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는 "억압된 것은 반드시 회귀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그 말이 현실화되는 것을 지난 8년간 괄목해 왔다. 이것은 내 남편의 이야기다. 남편은 실용주의 만렙의 부모님 사이에서 막내로 자랐다. 그는 언제나 남매들의 물건을 마지막까지 쓰고 버려야 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부모님 품 안에서 사는 내내 자신만의 것을 가진 기억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그중 두 분께서 유난스러울 정도로 자식에게 허락해 주시지 않았던 것이 바로 장난감이었다. 남편의 이야기로 유추해 보면 두 분께서는 한 철 유희감으로 돈을 쓰는 일을 죄악시하셨던 것 같았다. 그런 부모님과 함께 조용히 생활하는 중이라 여겼던 남편에게 놀랐던 것은 신혼집으로 짐을 나르던 날이었다. 그가 신혼집으로 날라온 박스들 속은 부모님 몰래 모아온 수집품들로 가득했다. 텀블러, 프라모델, 레고까지. 그 총천연색의 수집품들을 보면서 당시에는 어쩐지 조금 짠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그는 현재 자신 안에 숨겨 둔 흑염룡을 마음껏 꺼내어 휘두르고 있다. 갖고 싶었던 모델의 장난감들을 '자식'이라는 매우 그럴듯한 당위를 근거 삼아 사들이는 그를 보며 삶의 초년에 받은 억압이 족히 수십 배는 몸을 키워 회귀하는 장면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기분이다. '오와 열'을 사랑하는 나는 사방에 과자 부스러기처럼 흩어진 레고 조각들을 쳐다보면 매일같이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정리와 청소에 대한 억압이 자식들의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회귀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적절하게(?) 화를 내고자 매우, 그리고 아주 애쓰고 있다.
전 날 수영장에서 입었던 수영복이 까슬한 가을 공기에 만족스럽게 말랐다. 착착 정리해 제 자리에 넣어두려 서랍을 연다. 언제 이렇게 늘어났지?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대충 헤아려 보니 족히 열흘은 다른 수영복을 입을 수 있는 수준이 되어있다. 실내복을 제외하면 사계절 옷을 통틀어 채 50벌이 되지 않는 나는 잠시 할 말을 잊는다. 고백하자면 나는 지인들 사이에 유명한 패션 테러리스트였다. 그럴듯한 키와 팔다리를 보람 있게 쓰지 못한다는 혹평이 늘 따라붙었다. 잘 해보려 애쓸수록 엉망이 되는 입성을 낸들 어쩌랴. 그 때문에 현재는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들은 옷을 지속해서 입고, 같은 제품으로 교체해 가며 옷장을 모듈화 한 채로 살고 있다. '옷 좀(좀이 아닐 수도 있다) 못 입는 게 어때서'하며 아무럴 것 없이 이야기했지만, 그 기억이 나의 내면에 억압으로 남은 것일까. 그런 내게 한 벌 만으로도 룩이 완성되는 수영복의 세계는 가히 신세계와 같았다. 이쯤에서 내게 한 가지 억압이 더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정숙함'이다. 불과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교문 앞에서 학생 주임 선생님이 여학생들의 치마 길이와 머리 길이를 단속하는 일이 당연한 풍경처럼 그려지던 때였다. 그와 같은 분위기의 학교와 사회 속에서 '조신한 몸가짐'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했고, 콧대 높은 사람들의 의견에 '할 짓을 다 하고 다니는 것'으로 반항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과의 조우에서 치마의 길이처럼 눈에 보이는 조신함으로 상대를 파악하려 드는 스스로의 졸렬함에 조금씩 마음이 닳아갔다. 그런 나의 내면에 정숙함에 대한 억압이 회귀한 것은 수영을 시작하고 나면서부터다. 수영을 시작함과 동시에 팔과 다리에 소매가 붙은 수영복은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수영장에 드나드는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차츰 수영복의 레그 홀이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등은 시원하게 비어 있을수록 좋다는 공공익선(空空益善)에 망설임 없이 엄지를 들어 올린다. '야박하다'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엉덩이 천으로 가리다 만 듯한 네 쪽난 엉덩이가 썩 즐겁다. 그랬다. 내 억압은 네 쪽 난 엉덩이와, 시원한 뒤태를 보여주는 수영복으로 회귀한 것이다. 가끔씩 등굣길 교문 앞에서 귀밑머리 3cm가 넘는다는 이유로 문구용 가위를 이용해 내 머리칼을 '숭덩'하고 잘라 간 체육 선생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 사람이 지금 내 수영복 차림을 보면 뭐라고 할까. 나는 그 선생의 눈을 쳐다보며 귀밑머리를 3cm에 맞춰 자르는 것으로 정숙한 학생을 길러내지 못 한 것에 대해서 통쾌하게 웃어주고 싶다. 그리고 뒤돌아 네 쪽 난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가야지. 당신이 잘라 낸 1cm의 머리카락으로 내 안에 꿈틀거리는 풍기 문란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