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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옹 Feb 05. 2024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살고 싶지만

“우리는 머리와 마음 두 가지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 머리로야 무슨 생각인들 못하겠어요. 마음은 함부로 이렇게 저렇게 할 수 없지요.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여겨요. 머리로 쓴 글은 미사여구는 되지만 마음으로 쓴, 심금을 울리고 여운을 남기는 글은 못 되지요.”

(전우익 지음,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 현암사, 1995, 139쪽)     




나는 어릴 때부터 셈을 좋아했다. 학창 시절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수학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되어 있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이 전공인데도 다른 어느 과목보다 (경영)수학이 재미있었다. 졸업과 함께 남들 따라 장에 가듯 사기업에 들어갔으나 틀에 매인 업무에 적응하지 못해 이내 그만두었다. 달리 방도가 없어 결국 좋아하는 수학을 활용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예정에 없던 외국에까지 나가 공부를 계속했다. 학위논문 역시 수학과 관련한 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니 내가 머리를 쥐어 짜내야 하는 연구직을 업(業)으로 삼십 년 넘게 보낸 건 되돌아 나올 수 없는 일방통행과도 같은 것이었다. 


머리를 굴리고, 머리로 계산하고, 머리를 짜내 무언가를 하는 것이 본업이다 보니 늘 머리는 무거웠고 마음은 허전했다. 그런 나를 달래주고 위안을 준 건 책이었다. 책은 분명 머리를 써 읽었는데, 신기하게도 가벼워진 건 머리였고 채워진 건 마음이었다. 서가 앞에 서면 책은 나를 설레게 했고, 읽고 있으면 기분 좋게 만들었으며, 읽고 나서는 여운을 남겼다. 내가 책 읽기에 기댄 건 마음을 조금이라도 살리려는 본능이 작동한 것인지도 모른다. 


머리로만 살아온 내 삶의 관성은 여전히 세다. 은퇴해서 하게 된 글쓰기조차 머리로만 하는 것 같아서다. 마음으로 쓰고 싶지만, 머리로만 사는 게 체질처럼 굳어져 버려 쉽사리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아쉽지는 않다. 책이 머리를 가볍게 하고 마음을 채워주었듯, 글쓰기도 머리를 가볍게 해주고 빈 마음 한 귀퉁이를 조금이라도 채워주니 말이다. 하여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더 바란다면 그건 욕심이다.     


ⓒ 정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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