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던 집_9
나는 지금까지 17번의 이사를 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때마다 조금 더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는 희망과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사 가는 날, 모든 짐이 빠지고 난 후 텅 빈 집을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을 감정이 느껴졌다. 내가 이곳에 살았었구나. 이렇게 넓은 곳이었나. 나쁜 추억보다는 먼저 그 집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감정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울컥했다. 그중 가장 오묘한 감정을 느낀 집은 바로 이전에 살았던 해방촌의 집이었다. 처음으로 얻는 전셋집이었고, 혼자 살았던 집 중에 가장 넓은 집이기도 했다.
남산 중턱에 위치한 그 집은 넓었다. 방 2개에 큰 거실과 주방이 있었고, 보일러실 겸 세탁실이 따로 있었다. 지어진 지 20년이 넘어가는 구축 빌라였고, 산중턱에 있어서 차조차 들어가기 힘든 골목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언덕배기 4층 집. 그럼에도 나는 넓은 창과 사다리꼴 모양의 구조, 한 층에 한집만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바로 위 옥상에서 남산타워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집 안에서는 남산타워를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안방에서 보이는 맞은편 집 창문에 남산타워가 비쳤다) 이후에 다른 집 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산을 더 무리해서라도 그 집에 살고 싶었다. 이삿날 사다리차 아저씨의 운전의 기술을 볼 수 있을 만큼 골목은 경사가 심했고 웃돈을 더 줘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지만, 처음 그 집에 짐이 들어왔을 때 이 집에서 뭔가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집주인이 바뀌고 나서 2년간의 우여곡절이 있었고, 드디어 계약만료일이 4개월 앞으로 다가다. 집주인(실제로는 집주인의 누나)은 2배로 전세를 올렸고, 어쩌든 나에게는 집을 나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나는 이 집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이제라도 집주인의 가족과 연을 끊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사 갈 집도 구하지 않았지만, 계약만료일에 맞춰서 나가겠다고 연락을 하고 그동안 집을 구했다. 그리고 그 집 또한 부동산에 나왔다. 내가 이사를 나가는 4개월 동안 40팀(그 이상은 세지 않았다)이 넘게 밤낮으로 집을 보러 왔다. 미리 약속을 잡은 팀도 있었지만 집 앞에 와서 연락하는 팀도 있었고 취소도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건조대에 걸려 있던 속옷을 숨기고, 급하게 먹던 밥을 정리를 했다. 언제 사람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항상 집을 깨끗이 했으며, 어떻게든 이 집이 나가야 나도 편하게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건물 현관을 지나 집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사람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긴장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 집을 어떻게 볼까. 문을 연 순간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을 보았다. 실망하는 사람. 놀라는 사람. 경사에 계단까지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한 순간이지만 그 사람들이 지금까지 어떤 집에 살아왔을지 생각했다. 그 반응이 이 집 현관문을 연 순간 나타났다. 나는 매일같이 누군가 집에 온다는 압박감에 힘들어하면서도 어떤 사람이 올지 매일 궁금했다. 내가 살았던 이 집에 다음으로 살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해하며.
그럼에도 이삿날까지 집은 나가지 않았다. 두배로 올린 전세금을 조금 내리긴 했지만 동네 시세보다는 높았고, 오는 사람들 마다 차가 못 들어올 거 같다며 이사 걱정을 했다. 나는 그동안 새로 이사 갈 집을 구했고, 다시 한번 확인차 집주인에게 이삿날과 함께 보증금 반환과 관련된 정보를 전달하였다. 그때부터 또 다른 지옥이 시작되었다. 집주인은 아직 집이 나가지 않았는데 돈을 줄 수 없다며 집이 나가지도 않았는데 왜 이사 나갈 집을 구했냐며 노발대발하였다. 먼저 나가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돈을 줄 수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 했지만, 집주인 가족은 잊을만하면 연락을 해대며 정신을 빼놓았다. 그때마다 나는 내 집을 가지지 못함에 그럼에도 어떻게든 집이 나갔음 해서 집을 깨끗이 하고 협조했던 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다행히 부동산 측에서 그동안 내가 협조를 잘해줘서(집을 잘 보여줘서) 그런지 집주인에게 잘 얘기를 해 줬고, 나는 그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텅 빈 집. 내가 살았던 집. 이제 고약한 집주인과는 다시 볼 일 없어 너무나도 행복했지만, 그럼에도 그 집에는 너무나도 많은 추억이 묻어 있었다. 친구들과 옥상에 돗자리를 펴고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여름을 즐겼고, 봄이 되면 큰 창을 활짝 열어놓고 남산의 바람을 느꼈다. 그동안 동네 친구도 늘어서 출근 후 도착한 냉동식품을 서로 정리해 주기도 했고, 밤산책 후에는 서로의 집에 들러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즐겼다. 그동안 집문제 이사문제로 이 집에 묶여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떠나려 하니 오히려 내가 떠나기 싫어하는 것을 느꼈다. 코로나 기간 동안 불안해진 일자리와 생활에도 이 집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버틸 수 있었다. 집주인만 아니면 어쩜 평생 있고 싶은 집이었다. 그런 집에서 지낼 수 있었음에 지금은 너무나 감사하면서도 그립다.
나는 다시 그런 집을 만날 수 있을까? 그때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쫓겨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