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옹 Jan 20. 2024

희망과 절망은 따로 있지 않다

“피아노는 우리에게 반음(半音)의 의미를 가르칩니다. 반(半)은 절반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반(伴)을 의미합니다. 동반(同伴)을 의미합니다. 모든 관계의 비결은 바로 이 반(半)과 반(伴)의 여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반의 환희’는 절반의 비탄과 같은 것이며, ‘절반의 희망’은 절반의 절망과 같은 것이며, ‘절반의 승리’는 절반의 패배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절반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절제할 수만 있다면 설령 그것이 희망과 절망, 승리와 패배라는 대적(對敵)의 언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동반의 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신영복 지음, 「더불어 숲: 신영복의 세계여행」, 돌베개, 2015, 171쪽)     




반쯤 찬 물잔을 두고 우리 마음은 물이 ‘절반이나 있네’와 ‘절반밖에 없네’로 나뉜다. 절반은 ‘있음’과 ‘없음’ 모두를 품고 있는 셈이다. 일어난 일이 좋은 일이라 여겨 기뻐했는데 후에 그렇지 않은 일로 되거나 반대로 낙담한 일이 좋은 일로 이어지는 전화위복의 상황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삶도 그러함을 느낄 것이다. 성공에는 실패가 배어있고 실패에는 성공이 배어있어서다. 절반을 경계로 이쪽의 절반과 저쪽의 절반을 무 자르듯이 자를 수 없어서다. 그러니 운이 좋아 성공만 하고 살아왔더라도 성공한 그만큼 실패가 스며든다. 그 실패가 터져 나오면 스며든 만큼 나를 아프게 할 것이다. 성공에만 매달려 사는 것도, 실패에만 빠져 사는 것도 모두 어리석은 이유다. 하여 피아노가 반음과 온음의 조합으로 아름다운 선율을 내듯이 내 삶을 두 개의 절반이 내는 화음으로 조화롭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절망이 크더라도 희망이 배어있다고, 동반(同伴)하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좋은 일에는 감사와 겸손을, 나쁜 일에는 희망과 용기를 갖는 태도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정승주 

이전 17화 살아있는 존재는 따뜻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