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런 곳에서도 꿈을 꿀 수 있을까요?

내가 살았던 집_10

by plan B

어떤 집이라도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공존하는데, 현저하게도 나쁜 기억만 존재하는 곳이 있다. 고등학교 때 1년간 살았던 기숙사. 거기가 딱 그런 곳이었다. 사실 나쁜 기억이기 때문에 뇌조차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정말 머릿속에 기억이 거의 없다. 1년이라는 기간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참 신기하면서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시기였던 같은데 기억이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통학에만 1시간 반 이상 걸렸기 때문에 나는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기숙사를 선택했다. 내가 선택하긴 했지만, 사실 멀리 있는 학교를 선택한 것은 순전히 집에서 하루라도 빨리 나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짓을 조금 보태어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아는 깡촌에서 나를, 우리 가족을 아는 동네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은 내게 큰 고통이었다. 개인사를 개인사로만 남겨둘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자랐고, 크면 클수록 나는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지 몸소 알아갔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기숙사가 있는 학교를 선택한 이유였다.


입학 하루 전날 들어간 기숙사는 보기에도 티브이에서 본 군대와 같았다. 학교 본관 앞 체육관 위에 있는 한 층이 기숙사였다. 긴 복도를 기준으로 중앙에 사감선생님이 있었고, 사감선생님 방을 기준으로 남자여자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복도 양 끝에는 남녀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었다. 방에는 2층 침대가 5개 정도 빽빽하게 들어가 있었고, 캐비닛형태의 사물함이 침대수와 동일하게 있었다. 그 복도에서 매일 저녁 일렬로 서서 인원체크를 받았다. 지하로 가면 하교 후 지내야 하는 독서실이 있었고, 학년별로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3학년 선배 방은 별도로 있었기에 우리는 2학년 선배들과 방을 같이 써야 했다. 처음 보는 이층 침대와 집을 떠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첫인상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금세 나는 그곳이 싫어졌다. 서로의 개성 따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공간이기도 했지만, 사감실에 있는 냉장고조차 내 맘대로 뭘 넣을 수도 꺼낼 수도 없는 시스템이 숨 막혔다. 방장인 2학년 선배 말에 따라 기상과 취침 시에는 인원체크를 했고, 개별 행동이라고는 있을 수 없었다. 외부 음식 반입도, 부모님의 면회도 기숙사에 있는 2주간 동안은 허용되지 않았. 2주가 지나면 집에 갈 수 있었지만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보다 이곳에 갇혀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상당했다. 핸드폰 또한 주말에만 사용할 수 있었고, 항상 복도의 핸드폰함에서 관리되었다. 몰래 나갔다 올 수 있는 위치면 좋았을 텐데, 교문부터 기숙사까지는 한참을 언덕길을 올라가야 했다. 그렇게 나의 소중한 1년은 모든 것이 통제된 채 있었다.


아침 6시 기상방송과 함께 기상. 6시 10분 전인원 운동장 집합 및 방별 인원체크, 아침 구보 5바퀴. 6시 30분부터 아침식사, 이후 등교 준비. 7시 등교. 7시 50분 0교시 시작. 학교 수업을 다 듣고 자습을 끝내면 22시 하교. 22시 30분까지 개인 세면시간 및 정비. 22시 30분부터 기숙사 독서실에서 자습시간. 24시 취침 점오. 몸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마비될 것 같은 생활이었다. 그 생활을 몇 개월째 반복했을 때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침 구보 중 생전 처음으로 코피를 흘렸다. 자다가 코피가 난 것인지 세수할 시간도 없이 나가다 보니 얼굴에 굳어서 구보 중에야 코피를 흘린 것을 알아차렸다. 나와 같은 방 친구들도 비몽사몽에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사회와 단절된 채 오로지 공부만 하기 위해라고는 하지만 나는 지쳐갔다. 그런 상황에서 공부가 될 이 만무했다. 항상 비몽사몽 한 상태에 쉬는 시간이 되면 취침전용 인형을 껴안고 기절하기 바빴다. 유일하게 좋은 기억은 그 꿈만 같았던 10분의 쉬는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기절하듯이 자는 잠은 정말 달콤했다. 기숙사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학교에 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다시 돌아가야 하는 곳이 기숙사라니. 집이 싫어서 떠났는데 그곳은 감옥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시절의 같은 방 친구들도 선배들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오직 기억나는 거라고는 멍하게 수업을 받고 쉬는 시간에 잠드는 내 모습. 정말 지금 생각하면 비효율적인 방식의 생활이고 공부법이었다. 의자에 앉아만 있으면 공부를 한다고 아니 된다고 생각하던 시절에 나는 그곳에 있었다. 지금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시절이었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때는 다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던 거 같다. 그만큼도 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도태될 거라고. 꿈이나 내가 뭘 할 수 있나 보다는 그렇게 멍하니 앉아 머리를 비운채 손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나는 나 스스로를 버텨냈던 거 같다. 차라리 그때 다양한 방식의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면 좋을 걸. 세상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이 있고 뭐든 선택하고 도전할 수 있을 거라고. 수능, 대학만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우리는 살았어야 했을까?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차라리 꿈꿀 수 있는 교육방식과 시스템이 있었다면 나의 삶은 지금과 달라졌을까?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숙사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했다고 했다. 2인 1실에 각 방에 책상과 냉장고가 들어가 있다고. 10명이 함께 자던 방이 2인 1실로 바뀌었다고 해서, 그 시스템이 바뀌었을까? 나는 의문이 든다. 그 시절의 그 강압적이고 압박적이던 교육방식이 지금에 와서는 변해버린 기숙사처럼 그나마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keyword
이전 09화집에는 추억이 묻는다(feat. 해방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