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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켜쥔 돈은 손가락 사이로 샌다.

내 돈은 눈먼 돈

by 소만

그 와중에 돈은 모였다. 그리고 돈을 모았다는 이야기는 알음알음 퍼졌다. 어쩌다 보니 돈 쓸 일이 생긴다. 내 주위에 돈을 벌게 해 준다는 귀인이 많은 것도 내 복이다.


예금이 만기 될 무렵이었다. 남편이 말했다.

" 정말 잘되는 식당이 있는데 프랜차이즈를 준비 중이래. 그래서 돈이 필요한데 지역별로 영업권을 판매한대."

"영업권? 권리금은 들어봤는데 그런 건 첨 들어보는데?"

"영업권은 매장이 생길 때마다 로열티를 받는 건데, 우리가 지역을 선점하면 본사가 아니라 투자자가 로열티를 받는 거래."

"당신은 어떻게 알았어?"

가까운 친척이었다. 그분이 혼자 하고 싶었는데 당장 현금이 부족하여 우리와 돈을 합쳐 동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2500만 원. 광역시라 조금 더 비싼데 지인이라 깎아준다고 했다. 다른 사람과 하기에는 아까운 제안이라 우리에게 먼저 말하는 거라고 했다. 거절하기 힘들었다. 좋은 제안이어서가 아니고 친척이란다. 돈은 혈연이랑 얽히면 힘들어진다. 못 받거나 연을 끊거나 아니면 평생 얼굴을 붉히거나...


우리 집이 그랬다. 열아홉,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아빠는 집안의 가장이었다. 결혼도 안 한 아빠는 먼저 결혼한 동생의 학비를 대줬고, 생활비도 내줬고, 차비도 내줬다. 그렇게 대학원까지 졸업한 동생은 형이 무식하다며 평생 무시했다. 엄마는 일 년에 13번의 제사와 여섯 식구의 삼시 세끼를 준비하면서 낮에는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2000명분의 점심을 만들었다. 그렇게 몇 년간 모은 200만 원은 막내 삼촌의 도박빚을 갚는데 들어갔다. 시간을 쓰고 몸을 갈아서 만든 그 피 같은 돈은 그렇게 뻔뻔한 사람들 뒤로 들어갔다. 돈을 갚을 생각도 없고 고마움도 모르는 그들은 제삿날, 명절날 우리 집에 오고 나는 그들의 면상을 보며 혼자 화를 삭인다. 모르는 사람이면 안 보고 잊으며 욕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혈연관계는 그렇지 않다.

나는 거절했다. 남편은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남편도 어려운 관계였다. 나는 잘 모르는 거라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혈연끼리 돈거래는 안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우리 부부와 상관없는 그 일로 나는 남편과 한동안 얼굴을 붉혔다.


10년 전 적금이 만기 된 날이었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적금만기된 거 어떻게 할 거야?"

"예금 넣어야지."

"요즘 금리도 안 좋은데 더 좋은 거 없어?"

"우리가 예적금만 하는데 더 좋은 게 어디 있어? 그나마 금리 높은데 찾아서 넣어야지."

"아는 분이 예금하기는 아깝다고 돈을 불려준다는데 어떡하지?"

이번에도 혈연이었다. 거절하기 힘들었다. 신세를 진 것도 있고, 평소 존경하던 분이었다. 남편과는 대화를 더 나누어보았다. 주식을 한다고 했다. 주식시장이 좋아서 지금 넣으면 바로 은행이자의 몇 배는 벌 수 있는데 예적금을 한다니 아깝다고 했단다.

"그럼 이번에 만기 된 것을 드리고, 10% 수익 나면 바로 돌려달라고 말씀드려. 나는 몇 배가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돈은 내 손에 있을 때 내 돈이니까."

석 달 뒤 200만 원이 이체되었다. 매매차익이라고 했다. 그리고 두 달 뒤 100만 원을 받았다. 이번에도 매매 차익이었다. 몇 년 뒤 나는 투자된 종목이 거래정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직 투자되지 않은 돈 일부를 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5년 뒤, 나머지 돈을 모두 받았다. 아이가 없을 때 맡긴 돈은 아이가 둘 태어나고 첫째가 8살이 되어 모두 되돌려 받았다.




돈은 내 손에 있어야 내 돈이다. 하지만 돈은 움켜쥐고 있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손가락 사이로 돈을 빠져나가지 않으려면 돈을 손에 꽉 쥐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입이 무거워야 한다. 남편이 일이 힘들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 나는 이만큼 모았고, 이렇게 모으고 있으니 힘들면 더 적게 벌어도 힘이 덜 드는 일을 해도 된다고 이야기했었다. 남편의 짐을 덜어주고 힘을 내라고 말한 우리의 종잣돈은 남편의 입에서 널리 널리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나를 더 부자로 만들어 준다고 알아서 찾아온다. 그러면서 내가 돈을 잘못 관리하고 있다며 나무라거나 자존심 상하는 말을 내뱉는다. 결국 나는 대부분 거절한다. 돈 때문에 삶과 관계가 어떻게 망가지는지 나는 안다.


나를 더 부자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주변에 의지하지 않고 나를 믿어야 더 단단한 자산을 쌓을 수 있다. 그리고 좋은 기회는 내가 시간과 발품을 팔아서 찾아야 한다. 나의 돈을 남에게 의지하면 사람을 잃거나 돈을 잃거나 심하면 건강을 잃는다. 돈을 빌려달라거나 투자하라는 말은 반드시 거절해라. 내 돈을 빌려 주면서 아쉬운 소리 들을 필요는 없다. 그들에게 나는 몇 번째 사람일까? 은행의 대출 문은 활짝 열려있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지인을 찾아다니니 참 모를 일이다. 2020년부터 2년간 잠잠하다 최근에 다시 나에게 투자를 권하는 연락이 온다.


"경기도에 좋은 땅이 있어요."

"시세차익만 3억 정도 나는 GTX 예정지 역세권 아파트예요."

"강원도 호텔, 회사보유분 매도 월 10% 수익 3년 확정지급."

"1억에 오피스텔 3채! 월세 받으며 노후준비하세요."


네, 그렇게 좋으면 본인이 직접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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