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뭘 좋아해?" 라는 질문을 받으면 뭔가 거창한 대답을 해야할 것만 같았다. 혹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의 대답을 들었을 때 '좋아할만 하지' 같은 생각이 들 수 있게 남들도 다 내뱉는 틀에 박힌 답이라도 꺼내야 한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나이가 조금씩 먹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건 정말 사소하고 나의 일상과 맞닿아 있어서 굳이 나는 이게 좋아, 라고 말하지 않아도 될 것들 뿐이고 그런 것들을 사랑하고 만족하는데 남들과 똑같은 답변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물론, 대화를 빨리 마무리하고 싶은 상황에서는 이어나갈 수 없게 딱 떨어지는 답변으로 마무리를 하고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말했을 때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뤄진다는 걸 지금은 경험으로 깨달아 가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그러다가 톡 튀어나온 작은 구름 하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내는 소리
산책하기 딱 좋은 선선한 날씨
바닥에 흐트러져 있는 빨갛고 노란 단풍들
백색소음 가득한 도서관에서 책 읽는 순간
음악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조용한 카페에서 마시는 음료
갑자기 땡기는 음식을 바로 먹을 수 있을 때
대나무자리 위에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멍 때리는 시간
엄마가 퇴근하고 와서 가족이 다같이 티비를 보는 유일한 시간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에어컨을 틀어 놓은 집에 들어서는 순간
동생을 보러 간 부모님이 하루도 안 돼서 전화가 와 "안 보고 싶어?"라고 물어볼 때
오랜만에 연락해도 ㅋㅋㅋ 남발인 친구들과의 카톡 대화창
순간순간 떠오르는 장면도 있지만 그 날 따라 문득 좋았다가 다시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들도 정말 많다. 하지만 그것들에 연연하지 않는다. 언젠가 비슷한 순간이 오면 또 좋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인 것 같다. 무겁지도 않고 심오하지도 않고 가벼워서 더 내 마음을 치고 지나가는 것들을 나는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