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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상분직(嘗糞職)이라는 직책이 있었다. 본업은 임금의 주치의로, 지금으로 치면 서울대 의대를 졸업해, 동대학 석·박사 과정을 거친 대통령 전담 주치의를 맡는 인재중의 인재다. 상분직의 역할은 '매화'를 맛보고 임금의 건강 상태를 진찰하는 것. 여기서 '매화'란 임금의 대변을 말한다. 임금님의 똥에서는 매화 향기가 난다나. 즉 현대에서 차관급 예우를 받는 초 일류 엘리트가 조선시대에는 '항상 똥을 맛본다'는 의미로 상분직(嘗糞職) 불렸다.
아픈 것을 숨기는 일은 참 쉽다. 지금이야 혈액 검사, X-ray, CT 등 건강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의학적 기술이 있지만, 옛날에는 똥만큼 직관적인 건강 체크리스트(?)가 없었다. 스스로의 건강을 숨기려고 해도 똥이 건강하지 않다면 바로바로 드러나게 된다.
이 지극히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체크리스트는 비단 사람한테만 적용 되는 것이 아니라서, 많은 반려인이 똥을 치우며 반려동물의 건강을 체크하곤 한다. 우리집에는 실외 배변을 하는 아이가 있어, 직접 똥을 치울 일이 많은 것이 참 번거롭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한다. 꼭 밖에서 거사를 치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모습을 보면, 자기가 건강하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이러는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한 번은 평소처럼 야외 배변 산책을 나갔는데, 갓 짜낸 녹즙처럼 초록색 기운이 감도는 응가가 나왔다. 평소에 변비 때문에 고생을 하던 아이여서, 신호(?)를 보냈을 때는 정말 뛸 듯이 기뻐하며 나갔는데 막상 탄생한 결과물을 보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강아지의 응가로 건강을 점검할 수 있다던데. 난생 처음 보는 응가의 색깔과 딱딱한 모양에 튀어나온 가슴을 붙잡고, 갓 뽑아낸 응가를 소중하게 든 채 동물병원에 달려갔다.
조급한 내 마음과는 달리 아주 기본적인 검사를 마치고 수의사님은 "이 정도는 괜찮다. 산책 중에 풀을 많이 씹었나보다"라며 너털웃음을 터트리는데, 옆에서 자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쳐다보는 아이가 어찌나 얄밉던지. 강아지의 호기심과 견주의 초조함은 비례한다더니 그 말이 꼭 들어 맞는다.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서 펫보험을 따로 가입하지 않았다. 때문에 아이들은 아플 때가 아니면 병원에 갈 일이 잘 없는데(병원에 가려고 하면 귀신같이 눈치를 채기도 하고), 응가를 치우는 과정이 번거롭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간이 건강검진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앞으로도 열심히 치워줄테니 건강하게만 싸주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