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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인정한 상위 10% 부자가 되었다.

집도 없는데...

by 소만

오늘은 2차 소비쿠폰 신청 첫날이다. 생년월일 끝자리가 1, 6인 사람들의 차례. 나는 평소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다둥이카드로 소비쿠폰을 신청하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자사 카드로 소비쿠폰을 신청하라고 메시지가 계속 온다. 빨리 신청해야 메시지 폭탄이 멈출 것 같았다. 카드사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대문에 떡하니 홍보 중인 배너가 눈에 띈다.

'2차 소비쿠폰 신청'을 클릭했다.

신청 후 로딩 중... 기대를 품고 기다렸다.

"2차 소비쿠폰 신청 대상이 아닙니다."

엥? 내가? 왜?


소비쿠폰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를 찾아본다. 2차 소비쿠폰은 가구 합산 소득이 하위 90%에 해당하는 국민에게 1인당 10만 원씩 지급한다. 나는 그럼 상위 10%에 해당된다는 말인가? 소득 하위 90%에 대한 건강보험료 기준선인 '민생회복 소비쿠폰 기준표'를 확인한다. 본인과 가구원의 건강보험료(장기요양보험료 제외) 합산 금액이 기준표와 비교해 그 이하면 지급대상자에 포함된다.


< 민생회복 소비쿠폰 건강 보험료 기준액 >


이번 지원에서 제외되는 고액자산가 상위10%는 다음의 경우에 해당된다.

첫째 가구원 합산 2024년 재산세 과세표준 합계액이 12억 원을 초과하는 가구(재산세 과세표준 12억 원은 공시가 기준(1 주택자 기준)으로 약 26억 7000만 원인 가구)

둘째, 가구원 합산 2024년 귀속 금융소득 합계액이 2000만 원을 초과하는 가구.


4인 가족기준 우리 부부의 건강보험료 합계는 45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집도 없는데, 어디서 걸린 것일까? 두번째 조건 때문이었다. 작년 배당과 이자 소득이 부부합산 2천만 원이 넘기 때문이다. 무주택자인 나는 자산에서 전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 자산의 상당 부분이 주식과 예금의 형태로 있고, 작년에는 기준 금리도 높았기에 금융소득이 2000만원이 넘었다.


현재 나와 같은 급여를 받는 사람이 현재 시세로 20억짜리 집을 가졌다면 2차 소비쿠폰을 받지만, 집 없이 연 2000만 원 자본 소득이 있으면 지원 대상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에서 금융소득 2000만 원은 이자율 연 2% 기준 예금 10억 원, 배당수익률 2% 가정 시 투자금 10억 원 수준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하지만 배당수익률 4% 이상 주는 주식 종목이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작년 한국은행 기준 금리는 3%였다.


나는 시스템 수입을 위해 자산을 고배당주에 투자하고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몇 년째 예금에 '예치'해 놓고 있다(사경인 님의 책 '진짜부자 가짜부자'에서 물가 상승률+코스피 수익률을 넘지 못하는 저축은 투자가 아니라 '예치'라고 했다). 작년 기준금리가 3% 이상이었던 덕분에 금융소득이 부부합산 2000만 원이 넘었다. 금융소득 종합 과세도 개인당 2000만 원 이상일 때 부과된다. 내가 주로 소유한 리츠는 이번 배당소득 분리과세에도 제외되었다. 내가 투자를 잘해서 2000만 원을 번 것이 아니라 나는 빚 없이 오랜 시간 아껴 모았기 때문에 13~4년 만에 높아진 기준금리의 덕을 더 본 것뿐이다. 누가 2% 배당을 보고 원금 손실을 감안하며 배당주를 매수하는가(채권도 아니고)? 게다가 가구당 2000만 원 기준 덕분에 우리는 아이들 앞으로 나오는 소비 쿠폰도 받지 못한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라로부터 ‘부자’ 인정을 받았다. 이제까지 모은 돈이 서울 집값 평균에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상위 10% 부자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받은 '부자 인증서'는 기분이 썩 좋지 않다.


P.S. 이의신청 하러 가야겠다.(아... 어제 화재로 국민신문고가 안되지... 큰 화재가 났지만 인명피해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더 안전하게 복구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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