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경제폭망론 등 선정적인 장사질만 하는 언론과 유튜브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함에 따라 일부 언론과 이른바 전문가들이 '제3차 외환위기'를 언급하며 대중의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 이들은 1,480원대라는 환율 수치에 온갖 가설들을 덧붙여가며 대한민국이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의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공포 마케팅을 전개한다.
필자도 이전 글에서 고환율 관련 문제를 지적하였듯, 합리적인 선에서 걱정을 하는 것이라면 이해가 된다. 분명 걱정할 지점들이 많다. 단순히 ’외환위기 오는 거 아냐?‘하는 수사 정도는 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실제와 다른 부분까지 호도하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대니, 장사질을 하겠다는 의도가 명백해보인다.
이러한 주장은 국가 대차대조표의 근본적인 변화와 객관적인 경제 지표를 무시한 자의적 해석에 불과하다. 개개인은 걱정스레 할수도 있지만, 그게 신뢰성으로 먹고 사는 전문가나 기성언론이 할 짓을 아닐 것이다.
현재 가장 자극적인 소재이다보니 포털이나 커뮤니티 등지는 물론, 유튜브에서 생긴지 얼마되지도 않은 채널의 적당한 정보 짜깁기 영상조차 “대한민국 경제 폭망론” 딱지를 붙이면 몇십만회의 조회수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더이상은 필자도 누구나 떠들어대는 위기의식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기보다는 ‘안전한 지점’에 대한 소개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현재를 비교하는 프레임은 통계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1997년 한국은 갚아야 할 외채가 받을 자산보다 많은 순채무국이었으며, 당시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해 IMF로부터 빌린 돈은 불과 210억 달러(한화 약 30조 원) 수준이었다.
반면, 2024년 말 기준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NIIP)은 1조 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해외에 빌려준 돈이나 투자한 자산이 갚아야 할 채무보다 1조 달러 이상 많다는 의미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수준의 순채권국이며, 30년 전 달러가 없어 국가 부도를 걱정하던 시절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위치에 있다. 현대차와 같은 국내 기업이 미국 공장 한 곳에 투자하는 금액이 과거 IMF 구제금융 총액과 맞먹는 수준이라는 사실은 우리 경제의 볼륨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음을 증명한다.
일부 보수 언론은 한미 관세 협상에 따른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조성을 두고 외환보유액이 고갈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해당 투자는 한꺼번에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 연간 200억 달러 이내로 제한되어 있으며, 이마저도 생돈을 떼어 주는 것이 아니라 4,3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운용하여 발생하는 수익금 등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외환보유액은 유사시를 대비해 창고에 쌓아두는 달러지만, 이를 채권이나 주식 등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것은 당연한 경제 활동이다. 정부가 이 수익금을 활용해 미국과의 통상 마찰을 해결하는 카드로 사용하는 것을 '국부 유출'이나 '위기의 전조'로 해석하는 것은 지독한 비전문성이나 의도적인 곡해로 볼 수밖에 없다.
한국은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1,400조 원 규모의 국민연금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어떤 선진국도 가지지 못한 강력한 달러 보따리 역할을 한다. 최근 정부가 국민연금과 외환 스와프를 체결하는 것을 두고 '국민의 노후 자금을 동원한다'는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외환 스와프는 국민연금이 해외 자산을 매입할 때 시장에서 달러를 사지 않고 한국은행이 보유한 달러를 빌려 쓴 뒤 나중에 갚는 지극히 상식적인 경제 거래다. 이를 통해 시장의 달러 수요를 분산시켜 환율 안정을 꾀하는 것은 국가 전체의 이익에 부합한다. 과거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시행해 온 기법을 현시점에서만 유독 '위험한 동원'으로 묘사하는 것은 언론의 이중잣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커지면 자본이 대거 유출될 것이라는 가설 또한 데이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경제학적으로 금리 차이가 자본 이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이론적이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금리 역전이 반드시 대규모 자본 유출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없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일본은 수십 년간 0% 금리를 유지했음에도 해외 자본이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았으며, 한국 역시 금리 역전 현상이 지속되는 구간에서도 자본 유출입은 다른 변수들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강했다. 외환 시장은 단순한 금리 차이보다 국가의 펀더멘털과 심리적 요인에 더 크게 반응한다. 언론이 금리 역전을 근거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시장의 심리적 불안을 가중시켜 오히려 환율 안정을 방해하는 행위다.
현재 한국 경제의 진짜 위기는 '달러 부족'이 아니라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성장 잠재력 파괴'에 있다. 과거 네 차례의 1% 미만 성장기(오일쇼크, IMF, 금융위기, 코로나)는 모두 거대한 외부 충격에 기인했다. 그러나 최근의 성장률 하락은 멀쩡한 경제 상황에서 발생한 인재(人災)에 가깝다.
특히 12월 3일 계엄 사태와 같은 돌발적인 정치 리스크는 외신으로부터 'GDP 킬러'라는 혹평을 받을 만큼 한국 경제에 치명상을 입혔다. 2년 연속 80조 원에 달하는 세수 결손을 내고도 '건전 재정'이라는 수식어로 이를 옹호하던 언론이, 정작 필요한 민생 예산 집행이나 거시 지표 방어에는 위기설을 들먹이며 발목을 잡는 행태는 모순적이다. 소비 동향이 1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잠재 성장률이 꺾이는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의 역할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외환위기보다 더 무서운 실체적 진실이다.
대한민국은 1조 달러의 순자산을 보유한 부유한 국가다. 1,480원이라는 환율은 대외적인 환경과 자본의 흐름에 따른 결과물일 뿐, 국가 부도의 신호탄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근거 없는 위기론을 퍼뜨려 시장을 흔드는 언론의 공포 마케팅과, 지표상의 침체를 외면하는 정부의 무능이다.
환율 수치에 일희일비하며 과거의 트라우마를 소환할 것이 아니라, 기업의 부가 가계 소득으로 환류되지 않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고 내수를 살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공포 마케팅은 대중을 눈멀게 하지만, 냉철한 데이터 분석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이 된다. 위기설을 유포하는 이들의 정치적 의도를 간파하고, 한국 경제의 견고한 펀더멘털 위에 실질적인 성장 동력을 복원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경제 방역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