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신혼집이 있는 광명에서 대교 하나를 걸어서 넘어오면 마포까지 가는 좌석버스를 탈 수 있었다. 지하철이나 일반 버스보다는 비용은 조금 더 비싸도 잠깐 30~40분 정도는 새우잠이라도 편하게 잘 수 있었고, 거기에 덤으로 신혼인 두 사람이 함께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시간도 너무 행복했었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다시 또 만나서 시내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함께 즐거운 신혼 데이트를 즐기곤 했었다.
그런데 그것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어떻게든 적응해 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진실 씨는 더 이상 NS컨설팅을 다닌다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사랑 씨와 상의 끝에 그만두고 다른 회사를 찾아보기로 했다.
매달 월세를 내야 하는 날자는 빨리도 다가오는데 가장으로서 영 체면이 서질 안았다. 회사를 퇴직한 진실 씨의 업무는 매일매일 발행되는 일간지의 지면에 올라오는 모집공고를 확인하고 올라오는 회사마다 직접 찾아가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는 것이 주 업무가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대기업 위주로 서류를 넣었었으나 서류 전형마저 통과가 힘들다 보니, 언젠가부턴 가는 중견기업도 아닌 더 작은 소기업까지 점차적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대학 졸업 당시에 겪었던 서러움이 다시 떠오르지만 이번에는 조금씩 낮춰서 라도 하루빨리 진정한 자기 일을 찾아 정규직으로 당당하게 근무하고 싶었다.
진실 씨는 뭐가 부족한 것일까? 고민고민 하면서 하나하나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생각날 때마다 보충하고 또 찾고를 반복했다. 그때 운전면허라도 취득하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운전면허라도 취득을 하고 싶었지만, 학원비가 필요했다. 이를 눈치챈 사랑 씨의 통 큰 결정으로 운전학원에 등록을 해서 다니기 시작했다.
필기시험은 단 한 번에 합격을 했다. 그런데 실기에서는 자꾸 떨어졌다. 운전면허 시험을 보는 것도 그리 편하지만은 안았다. 수입증지 대금도 있어야 하지만, 당시에 광명시에는 운전면허 시험장이 없어서 안산시까지 가서 접수하고 또 날자 맞춰서 다시 방문해서 시험을 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시골 출신이라지만 맨날 했던 일이 몸을 써서 하는 힘든 일이었지, 설마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기계를 작동하는 것은 아니어서, 운전을 하기 위한 면허시험을 본 다는 것은, 당시에는 그리 쉽지 않은 선택이긴 했다. 실기에서 3수 만에 당당하게 1종 보통 면허시험에 합격을 했다.
그렇게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동아일보에 3단 30 정도나 될까 말까, 아주 작은 모집공고가 올라온 회사가 있었다. 당시 동아, 조선, 중앙일보는 광고료가 비싸서 작은 회사들은 특별한 제품판매용 홍보가 아닌 이상 모집공고를 여기에 게재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동아일보에 모집공고를 게재할 정도라면, 상호는 모르는 업체 일지라도 중소기업으로서는 괜찮은 회사일 것으로 판단하고 무조건 서류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왠지 이 업체는 진실 씨한테 꼭 맞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 사이에도 여러 곳에서 면접을 1차 2차까지 봐 봤지만 대부분이 영업직이거나 다단계 업체였고, 게 중에 괜찮을 것 같은 업체들은 하나같이 아무런 연락 없이 발표 날자가 지나가 버리곤 했었다.
무슨 제품을 만드는 회사인지는 몰라도 영업직만 아니면 무조건 다니리라는 각오를 하고 정성 들여 자필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또 검토해서 정해진 날자에 맞춰서 제출했다.
직접 찾아가서 확인 한 회사의 외형은 생각과는 다르게 영 초라해 보였다. OO구청 옆에 4층 건물에 3~4층을 임차해 사용하는 K전자로, 전형적인 제조 소기업이었다. 영업직만 아니면 다니겠다고 마음먹었던 진실 씨의 자존심이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자괴감이랄까 이런 기분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러나 진실 씨의 현실 상황은 썩은 동아 줄이라도 잡아야 만 했다.
며칠 후 그 K전자에서 면접에 응 하라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장소가 OO구청 옆이 아닌 신도림역 근처 빌딩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아이!! 이 회사도 다단계 회사 인가?" 하는 의심까지 들어 면접에 갈까 말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당시가 자석요를 판매하는 다단계 업체들이 한창 성황을 이루고 있던 시절이었다. "일단 합격되고 나서 다단계 회사라면 출근을 안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면접에 응했다.
그런데 면접 장소는 지상 6층에 지하 2층으로 작지 않은 건물이었지만, 아직 공사도 마무리가 덜 된 어수선한 그 건물 5층에서 면접을 본다고 안내표시가 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아직 가동이 되질 안아서 5층까지 터벅터벅 힘겹게 걸어서 올라가 문을 열었더니, 텅 비어있는 공간에 떨렁 면접자 대기 의자 20~30여 개와 면접관 의자 3개 긴 테이블 한 개가 전부였으며, 바닥 타일 공사도 안되어서 임시로 비닐을 깔아 흙먼지만 덮어 놓은 상태였다. 참 황당했다.
"에이!!! 그냥 가버릴까?"
"너무 이상 하잖아!!"
진실 씨가 어디든 약속 시간보다 좀 일찍 가는 생활방식 때문에 1시간을 일찍 왔기에 제일 먼저 면접 담당자도 오기 전에 도착해서 긴장한 탓에 화장실만 여러 번 들락 거린 한참 후에 담당자가 오고 한 명 두 명 면접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다가오자 다들 진실 씨처럼 구직에 쫓기는 사람들인지, 비어 있던 면접 대기자 의자는 한두 개를 제외하고는 꽉 채워졌다. 정해진 시간에 도달하자 담당자는 그런 장소에서 필기시험을 치른다며 시험지 한 장 싹을 나눠 주면서 30분 내에 25문제를 다 풀고 제출해 달란다. 이런 짜임새를 보면 규모가 있는 회사인 것도 같고...
영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시험 문제는 아버지 성함 한자로 쓰기 같은 아주 기초 상식 문제로 채용 조건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면접관들이 어떤 분들 인지도 알려 주지 않고 면접관 자리가 채워지자 담당자가 정해진 번호대로 면접을 진행했다.
7번째로 진실 씨는 면접 자리에 앉았다. 아무 말 없이 위에서 아래로 몸 전체를 한번 쭉 훑어보면서 관찰을 하더니 담당자가 갑자기 "간단하게 자기소개 한번 해 보세요?" 한다. 면접관들 앞이다 보니 바짝 움츠러들었다.
대학생활 때 그 많은 자리에서 진행을 해 보았고 긴장 한번 하지 않았었는데 "면접이라 그런가?..." 잠시 머뭇거리다 정신을 다 잡고 당당하게 출신지역부터 가정교육 등 당시 기본적으로 자기소개서에 나열하던 내용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자세히 나질 않지만, 자신감 있게 목청도 큰 사람이 더 큰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다음 질문은 "만약 입사를 하게 된다면 어떤 업무를 하고 싶은가요?"라는 질문에 진실 씨는 인사부서나 기획 부서에서 업무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실은 당시 사회 경험이 많지 않던 진실 씨는 인사부서 업무나 기획부서 업무가 실제 이 회사에 존재하는지, 무슨 일을 하는 부서인지는 솔직히 말해 자세히 모르면서 영업부서가 아닌 것 같은 이 두 개 부서 업무를 하고 싶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그랬더니 면접관이 "그렇다면 이 업무가 아니면 합격하셔도 출근하시지 않겠네요?" 라면서 반문을 했다. 그때는 또 그건 아니라면서 얼버무리면서 대답을 한건지 만건지 모르게 번복을 했다.
무슨 말을 한 건지 나중에 생각해 보니 진실 씨 본인도 이해가 안 갔다. 그럼 며칠 후에 검토해서 연락 주겠다는 말과 함께 면접은 마무리되었다.
신도림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흥역까지 오는 내내 자신의 왔다 갔다, 명확하지 않은 대답을 한 것을 후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합격 소식이 오기만을 바라면서 집에 도착했다.
담당자의 회사 설명을 들어 보니 당시 회사는 급 성장 하는 회사로 면접장소 건물이 그 회사 사옥을 새롭게 신축해서 만약 진실 씨가 합격해서 출근하게 되면 그 회사 정규직 모집 1기생이 되는 것이었다. 제품도 유, 무선전화기나 마이마이 등 당시 유행하던 첨단 전자제품에만 들어가는 전자부품 전문업체라 미래가 기대되는 회사 일 것으로 판단이 되었고, 그래서 더욱더 꼭 합격이 되기만을 바라고 또 바래졌다.
K전자 면접을 본 다음 날 일전에 면접을 보았던 S제약에서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이 갑자기 왔다.
그런데 당시에는 컴퓨터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너무나 많은 여기저기 회사에 입사서류를 제출하다 보니, 어떤 회사 무슨 부서에 지원했는지 조차도 기억할 수가 없었다.
S제약은 그래도 매스컴에서 많이 들어서 귀에 익숙한 업체이고, K전자가 꼭 가고 싶지만 발표일 까지는 말미가 있어서 경험 삼아 출근해서 무슨일인지 보고 맞지 않은 일이면 다음날부터 출근을 하지 않을 생각으로, 다음날 용산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그런데 S제약 본사가 아닌 영업소 사무실이었고, 담당 업무도 진실 씨가 제일 하기 싫어하는 영업직이었다.
"어! 어떻게든 핑계 대고 가야 하는데..." 이렇게 도망 칠 궁리만 하는 사이 이미 직원회의가 시작되었고, 일사천리로 담당선배가 정해지고 바로 따라서 용산구 관할 약국으로 선배를 따라나서게 되었다.
이 회사는 이런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뭐 진실 씨가 다른 대응을 할 기회를 아예 차단해 버렸다.
하루종일 담당선배 일정을 따라다닌 후 저녁에는 축하 파티를 해준다면서 호프집으로 데려갔다. 진실 씨는 거기에서 영업담당자는 술도 잘 마셔야 한다면서 여기저기서 따라 주는 축하주를 거절도 못하고 받아 마시다 보니,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는지 정신을 잃고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기억을 할 수 없었다.
다음날 정신이 들어 깨어났을 때는 이미 점심이 한참 지난 오후였다. 전날 회식의 기억은 전무했다. 더 이상 S제약에는 연락도 할 수 없었지만 담당업무 또한 적성에 맞지 않아 하루 근무 후 말없이 그만두고 말았다. S제약에서도 진실 씨를 다시 찾지도 않았다.
하세월로 K전자의 합격자 발표만을 학수고대하며 지냈다. K전자에 전화해서 발표가 났느냐고 수차례 물어도 보았다. 그러나 본사 이전 관계로 인해 며칠 지연되고 있다면서 담당자는 조금만 더 기다려 달란다.
진실 씨의 마음은 자꾸 더 조급함이 커 저만 가는데....
며칠 후 다행히도 K전자에서 연락이 왔다. 합격되었으니 12월 26일부터 본사 사옥으로 출근을 하란다. 연말이고 뭐고 진실 씨 입장에선 따질 겨를이 없었다. 얼마 만에 느끼는 이 즐거움인데...
"아!!! 나도 이제 정규직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이다."
몇 백번 혼자 속으로 되뇌며 웅얼웅얼 대면서 기쁨을 만끽했다. 사랑 씨도 진실 씨의 마음과 다를 바 없이 얼마나 즐겁워 하고 기뻐하는지 말은 안 해도 표정으로 읽을 수 있었다.
사랑 씨는 그동안 진실 씨가 결혼하자마자 실업자가 되는 바람에 진실 씨 한테도 친정 식구들 한테도 뭐라고 말도 못 하고 혼자서 많은 속알이를 하면서 싸였던 응어리들이 모두 날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발 오래만 다녀 주길 바라는 소망 하나뿐이었다.
첫 출근을 해서 경비실을 지나는데, 경비가 어디 가느냐며 제지를 했다. 다른 때 서류 제출하러 갔을 때는 경비가 제지하면 왠지 죄인처럼 움츠러들면서 말도 더듬고 뒤로 한 발짝 물러 서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이번에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오늘 신입사원으로 첫 출근하는 김진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큰 소리로 인사를 하자 경비아저씨가 깜짝 놀라며 5층 회의실로 올라가면 담당자가 기다리고 있다면서 자세한 위치 안내까지 해주었다.
면접 당시에는 마무리가 덜 되었던 공사는 아랑곳없이 아주 깔끔한 건물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이곳이 내가 정규직으로 근무할 첫 직장이며 사옥이라니 가슴이 뿌듯하면서 뭉클 해 졌다.
5층 사무실 입구에서 담당자로부터 인사카드 서류와 작업복(회사가운)을 받아 들고 대기실인 회의실로 들어섰으나 오늘도 역시 진실 씨는 일찍 온 관계로 회의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담당자로부터 받은 회사가운을 입고 벽에 걸린 거울을 보는 진실 씨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벌써 만발해 있었다.
인사카드를 쓰면서 시간이 조금 흐르자 진실 씨와 동기 인 듯한 분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들어와 자리를 채워갔다. 15명... 진실 씨 입사 동기로 합격한 사람이 15명이나 되었다.
아니 그 정도로 큰 회사는 아닌 것 같은데 15명을 뽑았다는 건,
혹시
"다단계로 물건을 팔아먹으려고 많이 뽑은 건 아니겠지?"
아니면
"제조공장에서 일할 생산직을 뽑은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이 중에서도 테스트 후 또 탈락자가 있다는 것인지!!!"
머릿속은 많은 상상으로 혼돈이 왔다.
당시 K전자는 수주된 오더는 많이 받았는데, 제품 생산이 따라 주질 못하다 보니 여기저기 하청에 하청을 주어 가면서 겨우겨우 납기를 맞추고 있었고, 본사에서 직접 생산을 하질 못해 외주에서 생산을 하다 보니까 품질에 문제가 많이 발생해서 사세를 확장하고자 본사 사옥 준공과 동시에 전사적으로 인원을 충원해서 제대로 구성된 회사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인원을 전폭적으로 많이 충원했던 것이었다.
진실 씨는 마지막 담당업무 배치를 위한 최종 업무 면접에서도 인사부서 업무나 기획부서 업무를 하고 싶다고 말을 했으나, 당시 K전자에는 인사부서나 기획부서가 따로 없었고 이 모든 총괄 업무를 총무부에서 모두 처리하고 있었기에 총무부로 발령을 내주었다.
그런데 총무부로 배정을 받고 출근해서 상황 파악을 해 보니, 고졸 출신인 부서장은 대졸인 진실 씨를 처다 보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교육이나 업무를 배정해 줄 마음도 없는 듯했다. 다행히 바로 위 1년 차 선임이 챙겨주는 몇 장 되지도 않는 회사 연혁 파일만 구석자리에 처박혀 앉아서 며칠째 보고 또 보고 뒤적거리면서 시간만 何歲月로 보내고 있었다.
총무부 업무라는 것이 신입사원이 바로 맡아서 일을 처리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긴 했다. 전반적으로 회사 돌아가는 상황도 알아야 했고, 더군다나 총무부에서 발행되어서 나가는 모든 서류들은 회사 직인을 찍어서 외부로 나가기 때문에 조금의 오차가 있어서도 안 되는 중요한 업무임으로 바로 업무를 맡기지도 못했겠지만, 고졸출신 부서장의 대졸자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며칠 후 사장실에서 진실 씨를 호출했다. 혹시 뭐가 잘못되었나 해서 잔뜩 긴장하고 사장실로 들어서자, 임원들이 모두 회의 테이블에 앉아서 진실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 임원들도 진실 씨의 상황을 알고 있었는지 당분간 1 공장에 가서 공장 전반적인 관리를 하면서 서서히 총무 업무를 익힌 후에, 다시 발령을 내서 본사 총무부로 부를 것이니 그동안 1 공장으로 출근하라고 했다.
진실 씨 생각에는 회사 방침이 맞는 것 같으면서도 "아~ 내가 줄이 없이 들어와서 밀려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앞섰다.
"아이!!! 또다시, 그만두고 다른데 알아봐야 하나!!!"
그런데 동기들 중에서 이미 다른 회사 경력이 있던 친구들은 어느 회사나 이런 일은 非一非再 하다면서 조금만 참고 다니다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며 위로를 해 주었다.
1 공장!!! 말만 공장이지... 건축된 지 얼마나 되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낡은 2층 건물에, 제조설비라고는 단종되어 가는 세미볼륨이라는 라디오에 들어가는 부품 제조 설비인데, 일본에서 몇십 년 동안 생산하다가 채산성이 떨어지자 이 고철덩어리 기계들을 누군가의 눈속임에 속아 저렴한 줄 알고 구매해서 들여 온 설비들인데, 국내에서는 사용하는 제품들이 단종되어 버려서 아무런 쓸모가 없어저서 한쪽 구석에 처박아 놓고 생산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어쩌다 A/S용으로 들어오는 소량의 주문만 소화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K전자에서 한창 생산 중인 전자부품 생산 설비는 2층에 겨우 한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생산직원 20여 명만이 제조에 임하고 있었다. 거기에 관리자들이라고 있는 세 사람은, 두 사람은 형부와 처제 관계에 한 사람은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과장 한 명이 전부였다.
발령받은 첫날부터 진실 씨는 막막했다. 정규 1기 대졸사원으로 입사한 사원으로서 회사에 뭔가는 보여 줘야 15명의 동기들 사이에서 어떻게 등이라도 비비며 살아남을 수 있을 텐데, 본사도 아닌 이 구석진 공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발령받은 첫날은 본사에서 할아버지 과장과 만나서 함께 1 공장으로 이동하다가, 사랑 씨와 예정된 일이 있어서 조퇴를 했다. 그리고 사랑 씨를 구로디지털역에서 만나 강남에 있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그 당시 유명인들만이 찾던 산부인과를, 원치 않은 발령으로 꿉꿉한 기분과는 정반대의 아주아주 좋은 일로 사랑 씨와 두 사람이 함께 방문했다.
1 공장으로 출근 한 첫날부터, 1층 여기저기에 흩어 저 처박혀서 몇 년째 부동의 자세로 한 번도 움직임 없이 잠자고 있는, 과거에 K전자에서 생산하다 중단된 세미볼륨이라는 제품을 종류별로, 사이즈별로, 수량 파악을 하고, 샘플을 채취해서, 보드판에 종류별로 붙여 가며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업무를 파악하려면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먼저 알아야 대책이 강구될 것 같았다.
과거에 생산하던 제품이다 보니, 주문이 들어오면 오래 근무 한 형부인 조대리 말고는 어느 누구도 어디에 어떤 제품이 있는지 심지어 할아버지 과장마저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 진실 씨가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정리 밖에 대안이 없다고 판단이 되었다.
한 달여 만에 200여 종의 제품 및 자재를 모두 정리하고 샘플판을 만들어서 한쪽 벽면에 걸어 놓아, 누구라도 수시로 식별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했고, 재고 현황은 서류로 작성해서 본사에 보고서를 올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작업 과정과 결과를 임원들 입장에서는, 누군가 언젠가는 해야 할 일로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를 않아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진실 씨가 지시도 없었는데 자연스럽게 손을 댐으로서 모든 임원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는 후문을 들었다.
그리고 2층에서 생산 중인 전자부품 생산 관련 업무도 1층 과정과 마찬가지로 일일이 직접 파악해서 재고 정리는 물론 생산현황 등도 서류로 정리를 마무리해서 본사에 보고를 했다. 그러자 본사 구매 자재 담당자들은 그동안 재고파악이 안 되고 관리가 안 되어 업무 처리 하는데 엄청 힘들었는데 이제 파악이 제대로 되어 관리가 편해졌다며 너무나 좋아들 했다.
이렇게 4~5개월쯤 지났을까? 이제는 진실 씨가 모든 공정 및 자재들을 파악해서 정리해 놓은 관계로 1 공장 업무는 큰 문제없이 잘 운영되고 있었고, 진실 씨 업무도 조금은 여유를 즐기며 진행할 수 있었는데, 다시 본사 총무부로 발령이 떨어졌다.
"에이!!! 이제 좀 편안하게 업무 좀 하나 했는데..."
"다시 발령이라니..."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진실 씨가 원래 원하던 본사 총무부서로 발령을 다시 받은 것이었다.
앞으로 이 회사에서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본사로 들어가야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성장해서 내 꿈을 펼칠 날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1 공장을 돌아 다시 본사 총무부로 발령받아 첫 출근을 해서 보니, 진실 씨 입사 당시 근무했던 1년 차 직원은 고향에 있는 타 회사로 이직하여 고향에서 근무한다며 이 회사 업무는 아랑곳하지 않고 인수인계도 없이 이미 퇴사를 해 버렸고, 직원 중에는 진실 씨의 2년 대학 후배가 비서실에 입사해서 배치되어 3개월째 근무를 하고 있었다.
진실 씨는 이처럼 본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험지 1 공장에서 본인 일만 열심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대로 계속 1 공장에 머물렀다면 진실 씨의 꿈은 말 그대로 이룰 수 없는 허황된 꿈으로 남겨 지고 말았을 것 같은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1 공장은 본사와는 근무 여건이 많이 달랐다. 당시에 최소한 부서마다 한 대씩은 배치되어 있었던 복사기나 팩스마저도 거기에는 단 한 대도 배치가 되어 있지 않아서, 진실 씨는 복사는 물론 팩스 보내는 방법마저도 배울 수 없었고 한 번도 사용을 해 보지 않아 아예 작동을 할 줄도 몰랐다.
어느 날 복사 할 일이 생겨 그래도 후배가 좀 편할 것 같아 비서실 후배에게 방법을 물었더니 "선배님 복사도 할 줄 모르세요?" 하면서 핀잔주는 말투로 설명해 주는 후배의 모습은 진실 씨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진실 씨가 대학에서 한창 잘 나갈 때 비서실 후배는 이제 갓 입학한 신입생으로 진실 씨를 엄청 우러러보면서 존경했을 그 이상의 선배였었다. 그랬던 선배가 사회에 나와서 한참 후배한테 쓴소리를 들어가면서 같은 부서에서 근무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쉽지만은 않았다.
더군다나 그렇게 차이 나는 후배 앞에서 총무 관련 여러 업무를 인수인계 하나도 받지 못하고 알아 가면서 현실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거기에 고졸 부서장의 견제는 더욱더 힘들게 했다.
그러나 진실 씨는 성실했다. 그리고 잘 익혀 나갔다. 누구한테 가르쳐 달랄 사람도 없었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스스로 혼자서 자료를 보면서 역산으로 계산을 해보며 배우거나, 모든 서류를 전부 찾아서 거꾸로 다시 대조해서 확인해 보거나 등등 나름의 방법을 총 동원해 가면서 업무를 차질 없이 진행해 나갔다.
당시 대표이사가 서울대 출신에 행정고시를 패스한 국내에서는 유명하고 특출 난 분이기에 결재 올리는 서류 하나하나 마다 심혈을 기울여야 했고 더욱더 조심스러워했다.
처음 일을 배울 때는 종이와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며 모든 결재 서류를 이면지에 30cm 자를 대고 연필로 결재서류를 작성해서 결재를 받아야 했다.
왜냐면 아무래도 경험이 많고 자존감이 강한 분이다 보니 외부로 나가는 서류에 오점이 있으면 회사 얼굴이 뭐가 되느냐며, 결재 중에 여기저기 본인 뜻에 맞게 수정하는 부분이 많이 생기게 되었고, 이걸 비싼 종이에 볼펜으로 써버리면 수정했을 때 다시 사용할 수 없어 버리게 되고, 따라서 여기에 수반되는 종이와 시간이 아깝다면서 꼭 이면지에 타이핑도 아닌 자필로 연필을 사용해 써서 결재를 올려 받은 후 타이핑 작업을 다시 해서 내보내다 보니 업무는 몇 배로 더 힘들었다.
이처럼 진실 씨의 뚝심과 대표이사의 자존감 싸움은 기나긴 3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3년이 지나자 대표이사는 진실 씨의 모든 결재 서류를 수정 없이 바로 통과시키기 시작했다.
그 해 10월 대졸이라며 보이지 않게 업신여기고 무시하던 부서장이 갑자기 퇴사를 했다.
대표이사 앞에서는 진실 씨한테 모든 업무를 다 빠짐없이 인수인계 하겠다고 했지만, 물론 실제적인 인수인계는 단 한건도 해 주지 않았다. 그간의 자료 한 장도 넘겨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진실 씨가 그런 사항을 일일이 보고 할 수도 없었다. 보고해 보았자 도움이 될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진실 씨가 업무 능력이 안 되어서 핑계 댄다는, 능력 평가만 받을 뿐 도움을 줄 사람도 없었다. 당장 12월 말 회계 결산자료가 큰 난관이었다. 여태껏 총무 업무에만 매달려 진행하기도 했고, 부서장이 독점하고 쥐고 있던 회계 업무는 불가침 업무로 분류되어 고졸 출신 부서장 혼자서만 독립적으로 진행했던 업무인지라 전혀 해보지 않았고 알 수도 없었던 업무였다.
진실 씨는 방법이 없었다. 기간은 결산까지 3~4개월, 그 기간 안에 모든 결산 업무를 파악하지 않으면 그 해 결산은 펑크가나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진실 씨 커리어에도 타격이 클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진실 씨는 그날부터 K전자의 창립 때부터 현재까지 4~5년 동안의 모든 결산자료를 전부 거꾸로 맞춰 대조해 보면서, 결산서식에 맞게 검산을 하기 시작했다. 계정과목도 모르던 진실 씨 입장에서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이해를 할 수도 없었고, 이해가 되지도 않았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기록으로 남겨서 몇 번이고 수없이 반복적으로 보면서 이해를 해야만 했다.
결산서라는 것이 보기에는 이렇게 해서, 이렇게 연결되어서, 이렇게 된다고, 말로 설명하기는 참 쉽지만, 앞 서류에서 1원만 틀려도 뒷 서류에서 차질이 생기고, 이 틀린 자료가 내년 내 후년 계속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당해연도 자료로 끝이 나거나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었다. 영속해서 연결되어 가는 서류였다. 그래서 앞 뒤를 함께 이해하면서 정해진 룰에 맞춰야 했다.
이 모든 자료를 전부 대조하면서 회계준칙을 이해해 가면서 기존 업무를 진행하는데 진정 피가 마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한테 말을 할 수도 물어볼 수도 없는 진실 씨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었다.
그 당시는 전산이나 컴퓨터가 없었던 시대라서 모든 자료가 다 수기로 작성된 종이전표였고, 수기로 작성된 서류들이었다. 일일이 모든 서류를 계산기로 확인하면서 검산을 해야 하는 시대였다. 감사하게도 주판을 사용하던 시절이었으면 더 힘들었을 텐데 그 시대는 지나서 전자계산기를 사용하던 시대에 태어나 이 업무를 하고 있음에 감사할 수 있었다.
당해 결산서와 결산서류는 어떻게 되었을까?
설립 때부터 계속 담당해 오고 있던 담당 세무사가 진실 씨가 작성해 올린 결산서류를 보고 대표이사께 한 첫마디는 진실 씨가 여태껏 들었던 어떤 칭찬 보다도 머릿속 깊숙이 박혀서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당시 세무사는 진실 씨네 회사 대표이사의 후배로 같이 직장 생활도 함께 했던 대표이사와 절친 선 후배 사이였다.
"선배님!!! 물건 하나 들어왔네요?"
"과거 결산서류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원래 어디서 회계 쪽 경력을 쌓고 온 친구인가요?"
"선배님은 인복이 많으신 것 같네요?"
"요즘 이런 직원 구하기 아주 힘듭니다. 그럼요!!!"
고졸출신 부서장이 작성했던 결산서류는 손익계산서 일부분만 겨우 나왔을 뿐 당기순이익도 산출이 안 되어 있는 데다, 당기순이익이 정확히 산출이 되지 않으면 대차대조표는 물론이요 이익잉여금 처분서 또한 작성할 수 없었는데 이처럼 마무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료를 다 되었다고 회사에는 보고 하고 나머지 일은 세무사에게 떠넘겨 버리니...
세무사 입장에서는 내년에도 계약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선배인 대표이사한테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고 말도 못 하고 담당세무사가 직접 그 바쁜 시간을 쪼개서 모두 처음부터 다시 작성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제일 기본인 결산서가 나오지 않았으니, 이어지는 결선서 부속서류도 당연히 세무사가 모두 작성해서 보고서까지 꾸며야 했고, 마무리된 자료를 고졸출신 부서장에게 넘겨주면 그 자료를 자기가 모두 작성한 것처럼 4~5년을 그렇게 회사에 보고 하는 눈가림식 업무를 하고 있었으니, 혼자서 독점식으로 업무를 감추면서 할 수밖에 방법이 없었던 것이고, 이런 상황이 진실 씨가 오면서 밝혀 질까 두려워서 총무부에 신입사원이 들어오는 것을 달가워 할리가 전무했다. 그래서 스스로 지쳐서 퇴사하기만을 바라면서 업무 배정도 안 해 주고 구석에서 하세월을 보내게 했던 것이다.
진실 씨는 이번이 처음인데도 담당 세무사로부터 자문 한번 받지 않고서도 모든 결산서류를 완벽하게 마무리해서 세무사가 검토만 하고 끝낼 수 있게 해 주었으니, 세무사 입장에선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겠는가?
담당 세무사는 진실 씨를 향해 몇 번이나 감사의 뜻을 표하고 당 해 결산은 큰 무리 없이 마무리되었다.
이처럼 진실 씨는 모든 총무업무 및 결산업무까지 모든 업무를 스스로 파악한 후 회사 내에서 제일 나이가 젊고 입사기간이 짧은 사람이 총무부 부서장을 맡아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감 있고 성실하게 업무를 즐기면서 차질 없이 진행해 나갔다.
회사도 나날이 성장해서 진실 씨가 입사 당시에 겨우 50~60여 명이던 직원들도 국내에 300여 명 필리핀에 2000여 명, 중국에 1000여 명 국내 외주업체 10여 업체 등 엄청나게 많은 성장을 했는데, 이 중추적인 역할은 회사 살림살이를 종합적으로 맡고 있는 진실 씨 손을 거쳐서 진행되었고, 모든 업무가 관리되고 있었다.
매년 업무 평가에서도 진실 씨는 항상 최고 점수에 일등이었다. 따라서 승진도 다른 입사 동기들은 물론 기존 직원들 보다도 한 두 단계씩은 빨랐다. 그러자 여기저기 입사 동기들은 물론 선배 기수에서도 시기와 질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나 소기업에서 출발한 회사이다 보니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얽히고설킨 직원들이 대부분이었으니, 이들이 어떤 줄을 잡아서라도 시기와 질투를 할 수밖에 없는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도 업무를 즐기는 진실 씨를 막지는 못했다.
그리고 진실 씨는매일매일 주어지는 업무를 처리함으로써 느끼는 성취감이, 월급 액수보다 더 큰 희열을 느낄 수 있었음을 알 수도 있었다.
또한 진실 씨는 "원리 원칙대로만" 진행하면 어떠한 난관에서도 진실이 승리한다는 진리를 믿고 있었기에 한점 흐트러짐 없이 당당하게 버텨 나갔다. 그러자 수많은 줄과 학연 지연에 의지 하려던 무리들은 스스로 자멸하면서 하나 둘 사라지고 없어 저 갔다. 진짜로 원리원칙만은 진실 씨 편이었다.
승승 장구한 진실 씨는 중소기업에서 셀러리맨으로 할 수 있는 업무는 거의 해 보았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50세가 되기 전에 자기 사업을 해 보겠다는 핑계를 대, 20여 년 동안 同苦同樂하면서 젊음과 청춘을 다 바친 K전자에 사표를 제출하고 말았다.
어느 기업이든 설립자가 30년 이상을 넘겨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2세 경영으로 넘어가게 되면 초기 멤버들은 옷을 벗고 나와 주는 것이, 어쩌면 자기가 젊음과 청춘을 바친 조직에 대한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진실 씨는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기업들도 많이 있겠지만 진실 씨가 겪어 온 바로는 대부분이 욕심을 부려 끝까지 2세들과 함께 하려다, 결말은 곱지 않은 모습으로 씁쓸하게 이별하게 되는 경우가 심심챦게 국내 기업에서는 볼 수 있었다.
진실 씨는 이런 모습은 너무나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50세가 되기 전에 자기 사업을 하겠다는 핑계를 대면서 사표를 냈지만, 사실은 그 당시가 K전자 내에서도 설립하신 대표이사께서 나이도 어느 정도 되셨고 사업을 물려줄 2세 또한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서서히 보이지 않게 설비나 신제품 개발에 대한 투자를 줄여 가다 보니, 급변하는 산업 생태계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회사가 되었고, 2세 경영자리를 탐하는 관련자들이 여기저기 나타나면서 보이지 않는 암투가 벌어지자, 굳건하던 조직마저도 줄 서기와 편 가르기에 휩쓸리면서 창업공신들이 그들 得勢에 밀리면서 한 두 명씩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진실 씨는 자존감이 대단히 대단히 강한 사람이었다. 어떤 줄에 서기도 싫었고, 어떤 편 가르기에 편승하기도 싫었다. 거기에 잘못 편승하다가는 멀지안아서 초라하게 음지에서 시들어 가는 꽃봉오리가 되어 처절하게 떨어질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자신의 모습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오로지 진실 씨가 20여 년 모시면서 존경심을 갖게 된 그분이 최고의 위치에 존재할 때, 진실 씨 자신도 그 위치에 영원히 기억으로 나마 머물러 있고 싶었다.
그래서 어려운 결정을 하고, 힘든 이별을 택했다.
이후 꿈속과 현실을 오가며, 지나 온 20여 년 동안의 몸에 밴 습관들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되풀이되는 것을, 잊어버리기 위한 사투를 한참 긴 시간 동안 벌이기도 했다.
누구나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알게 모르게 깊고 길게 쌓인 습성과 습관 그리고 마음속에 깊이 박혀버린 정을 떨쳐 버리기까지는, 그만큼의 시간과 그만큼의 아쉬운 아픔이, 필요한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