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진 얼굴

by 서옹

“늙은 어부의 주름에는 바다에서 파도와 싸우면서 생긴 인연이 새겨져 있고, 나이 든 농부의 주름에는 땅과 싸우면서 생긴 인연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주름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이 고유한 향내를 풍기는 아름다운 꽃과 같다. ”

(강신주 지음, 「철학이 필요한 시간」, 사계절, 2011, 62쪽)




집에 있는 날이 많다. 재택 일을 해서가 아니다. 은퇴한 자가 가진 특권 덕에 책 읽다 산책하고 내킬 때 글 쓰며 노닐고 있어서다. 무덤덤한 일상이지만 자유롭고 편안하다. 내 인생에서 이런 긴 망중한의 때가 있었나 싶다.


오늘은 모처럼 장거리 외출 날. 설레는 마음으로 정성스레 면도하고, 머리 감고, 외출복으로 단장했다. 거울을 봤다. 한껏 차려입은 옷매무새보다 얼굴에 먼저 눈길이 간다. 오늘따라 주름이 도드라져 보인다. 회백색 머리칼 아래 새겨진 검은 줄무늬들이 살아온 세월만큼 깊다. 얼굴 어디에도 젊음의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주름이 밉지는 않다. 아쉽지도 않다. 내게 다가온 수많은 인연들을 무사히 헤쳐온 훈장 같은 흔적이라 여겨서일까. 더해 때마침 이어지는 저자의 문장이 마음을 한층 더 느긋하게 해준다. 참 다행이다.


“나이 들어 주름진 얼굴을 만족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젊음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주름을 보면서 자신이 마주쳤던 수많은 인연들을 떠올리는 삶, 그것은 젊고 탱탱한 얼굴보다 더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같은 책, 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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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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