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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의 고통은 얼마인가?

수면내시경 7만 원과 비수면내시경의 1분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by 소만

생년 끝자리가 홀수인 끝나는 올해 나는 건강검진 대상자이다. 연초에는 기한이 많이 남았기에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8월에 검진을 할 마음을 먹었는데 벌써 9월 말이다. 몇 해 전 별생각 없이 11월 말에 퍼뜩 생각난 건강 검진을 하러 병원에 들렀을 때 주말 낮을 통째로 병원에서 기다리며 보낸 기억이 떠올라 더 늦기 전에 건강검진을 받기로 했다.


병원에 문의하니 시간이 한가한 날이 있는데 내가 예약하려는 날에 대상자가 몰릴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아침을 굶고 병원 영업이 시작하는 시간에 전화를 했다.


"오늘 건강검진 환자 많나요?"

"아직 모르겠지만 지금은 많지 않습니다. 1~2분 계세요."

"수면 내시경까지 하면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검사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환자분이 마취에 언제 깰지, 마취에 깨도 언제쯤 혼자 걸어갈 수 있을지 확답은 드릴 수 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바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은 진료를 마쳤고 나는 바로 검사 시작할 수 있었다. 진료에 필요한 체크리스트를 모두 작성하고 나서 위 내시경을 빼고 모든 검사를 마쳤다. 직장에 건강검진으로 인한 외출 시간으로 80분을 신청했는데, 아직 40분이 남았다. 이왕 온 김에 모든 검사를 끝내기로 했다.


"수면으로 하시겠어요? 비 수면으로 하시겠어요?"

"비수면은 아프겠죠?"

"아프다기보다는 불쾌하다는 편이 나을 거예요. 시간은 1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요."

"비수면은 안 해봤어요. 긴장되네요"

"비수면은 공단에서 지원이 되고요, 수면은 비급여라 7만 원 내셔야 해요."

"마취하면 언제 깰지도 확실히 모르니 그냥 비수면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이거 드시고요. 가스가 나오게 하는 약입니다. 그리고 위 움직임을 줄여주는 주사 맞고 오시면 됩니다."


간호사가 주는 액상약을 먹었다. 쭉 짜서 먹어보니 감기약처럼 달달한 맛은 없다. 주사를 맞고 대기실에 앉아 있으니 내 이름을 부른다.

"신발 벗고 올라가시고 앉아서 입 벌리세요."

의료용 침대에 앉으니 간호사가 마취제를 입에 넣어 주었다. 목구멍으로 바로 삼키란다. 곧 목구멍 주변이 얼얼해졌다. 이제 누우라고 하며 나의 자세를 교정해 준다.

"옆으로 누워서 다리 웅크리시고요, 머리는 아래쪽으로 향하게 해 주세요."

준비를 마치니 의사가 들어왔다.

"1분 정도 걸릴 예정인데 불편해도 가만히 있어야 다치지 않습니다. 내시경 시작하면 숨 쉬기가 불편하실 텐데 코로 숨 쉬지 마시고 입으로 숨 쉬세요."


비수면 내시경은 처음이라 긴장했다. 입에 뭘 물라고 해서 꽉 물고 있으니 긴 호스가 목을 타고 들어온다.

"꺽~"

나도 모르게 가스가 나온다. 가스가 차야 호스가 잘 들어가는데 구역질을 할 때마다 가스가 빠졌다.

"환자분 가스는 참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빨리 끝나요."

"꺽~"

긴 호스가 입 안으로 휙휙 들어갈 때마다 불쾌했다. 간호사가 목구멍만 들어가면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이건 그냥 끝없이 불쾌했다. 의사가 호스를 빼는가 싶었는데 다시 넣는다. 잘 안 들어간단다.

"환자분 움직이지 마시고 협조해주셔야 해요. 가스는 참으셔야 식도가 다치지 않습니다."

"꺽~."

나도 참고 싶다. 하지만 속은 가스로 꽉 찼고 입과 식도와 위는 호스와 나란히 일직선으로 위치해 있다.

계속되는 이물감과 구토감에 불편했다.

"꺽~"

진료를 마친 의사가 호스를 뺀다. 이제 침대에서 내려가서 의사의 진료를 받으란다. 목은 아프고 정신도 없다. 그 와중에 헝클어진 머리를 다음고 옷은 제대로인지 확인한다. 의사는 검사 결과를 설명했다.

"다른 곳은 다 괜찮은데 위염 2단계네요. 약 드시고 일주일 뒤에 결과 확인하러 병원으로 오세요."

그 사이 목구멍의 마취는 더 강해졌다. 목구멍의 마취가 제대로 되기 전에 호스를 넣은 건 아닐까. 말이 제대로 안 나온다. 아주 지독한 목감기가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 검진에서 자부담 항목 있어서 10% 추가했고요, 진찰료와 위염 처방전 있습니다."


병원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2년 뒤 다시 건강검진을 받을 때 7만 원에 수면마취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비수면으로 위내시경을 할 것인가? 7만 원은 1분의 고통을 상쇄하기 위해 충분한 돈인가?

책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은 고통의 시간보다는 고통의 크기가 기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똑같은 강도지만 뜨거운 물로 시작해서 점점 나아지는 고통에 대해 인간은 '뜨겁지 않았다.', '견딜만했다.'로 기억하는 반면 똑같은 뜨거운 물을 짧은 시간에 경험하는 것은 우리는 상대적으로 짧지만 더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는다.


위내시경 검사에 걸리는 시간은 1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1분은 나에게 7만 원을 떠올리게 할 만큼 충분히 거북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병원을 나서면서 다음에 검진을 받는다면 수면 비용 7만 원을 내고 나는 기꺼이 편안함을 택하리라. 7만 원이면 편안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고, 혹시 위에 폴립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간단히 제거할 수도 있으니까. 호스를 넣을 때 불편하지도 않을 거고, 나는 깊은 잠에 빠질 것이다. 그러곤 이렇게 말하겠지.

" 저기 간호사분, 내시경 언제 시작해요?"

" 네, 끝났습니다."

비수면 검사의 짧지만 강렬하고 거북했던 시간은 1분이 아니라 10분처럼 느껴졌고, 점심을 먹고 오후에 따뜻한 물을 연거푸 들이켤 때까지 내 목과 몸은 충분히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7만 원을 내고 편하게 수면내시경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목의 통증이 가라앉으니 생각이 달라졌다. 1분을 참으면 7만 원을 아끼는 것이 아닌가? 7만 원이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200그램짜리 스테이크 세트메뉴를 시키고 내가 느낀 시간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도 있고, 무한 초밥 리필집에 가서 온 가족의 배를 넉넉히 채울 수 있는 금액이다. 힘들고 강렬한 1분의 검사를 독하게 통과한 후 그 돈으로 차라리 고통을 망각할 만한 파티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결국 인간은 고통을 과소평가하고, 돈의 가치를 더 크개 평가하다가도, 막상 고통의 순간에는 편안함을 선택하는 존재이다. 7만원이라는 돈은 1분의 고통을 잊기에 충분한 돈일 수도, 1분은 7만 원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 만큼 긴 시간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어떤 날은 고통을 견디고, 어떤 날은 고통을 돈으로 잊는다. 결국 그 선택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어떤 경험이 더 나은 기억으로 남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1분의 고통과 7만 원의 가치는 상황과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P.S. 나의 결론 : 건강검진은 업무 시간 중에 받으면 안 되고, 가능한 한 빨리 받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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