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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협력, CPTPP의 허와 실

CPTPP의 경제적 실효성과 지정학적 딜레마

by 무딘날

이 글에서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실효성을 둘러싼 복합적인 논쟁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약화와 보호무역주의의 대두 속에서 CPTPP는 높은 수준의 무역자유화와 규범을 제시하는 대안적 질서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그 실효성에 대한 평가는 경제적 이익과 규범적 리더십을 강조하는 찬성론과, 미미한 효과 및 주권 침해를 우려하는 비판론으로 첨예하게 갈린다. 이를 위해 최신 국내외 연구 및 학술 문헌을 종합하여 CPTPP의 경제적 영향, 핵심 독소조항 논쟁, 그리고 지정학적 함의를 다각도로 조명하였다. 특히, CPTPP의 규범 확산력을 설명하는 ‘CPTPP 효과’를 EU의 ‘브뤼셀 효과’와 비교 분석함으로써 그 현실성과 한계를 명확히 하고, 미국 탈퇴가 남긴 구조적 모순을 분석한다.


결론적으로, CPTPP 가입은 단기적 경제 손익계산을 넘어, 경제 안보, 공급망 다변화, 그리고 규칙 기반 국제 질서 참여라는 장기적·전략적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는 한국과 같은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에게 피할 수 없는 전략적 선택의 문제이며, 가입의 비용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교한 국가 전략이 시급히 요구됨을 시사한다.


1. 파편화된 세계, 새로운 질서의 모색


현대 국제 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특히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무역체제는 주요국 간의 이견과 분쟁해결기능의 마비로 인해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졌으며, 이러한 공백 속에서 보호무역주의와 자국 우선주의가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에 대응하여 각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같은 메가 FTA(자유무역협정)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관세를 낮추는 경제적 행위를 넘어, 불안정한 세계 속에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고 새로운 통상 규범을 형성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CP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적인 경제 협력체로 부상했다. 본래 미국이 주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미국의 탈퇴로 좌초될 위기에 처했으나, 일본의 주도하에 나머지 11개국이 결속하여 출범시킨 CPTPP는 그 자체로 국제 통상 질서의 다변화와 회복탄력성을 상징하는 사례가 되었다. CPTPP는 단순한 무역 블록을 넘어,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과 포괄적인 규범을 통해 21세기 통상 환경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본 보고서는 CPTPP 가입 결정이 단순한 경제적 손익계산을 넘어선 근본적인 전략적 선택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는 미래 경제 안보의 향방을 결정하고, 급변하는 지역 질서 속에서 국가의 역할을 재정립하며, 미·중 경쟁 구도 하에서 전략적 입지를 확보하는 중대한 과제와 직결된다. 물론 CPTPP 가입은 농업 부문의 막대한 피해와 일본과의 외교적 난제 등 상당한 국내적 비용과 외교적 장애물을 동반한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이점은 이러한 단기적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중요하며, 따라서 수동적인 대응이 아닌, 면밀하게 조정된 선제적 국가 전략이 시급히 요구된다.


2. 경제적 실효성 논쟁: 성장 동력인가, 허상인가


CPTPP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평가는 찬성론과 비판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핵심 전선이다.


찬성론: 거시경제 성장과 전략적 가치


찬성 측은 CPTPP 가입이 가져올 다층적인 경제적 이익을 강조한다.


- 거시경제 지표 개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산업연구원(KIET) 등은 CPTPP 가입 시 한국의 실질 GDP가 0.33~0.35% 증가하고, 15년간 연평균 6억~9억 달러의 순수출 증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일본 내각부 경제사회연구소의 실증 연구는 CPTPP가 회원국 간 평균 무역량을 9.1% 증가시켰으며, 특히 기존 FTA가 없던 국가 쌍에서는 14.3%의 유의미한 증가를 보였다고 보고했다. 이는 CPTPP가 실질적인 무역 창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 전략적 가치: 경제 안보와 공급망 다변화: 이 주장은 찬성론의 핵심 논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 경제가 미국과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으며, CPTPP 가입이 이러한 리스크를 분산시킬 가장 효과적인 '보험'이라고 강조한다. CPTPP의 '누적 원산지 규정'은 회원국 내에서 부품과 소재 조달을 촉진해 역내 공급망을 강화하고, 특정 국가(특히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실질적인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비판론: 미미한 효과와 구조적 리스크


반대 측은 찬성 측이 제시하는 경제적 효과가 과장되었거나, 그 이면에 숨겨진 비용이 더 크다고 비판한다.


- 미미한 GDP 성장률: 반대론자들은 0.3%대의 GDP 성장률 전망치가 농어업 등 특정 부문의 막대한 피해를 감수할 만큼 의미 있는 수치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특히 미국의 부재로 CPTPP의 경제적 규모와 파급력이 초기 TPP 구상에 비해 크게 축소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영국의 CPTPP 가입 효과가 GDP의 0.06% 증가에 그칠 것이라는 영국 정부의 자체 분석은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 기존 FTA와의 중복 및 무역 전환 효과: 한국은 CPTPP 회원국 중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9개국과 이미 양자 FTA를 체결한 상태이므로, 추가적인 관세 인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한, CPTPP가 회원국 간의 무역을 늘리는 '무역 창출' 효과보다는, 더 효율적인 역외 생산국으로부터의 수입을 비효율적인 역내 회원국으로 전환시키는 '무역 전환(Trade Diversion)' 효과를 유발하여 오히려 경제적 비효율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 대일 무역적자 심화 우려: CPTPP 가입은 사실상 '한일 FTA' 체결 효과를 갖는데, 일본이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및 자동차 산업에서 한국의 무역적자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는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추진해 온 한국의 '소부장 독립' 노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3. 주권 논쟁: '골드 스탠더드'인가, '황금 족쇄'인가


CPTPP의 높은 규범 수준은 찬성론자들에게는 '21세기 골드 스탠더드'로, 비판론자들에게는 국가 주권을 제약하는 '황금 족쇄'로 인식된다.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과 규제 냉각 효과


ISDS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의 정책 변경으로 손해를 입었을 경우, 해당 국가 정부를 상대로 국제 중재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이 제도는 국가의 정당한 공공정책(환경, 보건, 노동 등) 추진을 위축시키는 '규제 냉각 효과(Regulatory Chill)'를 유발할 수 있다는 심각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옥스퍼드 대학의 Moehlecke 등(2021)의 연구는 ISDS 사건이 계류 중인 국가에서 환경 규제가 실제로 감소하는 경향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며, ISDS가 국가의 규제 주권을 실질적으로 제약함을 입증했다. 한국 역시 론스타, 엘리엇, 메이슨 등 여러 ISDS 사건을 경험하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른 바 있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ISDS가 외국인 투자자에게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투자 환경을 보장함으로써 해외직접투자(FDI) 유치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CPTPP의 투자 챕터는 기존 투자협정보다 국가의 '규제할 권리(right to regulate)'를 명시하는 등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한다.


위생 및 식물위생(SPS)과 데이터 거버넌스


- SPS (검역주권): CPTPP의 SPS 조항은 WTO 협정보다 강화된 'WTO 플러스(+)' 규정으로, 특히 '구획화(Compartmentalization)' 개념은 특정 국가에서 질병이 발생해도 안전한 '농장' 단위로 수입을 허용하도록 하여, 사실상 수입국의 검역주권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는 국내 농축산업 기반을 붕괴시키고 먹거리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 데이터 거버넌스 (디지털 주권): CPTPP의 데이터 자유 이동 및 서버 현지화 금지 조항은 디지털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선진 규범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CIGI의 Leblond(2024) 등은 이러한 규범이 개인정보보호나 국가안보를 위한 각국의 데이터 주권을 심각하게 제약할 수 있으며, 특히 미국식 시장 주도 모델을 반영하고 있어 다른 규제 철학을 가진 국가들에게는 정책 자율성을 제약하는 족쇄가 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4. 규범 확산력 논쟁: 'CPTPP 효과'는 '브뤼셀 효과'가 될 수 있는가?


CPTPP의 지지자들은 EU가 자국의 규제를 글로벌 표준으로 만드는 '브뤼셀 효과(Brussels Effect)'처럼, CPTPP 역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규범을 선도하는 'CPTPP 효과(CPTPP Effect)'를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두 효과의 작동 방식과 현실성을 비교하면 'CPTPP 효과'의 명백한 한계가 드러난다.


'브뤼셀 효과'의 핵심 동력


4억 5천만 명의 소비자를 가진 거대하고 부유한 EU 단일 시장의 '중력'에서 나온다. 전 세계 기업들은 이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EU의 높은 표준을 따르게 되며, 이는 EU가 일방적으로 글로벌 표준을 설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CPTPP 효과'의 한계


- 시장 중력의 부재: 가장 결정적인 한계는 CPTPP에 EU나 미국과 같은 압도적인 단일 시장 '앵커(anchor)'가 없다는 점이다. 일본이 가장 큰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지만, EU 전체의 시장 중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 '미국 없는 미국산 규범'의 모순: CPTPP의 핵심 규범, 특히 디지털 무역과 지식재산권 분야는 본래 미국이 자국의 경제 모델을 반영하여 설계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설계자인 미국이 빠지면서 규범의 추진 동력과 신뢰성에 근본적인 한계가 생겼다. 실제로 CPTPP는 미국의 탈퇴 후, 미국이 강력하게 주장했던 22개 조항의 효력을 유예한 채 출범했다.

- 취약한 제도적 기반: CPTPP는 회원국 간 합의에 기반한 '정부 간 협의체'로, EU와 같은 초국가적 규제 기관이 없어 규범을 만들고 강력하게 집행할 제도적 역량이 부족하다.


결론적으로, 'CPTPP 효과'는 '브뤼셀 효과'와 같은 강력하고 일방적인 규제 확산 메커니즘이라기보다는, '규칙 기반 질서를 지향하는 국가들의 연대'라는 상징적·정치적 의미가 더 강하다. 글로벌 차원에서 '브뤼셀 효과'와 경쟁하기보다는, RCEP보다 높은 수준의 지역 규범을 제시하는 '지역적 규범 형성자'로서의 역할에 더 현실적인 의미를 둘 수 있다.


5. 지정학적 셈법과 한국의 선택


CPTPP 가입은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미·중 경쟁과 한일 관계라는 복잡한 지정학적 방정식 속에서 한국의 전략적 위치를 결정하는 중대사다.


- 문지기로서의 일본: 신규 가입은 모든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를 필요로 하므로, 협정의 주도국인 일본은 한국의 가입 과정에서 강력한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할 수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 해제 등 민감한 현안을 가입 조건으로 내걸 가능성이 크다.


- 미·중 경쟁 속 '제3의 길': CPTPP 가입은 한국이 미국 중심의 안보 동맹을 넘어, 호주, 캐나다, 동남아 주요국 등 다양한 중견국들과의 경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제3의 길'이 될 수 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압력에 대한 완충지대를 마련하고, 특정 강대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전략적 헤지(hedge) 수단이다.


- IPEF와의 상호보완성: CPTPP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와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보완적인 '두 기둥(two-pillar)' 전략을 가능하게 한다. IPEF를 통해 미국과의 첨단 기술 및 안보 연계 공급망에 참여하고, CPTPP를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보편적인 무역·투자 네트워크에 통합되는 것이다.


전략적 실용주의를 향하여


CPTPP의 허와 실에 대한 심층 분석은 이 문제가 단순한 경제적 손익계산을 넘어선 복합적인 전략적 선택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단기적이고 계량적인 경제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으며, 농업 부문의 피해와 주권 제약이라는 현실적 비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국가 발전과 경제적 생존력의 관점에서 볼 때, CPTPP 가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이점은 단기적인 비용을 감수할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핵심은 비용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교한 전략을 어떻게 수립하고 실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이제 국가적 논의의 초점은 '가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소모적인 이분법적 질문에서 '어떻게 현명하게 가입할 것인가'라는 건설적인 방법론적 질문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통합적 정책 접근이 요구된다.


- 협상 전략의 정교화: 명확한 협상 목표와 양보할 수 없는 '레드 라인'을 설정하고, 특히 농업 등 민감 품목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보호 장치를 확보하는 데 협상력을 집중해야 한다.


- 국내 보완 대책의 신뢰성 확보: 피해보전직불금과 같은 사후적 지원을 넘어, 스마트팜, 정밀농업 등 한국 농수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투자 계획을 선행해야 한다.


- 전략적 공론화 및 국민 설득: 정부는 가입의 의미를 '농업 희생을 통한 공산품 수출 증대'라는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격변하는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경제 안보와 미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전략적 선택'으로 재구성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해야 한다.


- 지정학적 포트폴리오 구축: CPTPP 가입을 외교안보 전략과 긴밀히 연계하여,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규칙 기반 질서를 강화하는 데 핵심적인 기여를 하는 '능동적이고 책임 있는 중견국'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각인시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CPTPP는 허와 실이 명확히 공존하는 양날의 검이다. 그러나 파편화되고 예측 불가능한 세계 무역 질서 속에서, 한국이 수동적인 '규칙 수용자'에 머무르지 않고 능동적인 '규칙 형성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검을 외면하기보다 현명하게 다루는 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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