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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옹 Feb 13. 2024

하루의 삶과 하루만큼의 죽음

“하루의 삶은 하루만큼의 죽음이다. 어떻게 생각하든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새날이 밝으면 한 걸음 더 죽음에 다가선다.” 

(유시민 지음, 「어떻게 살 것인가」, 아포리아, 2013, 47쪽)     




흔적 하나 남지 않을 인생을 아등바등 살았다. 그렇게 이만 삼천이 넘는 하루들을 버텨냈다. 살날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몰라도 산 날만큼 죽음에 가까워진 건 안다. 


세상에는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얻음이 있으면 잃음이 있으며, 사랑이 있으면 미움이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어둠 없이 빛이 드러나지 않듯 죽음 없는 삶은 없다. 


죽음이 삶의 대가여서일까? 아니다. 삶에는 죽음이 친구 같은 것이다. 필요조건이다. 영원히 계속되는 삶을 떠올려 보라. 잠깐 사는 인생도 고통의 아수라 세상인데,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삶은 진정 무간지옥이다. 그러니 죽음을 머금은 빛깔이 삶을 드러내는 본디 빛깔인지 모른다. 


죽음이 배어있어도 삶의 본질은 축복이다. 존재 이전의 세계에서 벗어나 실존의 세계를 맛보게 해주는 기적 같은 사건이 내게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진, 허무하고 의미 모를 삶이지만 짧다고, 힘들다고 마냥 불평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삶은 여전히 힘들다. 고통이다. 머리로는 축복인 줄 알아 감사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부아가 치민다. 그래서다. 이제는 피했던 죽음을 대면하기로 했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살고 싶어서다. 죽음을 생각하는 그만큼 삶은 빛을 낼 것이어서다. 죽음을 품은 그 햇살은 내가 살아 있는 순간마다 기쁨, 충만함, 소중함, 뿌듯함 그리고 즐거움이라는 나만의 의미를 만들어 낼 것이어서다.     


ⓒ 정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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