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던 집_12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은 뭉친다. 좋은 방향일 때보다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때, 그 에너지가 훨씬 더 커지고 훨씬 견고해진다. 그 사실을 나는 몸소 체험하며 깨달았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의 원룸텔에서였다. 내 방문을 처음 두드렸던 야쿠자 사건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을 때였다.
그날은 3월의 도쿄답지 않게 꽤 추웠다. 나는 심한 감기에 걸렸었다. 이 몸 상태로 아르바이트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다시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어마무시한 압력으로 내가 살던 원룸텔 건물을 통째로 찍어 누르는 듯한 기분이 든 것은. 일본에 있으면서 1년에 몇 번씩 오는 지진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의 진동은 달랐다. 위에서 아래로 마치 땅이 세상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작은 방 안에 쌓여 있던 물건들도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그 자리를 피해서 계단으로 뛰어나갔다. 그 작은 건물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겉옷조차 생각하지 못한 채 달려 나간 건물 앞 주차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본진이 잠시 멈췄지만, 사람들은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이 정도로 큰 지진은 일본에 있으면서 처음이었다. 이어서 여진이 바로 왔다. 첫 진동보다는 크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큰 건물들마저 휘청이는 모습에 아연질색했다.
계속 울리는 지진 알림과 여진에 혼란스러우면서도 처음보다 진정할 수 있었던 건, 원룸텔의 식구들 덕분이었다. 식구들 중에는 일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보듬었다. 놀란 나를 다독여 주었고 서로 위로해 주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3월의 도쿄는 아직 너무나도 추웠고 이렇게 겉옷조차 입지 않은 채 밖에 있으면 더 큰일이 생길 수 있겠다 싶었다. 무엇보다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여권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룸텔 식구들 몇 명과 함께 건물로 다시 들어가 필요한 물건을 챙긴 뒤 밖으로 나와 여진이 지나가길 기다리기로 했다. 일본에 있으면서 몇 번의 큰 지진을 겪었고, 더 큰 여진이 올 수 있다는 걸 귀동냥으로 들었기에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혼자라면 바로 여권과 옷을 챙기러 들어갈 생각 조차 하지 못했겠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그 순간 큰 힘이 되었다.
어렵게 들어간 방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향긋하게 퍼져 있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엄마가 김치와 반찬거리를 보내줬다. 그중에 방앗간에 가서 짜왔다던 참기름이 있었다. 냉장고 위에 올려놨었는데 지진으로 떨어져서 깨지고 말았다. 참기름 냄새는 내 방을 넘어 원룸텔 전체에 향긋하게 풍겼다. 수습보다는 짐을 빨리 챙겨 나가야 했기에 나는 참기름 병을 한쪽으로 몰아놓고는 여권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다시 주차장에 모였다. 전화와 문자는 끊겨 있었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은 단절되었다. 우리는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가족들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 긴장되는 상황 속에 나는 참기름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깨진 참기름 병을 정리하다 보니 손에 참기름이 묻어있었다. 손을 씻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손에 묻은 참기름보다 얼른 그곳을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참기름 냄새를 풍기며 다니게 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긴 일본이고, 다행히 참기름 냄새를 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 테니.
언니들은 내게 참기름 냄새가 난다며 놀렸고 잠시나마 내게 났던 참기름 냄새는 우리에게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다행히 인터넷선이 살아 있어서 나는 스카이프로 집에 연락을 할 수 있었다. 엄마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몰려왔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잘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무서웠구나. 엄마의 목소리는 나를 무장해제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은 멀리 떨어져 있는 딸을 걱정하는 엄마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2011년의 지진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뭔가 막혀있던 감정이 폭발하듯이 울었다. 생전 처음 있는 일에 엄마는 놀랐지만, 나는 쉽게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해가 저물고 여진의 진도가 잦아들자 사람들은 아무 일 없듯이 다시 각자의 길을 떠났다. 나는 원룸텔 식구들과 다시 돌아와 청소를 했다. 엄마가 보내준 몇 방울 먹지 못한 깨진 참기름 병을 치우고, 떨어져서 부서지고 고장 난 물건을 정리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방 안에는 참기름 향이 남아 있다. 나는 그 향기가 엄마의 향기 같았다. 멀리 있는 딸을 위해 직접 농사지어서 털고 말리고 방앗간까지 찾아가서 짜서 그걸 또 이중삼중포장해서 일본으로 보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가끔 시장을 지나다 참기름 냄새가 풍기면 그날의 일이 떠오른다. 어질러지고 깨진 물건들 속에서 더다니는 참기름 냄새, 삐걱대던 무언가의 소리, 흔들리는 도쿄... 그리고 그곳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했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