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쏟아 부어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냈던 경험이 지금은 가물가물해서 그 경험이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하기엔 힘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아니면 그 당시에는 나의 최대의 노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나의 모든 노력이 아니었다는 걸 깊은 무의식에서는 알기 때문이지 않을까. 밥 먹는 시간 조차 아까워서 연습에 매달린 적도 없고, 10시간을 연습실에 있었다고 해서 그 시간을 온전히 연습에만 매진하지도 않았는데 과연 나는 내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게 맞는 걸까.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잠 자는 시간도, 밥 먹는 시간도 줄여가면서 블렌더 하나에 매달릴 수 있는 것인가. 환경, 시간, 목표 등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부수적인 것들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할 수 있다"로 결론이 난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왜? 해보자는 다짐을 하고 마음은 편해진 상태지만 그 뿐이고 진정으로 이것 하나에만 매달려서 빠져들 결심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당장 나를 구할 길은 이것 뿐이고, 내 앞은 막다른 절벽이고, 이런 절실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이 전부가 아니지만 학생 때는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전공을 피아노로 정하고 난 뒤부터는 아무리 싫고, 포기하고 싶어도 이제와서 다른 것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애초에 피아노 하나에만 죽기 살기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늦어도 점심 전에는 일어났고, 밥 먹으러 집에 가는 게 귀찮아서 간식을 싸가지고 다녔고, 언제나 밤 12시까지는 무조건 연습실에 있었다. 핸드폰으로 딴 짓하는 것도 한두시간이지 결국 그 좁은 방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연습 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가둬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디에 나를 가둬둘까. 노트북이든 PC든 프로그램을 사용할 개인 기기가 있어야 하고, 인터넷이 원활하게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제일 편한 환경은 결국 나의 방 뿐이다. 노트북 사양이 더 좋았다면 도서관이나 스카나 돌아다니면서 가둬둘 장소를 늘릴텐데 사양 좋은 기기를 구매하기엔 나의 실력은 너무 허접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나의 방은 몇시에 일어나든 몇시에 잠을 자든 시간과 공간의 제약없이 빠져들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기도 하다. 잠이 오지 않으면 새벽 3시여도 연습을 하면 되고, 하다가 졸리면 침대로 가서 자면 그만이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기도 한다더니,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너무 "몇 시간 이상은 무조건 집중해서 연습해야 한다"의 강박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몇 시간 이상이 꼭 연속일 필요도 없고, 남들이 일하는 시간과 동일할 필요도 없는건데 현재 내 상황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시간에 집착했던 것 같다.


*


잠이 오지 않는다면 야행성으로 사는 것도 방법이겠지. 시간에 매몰되어서 중요한 것을 잊는 멍청한 행동은 이제 버려야겠다. 스스로 정한 2개월의 시간 동안은 블렌더에 얼마나 재미를 붙일 수 있는지,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에 더 집중하고 고민해서 흠뻑 빠질 수 있도록 해봐야겠다. 


하다보면 정말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노트북 앞에서 시리얼이나 먹으며 작업하게 되는 날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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