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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배들은 점심 값을 냈을까?

월급이 많아서, 수당을 받아서, 아이들을 다 키워서....

by 소만

방학기간, 돌아가며 근무할 때마다 선배 교사들에게 점심식사를 자주 얻어먹었다. 큰 학교는 방학 근무일에 2명이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 함께 근무하는 부장이 점심을 사곤 했다. 관리자, 행정직, 교사, 사서선생님 등을 합하면 방학 중에도 학교에 근무하는 인원은 꽤 된다. 평소 얼굴만 아는 부장님들은 방학 근무를 할 때 점심을 준비해 오거나 배달을 시켜 줘서 매번 애매한 점심시간을 큰 고민 없이 무사히 넘겼다.


그때마다 나는 더치페이라는 간단하고 깔끔한 방법이 있는데 왜 굳이 서로 알지도 못하는 부장이 밥을 사는지 궁금했다. 나름 생각해 낸 이유는 첫째, 부장은 나이도 많고 부장수당도 받으니 나보다 월급이 훨씬 많아서. 둘째, 같이 근무하는 부장이 원래 부자여서. 셋째, 자식들이 다 취직해서 생활에 여유가 있어서. 어쨌든 선배들이 챙겨주는 점심은 무엇이든 참 맛있었다. 계산을 하지 않은 나는 식사 자리를 준비하거나 식사 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설거지를 하는 것으로 밥 값을 했다.


이번 방학 때 출근하는 날 아침에 함께 근무할 동료들과 교실을 돌며 인사를 했다. 교장실로 가서 약속이 없으시면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말씀드렸다. 11시 30분에 함께 먹을 인원을 파악하고 배달앱을 열어 점심을 주문했다. 음식이 모자라지 않게 사이드 메뉴도 추가했다. 그렇게 점심은 내가 샀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나는 왜 밥을 샀을까? 예전을 밥을 사던 부장님들과 조건이 다르다. 그날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 내 또래 거나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또, 그들에 비해 내 급여가 드라마틱하게 많은 것도 아니고, 자식 둘 다 초등학생이라 아직도 돈 나갈 일이 많다. 나는 부장이지만 소규모 학교이기에 가산점도 수당도 없는데 왜 선뜻 밥을 사겠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생각해 보니 오래전 나에게 밥을 사주던 부장들은 거의 지금의 내 나이대였다. 경제적 상황이 어찌 되었건 간에 동료들에게 한 끼 식사는 살 수 있고, 식사 중에 대화를 좀 이끌어도 어색하거나 튀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회의할 때 능청스럽게 농담을 던질 만큼 뻔뻔함도 생겼고, 일을 할 때 내 의견을 피력하며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자리에 온 것이다. 그동안 오랫동안 나를 챙겨 주었던,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많은 부장들처럼 나도 이제 다른 사람들을 챙겨 줘야 하는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선배들이 밥값을 낸 건 돈이 많아서도, 삶이 여유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역할이 바뀌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된 것뿐이다. 예전엔 그 한 끼가 고마운 선심 같았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마음의 순서라는 생각이 든다. 그 차례를 따라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식사를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긴 시간 동안 근무일에 선배들이 나눠준 든든한 점심은 삶이 이어주는 따뜻한 인사이자, 함께 살아가는 마음의 방식이었다.


P.S. 후식도 내가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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