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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껌정호랭이 Black Tiger Jul 31. 2023

9. 선물처럼 찾아온 공주는 한때 아픈 손가락이었다.

힘든와중에도 고맙게 두 사람한테 와준 지민이가 세 살이 되었을 무렵 진실 씨도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고 사랑 씨와 둘이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뜰하게 생활한 덕분에 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나중을 생각하면 지민이 혼자는 외로울 것 같기도 하고 등등, 두 사람은 가끔씩 둘째에 대한 얘기를 나누곤 했다.


주위에서는 아이들은 많을수록 좋다는 둥 어떻다는 둥 많은 말들도 있었지만 진실 씨나 사랑 씨는 주위의 어떤 말에도 아무런 미동도 느끼지 않았다. 더욱이 두 사람은 지민이가 아들이었기에 둘째를 굳이 급하게 서둘러서 낳고 싶은 마음은 더욱더 없었다.


그러면서도 옛말에 "키워준 공은 모르고 背恩忘德 하더라."라는 말이 있듯이, 부부가 아니랄까 봐 두 사람은  "背恩忘德한 사람으로 살지는 말자"라는 말을 가슴에 똑같이 새기면서 지민이를 키워 주고 계시는 외할머니께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람으로서 은혜를 베푼 사람이 꼭 은공을 받고 싶어 해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우리가 먼저 베풀고 손해 본다 생각하면서 살자"라고 연애시절부터 다짐을 했었다. 설령 도움을 받은 일이 있다면 당연히 작은 일일 때 미리 해결해 버리면 평생 편안 할 것을, 그 작은 것이 아까워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그냥 지나처 버린다면, 그 욕심 때문에 평생을 찝찝함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야 한다.


그 인생이 얼마나 불행한 인생인가?  


그런데 지민이가 허니문에서 갑자기 찾아왔듯이 둘째 공주 또한 소리소문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선물처럼 찾아왔다. 의도적이 아닌 자연적으로 찾아온 행복은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하늘의 이치이면서 순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사람과 지민이 사이에 예쁜 공주가 찾아왔다는 즐겁고 행복하고 반가운 소식을 진실 씨네 시골 동네에도 퍼졌고, 사랑 씨네 산새 좋고 공기 좋은  동네에도 좋은 소식은 빨리도 멀리 퍼져 나갔다.


양가는 물론 두 사람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공주는 사랑 씨 뱃속에서, 지민이 증조할머니의 사랑으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다.


태명 공주가 사랑 씨 뱃속에서 7개월쯤 되었을 때, 지민이의 활발한 활동에 연로하신 외할머니 근력으로는 무리였고, 또한 오랫동안 도시 생활로 인한 향수가 그리워 힘들어하시는 외할머님을 더 이상 모른 척 방치한다는 것은 큰 불효였다.


거기에 사랑 씨도 만삭의 몸으로 직장에 나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기에 사랑 씨가 당분간 회사를 쉬면서, 지민이도 연세가 있으신 할머님보다는, 젊은 엄마인 사랑 씨가 키우면서 교육도 제대로 시키고, 외할머님은 시골로 모셔서 노후는 편안하게 생활하시게 하기로 했다.


이미 공주에 대해서는 원장님께서 은연중에 표현을 해 주셔서 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건강하게 출산해서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조금의 믿어지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했다.


"혹시 아들이면 어쩌지!!!"

"그냥 아들만 둘을 키우고 말까!!!"

"그럼 딸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울 텐데..."

"셋째로 딸을 하나 더 낳아야 하나!!!"


등등 아무 필요 없는 고민과 쓸데없는 상상을 하면서 진실 씨는 출산실 앞에서 초조해하면서 공주가 빨리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민이 보다는 두 살 차이 여동생으로 무더운 7월 하순 오전 10시 55분에, 오빠 지민이 보다는 여자 아이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조금 작은 3.4kg의 몸무게로 "공주 김정민"이는 오빠와 같은 병원과 동일한 원장님의 집도로 이번에도 자연출산이 아닌 제왕절개로 이목구비 모두 뚜렷하고, 손 발가락 온전하게 20개를 가지고 큰 울음소리로 온천지를 진동시키며 진실 씨네 세 식구와 반갑게 첫 상봉을 했다.


건강하게 태어난 정민이는 지민이 보다도 더 무럭무럭 자랐다. 어려서는 여자아이라고 하기가 좀 무색할 정도로 남자아이 같았고 솔직히 못생겼었다. 오죽하면 진실 씨와 가까운 직원들이 정민이 사진을 보면서 남자아이 아니냐고 놀려 대기도 했다.


수입은 진실 씨 혼자서 벌고 있고 아이는 둘을 키우다 보니 아무리 절약한다 해도 기본적으로 써야 하는 비용이 있고,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모아서 자기 집을 마련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정신없이 아끼고 절약하면서 살다 보니, 정민이 돌이 다가와서 돌잔치를 해야 하지만 그 비용 때문에 할지 말지 결정을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이를 눈치챈  진실 씨 회사 직원들이 정민이 돌잔치해야 소주 한잔 할 수 있다며 재촉을 해 부득이하게 급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간단하게 하기로 하고 비싼 뷔페보다는 진실 씨 회사 근처 갈빗집에 예약을 하고 간소하게나마 돌잔치를 했다. 비용 관계상 많은 분들을 초대를 하지도 못했는데 주위에서 얘기를 전해 듣고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를 해 주신 덕분에 정민이 돌잔치는 성황리에 마무리를 잘했다.


그러나 진실 씨와 사랑 씨는 지금도 정민이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면 죄인 아닌 죄인으로 항상 마음속에 빚을 지고 살고 있다. 왜냐하면 전문적으로 돌잔치를 진행하는 장소가 아닌 갈빗집에서 급하게 진행하다 보니 돌 사진을 찍을 준비가 안 돼 있어서 나중에 시간 내서 사진관에 가서 예쁘게 찍어 주기로 해 놓고선, 하루하루 바삐 살다 그 시기를 놓쳐버리는 바람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예쁜 시절의 돌사진을 정민이에게는 찍어 주질 못했다.  정말 정민이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실은 시기도 시기였지만 돌 사진 찍을 비용을 아끼기 위한 마음이 커서 그냥 지나친 부분도 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비용 얼마나 든다고 그 작은 비용을 아낀다고..." 얼마나 지금까지도 미안한지...  

정민이가 결혼을 해도... 손주 손녀를 낳아도... 또 그다음에도...

두 사람은 부모로서 해 주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아마도 평생 미안함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정민이가 4살~5살쯤 되었을까? 진실 씨 고향에 내려갔는데, 부모님 집 거실 벽에 흔히들 걸려 있는 액자 속 사진들을 보다가 사촌들이나 지민이 돌 사진은 저기 걸려 있는데 자기 돌 사진은 어디 있냐고 물었다.


어떻게 사실대로 말은 못 하고 서울 집 어디에 있을 거라고 얼버무리고 올라온 후, 애들 어렸을 적 사진을 다 뒤져서 겨우 찾아낸,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오빠 지민이와 정민이가 둘이서 한복으로 잘 차려입고 찍었던 사진이 있어서 그 사진을 시골집 액자에 끼워 놓고 그 사진을 돌 사진이라면서 어린 정민이를 속이고 거짓말로 달랬던 기억은 마음 깊숙이 쓰리고 아팠다.


사랑 씨는 성격이 무엇이든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스스로 재 빠르게 악착같이 매달려서 찾고 해결하려고 하지 다른 사람과 상의를 해서 결정하는 타입은 더더욱 아니었다. 따라서 정민이와 지민이가 건강하게 자라서 유치원에 다닐 무렵 전업주부에서 탈출도 마찬가지로 진실 씨와 깊게 상의도 없었는데, 당시 많이 알려졌고 유명한 아동복 및 유아용품 전문업체에 소비자 실장으로 취직을 하고 나서야 진실 씨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실 씨는 말로는 좀 더 쉬면서 애들이 학교에 가면 직장에 나가도 되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사실은 고마웠다. 그러나 지민이와 정민이 두 아이를 이끌 그것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아침 일찍부터 회사 근처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하원시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진실 씨는 본인이 체험해 보기 전까지는 그게 그렇게 힘이 드는 일인 줄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자신만 직장 생활이 힘든 줄 알았다. 그런데 어쩌다 사랑 씨가 회사에 일이 있어 대신 하원 시키려고 하다 보면 남자인 진실 씨로서도 보통 힘이 부치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위대해서 그런 걸까? 여자는 강해서 잘 견뎌 낸 걸까? 사랑 씨는 아이 둘을 데리고서 겉으로는 힘들다는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지민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둘을 데리고 출퇴근을 했고, 가정 사람도 잘 해냈다. 정말 대단한 여장부였다.


세월이 흘러서 지민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정민이도 유치원 고학년에 들어갔다. 지민이는 초등학생이고 학교가 다행히 진실 씨 회사 근처인지라 진실 씨가 관리를 할 수 있었고 정민이만 사랑 씨가 데리고 출퇴근하면서 즐겁게 행복하게 큰 무리 없이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 사이 두 사람이 목표로, 지민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내 집을 구입해서 아이들이 안정된 학군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하고, 열심히 절약하면서 살아온 보람으로 신축아파트는 아니지만 21평 아파트도 구입해서 입주를 했다. 그러자 깡촌 시골 출신이 서울에 아파트를 샀다며 양가 부모님들이 얼마나 좋아하시고 칭찬을 하시는지, 그동안의 서러움이 단 한 번에 말끔히 씻겨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또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얼마나 많은 부러움을 샀는지는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마 이해하실 겁니다.


그렇게 평온하던 어느 날 장님인 진실 씨네 집에 시골에서 어머님이 올라오셔서 내일 용대리 고모할머니네 손주가 장가를 가는데 거기에 진실 씨네 식구들은 물론 동생들 5남매까지 모두 참석하자고 하셨다. 진실 씨는 무슨 먼 친척인데 온 식구들이 다 가느냐면서 난색을 표현했지만, 효자인 진실 씨로서는 부모님의 권유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왠지 가기 싫은 예식장이었지만 동생들까지 모든 자식들이 다 참석해야 할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친척이라는 말씀에 장남인 진실 씨네 식구 네 명과 어머님까지 진실 씨 차에 태우고 중곡동에 있는 예식장으로 갔다.


당시에 시골 부모님들은 왜 그렇게 장남을 먼 친척들 행사장까지 꼭 끌고 다니고 싶어 하셨는지? "자기 자식도 이만큼 성장했다는 자랑" 아님, 집안마다의 행사 대물림을 받으라는 무언의 압력이셨을까...?


장남이 간다면 며느리 또한 꼭 함께 가서 인사를 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룰 같은 것도 존재했었다. 그렇지 않고 아들만 가서 인사하게 되면, "뭐 며느리와 사이가 좋느니 안 좋느니..."등등의 구설 수가 난무했다. 그래서 장남들은 꼭 부부가 함께 참석을 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진실 씨는 그날도 예식장에 좀 일찍 도착해서 정민이는 어머니 손을 잡고, 지민이는 사랑 씨 손을 잡고 즐겁게 예식장에 먼저 올려 보낸 후, 진실 씨는 주차를 하고 식구들을 찾으며 복도 계단을 2칸 3칸씩 급하게 올라 예식이 예정되어 있는 4층에 도착해서 식장안을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식구들을 찾아보는데,  진실 씨 눈에만 보이지 않는 것인지, 어디 다른 장소에 있는 것인지 네 명의 식구들이 아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4층 복도 쪽 자그마한 창문 앞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먼가 하고 다가가서 창문 쪽을 보니 새로로 긴 창문이 밖으로 살짝 열리게 되어 있었고,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 사이로 어린 여자아이가 매달려서 놀다가 1층 바닥으로 아이가 미끄러져 떨어졌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보이 질 않는 단다.


진실 씨는 직감적으로 지민이와 정민이를 찾았다. 그런데 어머님 사랑 씨 지민이는 진실 씨 눈에 바로 들어와 보이는 데, 조금은 산만하고 활동적인 정민이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창문 밖을 내다보는데 아뿔싸~~~ 아침에 집에서 챙겨 입혀준 노란 원피스에 빨간 스타킹 그리고 꼭 그 구두가 예쁘다며 신고 가겠다고 고집부리던 그 예쁜 공주 구두를 신은... 정민이가 1층 주차장 바닥에 누워서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부모인 진실 씨 눈에는 4층에서 1층 그 먼 거리임에도 바로 앞에 있는 것 같은 모습으로 보였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진실 씨는 눈이 돌아가고 말았다. 뒤도 앞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1층 방향으로 웅성대는 사람들을 사이를 밀치면서 1층까지 느낌상으로는 5초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 초 단숨에 내려가서 건너편 건물 주차장으로 2.5m 정도 되는 블록 담을 키도 작은 진실 씨가 한달음에 뛰어넘어 정민이를 덥석 들어 안았다.


"병원이요!!!"

"병원 좀 데려 다 주세요"

"애가 떨어져서 다쳤어요!!!"


큰 소리를 지르면서 대로를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정민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할 정신도 없었고,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머릿속은 텅 비어 있어서 구급차를 부를 생각도 못한 채, 무조건 대로로 가서 아무 차나 잡아 타고 정민이를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데려갈 생각뿐이었다.


정민이를 안고 뛰면서도 눈에 들어오는 차량마다 차선 안쪽으로까지 들어가면서 차를 세웠다.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옆으로 피해 가려던 회색 봉고차가 안쓰러웠는지 두 사람을 태웠고, 바람처럼 진실 씨 못지않게 정신없이 달려서 따라온 사랑 씨를 태우고 예식장 근처에서 제일 가까운 청량리 성바오로 병원에 데려다주었다.


응급실에서 진찰결과 "천운의 보살핌이 있었는지!!!" "조상님들이 받아 주셨는지!!!" "이 세상 모든 신님들께서 돌봐 주셨는지!!!"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정민이는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음에도 얼굴에 글킨 상처로 인한 작은 핏자국과 다행히도 떨어지면서 건물과 건물 사이에 담벼락 윗부분으로 떨어지면서 주저앉아 양쪽 허벅지에 멍이 들었고, 담벼락 1차 쿠션 이후에 주차장 바닥에 떨어지면서 머리를 살짝 박았는데 어린아이라서 정밀 검사를 받아 보아야 하는 것 말고는 천만다행으로 다른 데는 크게 다치진 않았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어린아이이다 보니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봐야 했다.


제일 먼저 하느님, 조상님, 이 세상 모든 신님들뿐만 아니라 아무런 기대 없이 병원까지 태워다만 주시고 홀연히 떠나 가신 무명의 회색 봉고차 사장님께 이 기회를 빌려 감사를 드립니다. 모두 모두 진심으로 천 번 만 번 감사 감사 드립니다.


사랑 씨와 정민이를 입원시켜 남겨 두고 어린 초등학생인 지민이를 엄마와 며칠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달래면서 데리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진실 씨의 마음속은 이제야 제정신을 찾고, 정민이가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고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픔이 눈앞을 가렸다.


왠지 모르게 슬펐다. 만약 잘못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 만으로도 아찔아찔했다.


며칠 후 정민의 최종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양쪽 다리의 멍자국도 시간이 흐르면 없어질 것이고 얼굴에 있는 작은 상처는 이미 아물어서 딱지가 지고 있었다. 오히려 정민이한테는 좋은 일도 일어났다. 주차장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서 일어난 기적인가? 어려서부터 눈이 안 보인다고 해서 교정 안경을 끼워 줬었는데 이번 사건 이후로 오히려 눈이 좋아져서 안경을 쓰지 않아도 잘 보인 단다. 여자 아이가 안경 낀다는 게 썩 반길만한 일은 아니었는데 참으로 감사할 일이었다.


정민이가 입원해 있는 동안 진실 씨와 지민이는 매일매일 지민이 학교 수업이 끝나면 2시간 이상을 지하철로 왕복하면서 정민이 면회를 갔다. 엄마와 처음으로 떨어져 생활하는 지민이가 걱정도 되고, 정민이 상태도 궁금하고, 하루라도 가지 않으면 불안하고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고, 그렇게 네 식구는 매일매일을 병원에서 재회했다.


 면회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꼭 병원 근처 지하철역 입구 서점에 들러서 지민이가 제일 좋아하는 동화책을 사서 읽으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지민이는 태명대로 되려고 그러는지 한글을 배우고 난 이후부터 책을 그렇게 좋아했다. 정민이 병원을 오고 가면서도 매일 지하철에서 꼭 한 권씩은 읽었다. 지민이 책값이 부담은 되면서도 진실 씨와 사랑 씨는 너무나 즐거웠다. 내 자식이 책을 읽는 다는데 그 책값이 얼마가 들어가든지 어느 부모나 다 즐거워했을 것이다.


그렇게 2~3달이 지나서 정민이는 건강하게 퇴원을 했다. 힘든 병원 생활을 하느라 고생한 정민이와 간호하느라 힘들었을 사랑 씨, 엄마 없이 아빠와 둘이 생활하느라 불편했을 지민이, 회사 일에 지민이 챙기느라 수고한 진실 씨, 모두가 고생했고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네 식구의 가족 공동체는 이처럼 똘똘 뭉쳐서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다.


사고 당시 혼주인 먼 삼촌은 매일 찾아와서 미안 해 했지만, 예식장 업주는 단 한번 다녀간 이후로는 소송으로 처리하란다. 이름답고 평화로운 우리나라에서 그런 인간들하고 함께 숨 쉬고 산다는 자신이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까지도 밉다.


진실 씨와 사랑 씨는 원래의 약속대로 "우리가 손해 보고 말자"라고 생각하면서 정민이의 그 큰 아픔은 조용히 깊은 가슴속에 저장하고 마무리했다.


어느 가정이나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갑자기 다가왔을 때, 서로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 냈을 때, 가족의 힘은 여실이 들어 나는 것 같다.


지민 정민이는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서 초등 중학교를 근처에서 마치고 시내 중심가에 있는 나름 명문으로 알려진 남고 여고를 졸업한 후, 지민이는 큰 어려움 없이 인서울 대학과 K대학 대학원까지 우수하게 마쳤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부른 태명대로 아직 박사까지는 못하고 석사를 마친 후 유수한 국내 금융기관에 근무 중이다.


공주 정민이는 지민이 만큼 공부를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부모로서 하는 데까지는 해 보려고 영어 수학에 대해서는 큰돈 들여 개인 과외까지도 받게 했으나, 대학 입시에는 이상하리 만큼 운이 따르지 않아 서울에 있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C그룹에 입사해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부모의 바람 때문일까!!! 근무 중에 시간을 내어서 방통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누구 한 테나 아픈 손가락이 있듯이 진실 씨나 사랑 씨 한테도 정민이가 4년제를 다니지 않은 것이 항상 맘속에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 있었으나 정민이 자신이 고생은 했지만 방통대를 졸업하자, 진실 씨나 사랑 씨나 가슴 한편에 쌓여 있던 채증이 내려가는 듯 시원함을 느꼈고 정민한테 감사했다.


두 사람한테는 말없이 자기 할 일 알아서 잘하는 지민이도 있어서 항상 감사하지만, 어려서부터 큰 아픔도 있었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했으나 운이 따라 주지 않던 정민이, 학창 시절부터 공부 말고는 무슨 일이든 끝까지 밀어붙여서 진실 씨 사랑 씨가 항상 표현은 안 해도 감사하게 여기던 공주, 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경험한다며 어려서부터 시작했던 알바, 댄스 동아리, 방송부 활동, 팬덤 활동 등등 바삐 살아온 정민이가 항상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픈 손가락은 모두 치유가 다 되었고, 즐거운 가족으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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