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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노후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돈, 건강 그리고..

살림하는 것

by 소만

돈을 모을 때 처음 목표는 아이들의 교육비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둘이니 아이 하나당 평균 교육비 2억을 모은 다음 은퇴 계획을 세웠다.

자식들이 다 집을 떠나고 나와 남편만 남았다. 큰 가구는 필요 없고, 넓은 아파트나 여럿이 살 때 쓰던 살림살이는 버겁다. 집을 정리하고 짐을 줄여서 실버타운에 가서 마음 맞는 또래들과 여가를 즐기며 건강 관리를 받는 게 나의 노후 계획이었다. 매달 연금과 일정 수준의 이자가 나오는 자본자산으로 월세를 내고, 집을 판 돈은 실버타운의 보증금으로 충당한다. 그리고 내가 사망하면 보증금과 은행 및 주식을 두 아이에게 50%씩 상속한다. 정말 깔끔한 계획 아닌가?


나는 어제 이틀간 먹을 밀키트를 사서 시댁에 왔다. 어머님은 요양원에 계시고 아버님이 집에 혼자 있으신 지 1년 정도 되었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 대신 아버님이 살림하신 지는 2년 정도. 남편은 올해 연휴가 기니 아버지와 함께 지내자란 말에 평소보다 하루빨리 시댁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내려오면서 걱정을 했다. 집 상태가 어떨까...


짐작은 한 대로였다. 우리는 도착하지마자 청소를 시작했다. 나는 화장실을 남편은 거실. 화장실은 물로 묵은 때를 불리고, 락스를 뿌리고 솔로 빡빡 문질렀다. 부엌에서는 수저통을 싹 비워 물에 불리고 쌓아놓은 그릇에 채 닦지 못한 얼룩을 찾아서 철 수세미로 긁어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뜨거운 물로 헹궈서 다시 제자리에 올려둔다. 아버님 혼자 지내시는데 수저가 많이 꽂혀있어 정리가 필요해 보였다.


준비한 밀키트로 저녁을 먹고 남편에게는 뒷베란다를 정리할 것이라고 알렸다. 뒷베란다는 온갖 수납용기가 쌓여있었다. 몇 년 전에도 어수선한 뒷 베란다를 보고 어머니께 정리하겠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남의 살림을 건드리지 않는 것은 살림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선이라 생각했지만 나는 정리를 할 필요가 있하다고 생각했다. 말 꺼내기가 조심스러웠지만 어머니는 바로 승낙을 하셨고 나는 반나절 동안 뒷 베란다를 치웠다. 수십 개나 되는 플라틱 수납 용기의 뚜껑을 찾아서 덮고 쓸 만한 것은 골라 설거지를 했다. 쓰레기와 오래된 것, 쓰다 남은 것, 맞는 뚜껑이 없거나 깨진 것은 어머니께 확인하고 버렸다. 청소가 끝났을 때 어머니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맙다. 나는 엄두가 안 나더라."


오랜만에 시댁에 와서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일을 했다. 수많은 플라스틱 통을 포개고 정리하며 내 주변을 가꾸고 관리하는 능력이 돈을 벌고 모으는 능력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림을 하는 것은 먹은 것을 알맞은 용기에 담아 정리하는 것, 다 먹은 그릇을 깨끗이 씻는 것, 필요 없는 것은 사지 않고 사용기한이 지난 물건을 버리는 것, 주기적으로 청소나 빨래하는 것 등 늘 하지만 티나지 않는 행위들이다.


노후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는 경제력, 건강, 그리고 나를 관리하는 능력이다.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고 버리는 살림은 단순히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삶에 적응하고 진짜 필요한 것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존중하는 방법이다. 경제력이 노후의 외적 안정을 준다면, 나와 내 주변을 돌보는 살림 능력은 노후의 내적 품위를 지켜준다.

연금 통장의 숫자만큼이나 매일 내가 사는 공간을 정돈하고 나 자신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이 노후의 질을 결정한다. 두 가지 모두 갖췄을 때, 비로소 준비된 노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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