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철강 산업의 변동과 영향
일본제철은 2025년 6월 18일, 미국 철강기업 US스틸의 지분 100%를 인수하는 절차를 최종 완료했다. 2023년 12월 인수 계획 발표 이후 약 1년 6개월 만에 이루어진 이번 인수는 총 141억 달러(약 19조 4,000억 원)의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었다.
이로써 US스틸은 일본제철의 미국 뉴욕주 법인 산하 완전 자회사로 편입되었으며,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상장이 폐지되었다.
인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23년 12월 인수 발표 이후 미국 내 철강 산업 기반 약화 및 국가안보 우려를 이유로 미국 철강노조와 일부 정치인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2025년 1월 초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인수를 불허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월에 인수 재검토를 명령하고, 6월 13일 인수를 허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거래가 최종 성사될 수 있었다.
일본제철이 US스틸 인수를 추진한 배경에는 인구 감소로 내수 철강 수요가 둔화된 자국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전략적 판단이 있었다. 하시모토 에이지 일본제철 회장은 “45년 전 세계 1위 철강사였던 일본제철이 다시 정상에 오르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며 “미국과 유럽 거점을 동시에 확보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제철은 US스틸 인수를 위해 미국 정부와 ’국가안보협정(National Security Agreement)’을 체결하고, 다음과 같은 조건에 합의했다.
1. 미국 정부에 ‘황금주(golden share)’ 1주 발행
2. 2028년까지 미국 내에 110억 달러(약 15조 2,000억 원) 추가 투자
3. US스틸 본사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유지
4. 이사회 과반을 미국 국적 인사로 구성
5. 최고경영자(CEO) 등 핵심 경영진을 미국인으로 임명
특히 ‘황금주’는 이번 인수의 핵심 조건으로, 의결권은 없지만 본사 이전, 투자 축소, 고용·생산의 해외 이전 등 주요 결정에 대해 미국 대통령 혹은 지정자의 동의를 의무화한 강력한 거부권이 담긴 특별주식이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이번 인수가 자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이번 인수로 일본제철의 연간 조강 생산량은 기존 4,364만 톤에서 5,782만 톤으로 증가하며, 세계 철강 생산 순위에서 큰 변화가 예상된다. 세계 철강업체 순위 자체는 4위로 변동이 없으나, 3위인 중국 안강그룹(5,955만 톤)을 바짝 추격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일본제철은 향후 대규모 투자를 통해 US스틸의 생산량을 5,800만 톤까지 끌어올려 세계 2위 철강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세계 철강 산업은 지난 20년간 지속적인 통합 추세를 보여왔으며, 이번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는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2024년 3월 기준 세계 조강 생산량은 1억 6,610만 톤으로, 중국이 9,280만 톤(전년 대비 4.6% 증가)으로 가장 많은 생산량을 기록했고, 일본은 720만 톤(전년 대비 0.2% 증가), 미국은 670만 톤(전년 대비 1.5% 감소)을 생산했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는 미국 철강 산업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제철은 자사의 선진 기술을 US스틸에 이전하고, 2028년까지 11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내 생산 시설을 현대화할 계획이다. 이는 미국 철강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일본제철은 US스틸이 슬로바키아에 보유한 대형 제철소를 통해 미국과 유럽 양대 시장에서 전략적 거점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와 지역별 시장 대응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 정부가 ‘황금주’를 통해 경영에 일정 부분 관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일본제철이 향후 어느 정도 수익을 실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경쟁 구도 변화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는 한국 철강업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고급강 수요가 집중된 미국 내 자동차·가전 분야에서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제철의 기술력과 US스틸의 고품질 철광석 자원 결합은 고부가 강판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어 한국 철강업계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통상 규제와 원산지 규제가 동시에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제철은 이번 인수를 통해 현지 생산 확대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25년 2월 미국 정부가 기존에 협상된 국가별 면제와 쿼터 협정을 폐지하고 사실상 모든 철강 수입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현지 생산 기반을 확보한 일본제철의 경쟁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철강업계의 대응 전략
한국 철강업계도 미국 시장 내 경쟁력 확보를 위해 현지 생산기지 확대에 나서고 있다.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58억 달러(약 8조 2,300억 원)를 투자해 연산 270만 톤 규모의 전기로 일관제철소를 신설할 계획이다. 이 제철소는 직접환원철(DRI)부터 열연·냉연 생산까지 전 공정을 갖춘 미국 내 최초 전기로 일관 제철소로, 2029년 본격 가동될 전망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포스코가 현대제철의 미국 제철소 건설에 지분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국내 라이벌 철강사가 공동 투자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 강화에 대비한 선제적 대응으로 볼 수 있다. 포스코 역시 미국 내 상공정(제선, 제강, 압연 공정) 투자를 검토 중이며, ‘현지 완결형 투자’를 통해 관세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방침이다.
재무적 부담과 자금 조달 계획
일본제철은 US스틸 인수에 141억 달러를 투입했으며, 2028년까지 추가로 110억 달러를 투자해야 한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는 일본제철에 상당한 재무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제철과 US스틸의 유상채무를 합치면 총 5조엔(약 47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제철은 인수 자금을 단기성 자금인 브리지론으로 충당했으며, 이는 일반 대출보다 금리가 높다. 이에 따라 일본제철은 브리지론 차환을 위해 올 9월에 5,000억엔 규모의 하이브리드론을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증자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으며, 자산 매각도 병행할 계획이다.
산업 경제적 영향
이번 인수는 글로벌 철강 산업의 공급망과 가격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의 새로운 수입 정책과 관세 조치는 글로벌 철강 공급망을 교란시키고 철강 수요에 단기적 변동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의 과잉 생산 능력과 수출 증가로 인한 글로벌 시장 불안정성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는 미국과 일본 간 경제 협력 강화의 상징적 사례로, 양국 간 산업 협력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향후 글로벌 철강 산업의 지정학적 구도 변화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는 글로벌 철강 산업의 판도를 크게 바꿀 중요한 사건이다. 이번 인수로 일본제철은 미국과 유럽에 생산 거점을 확보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했고, 세계 2위 철강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에 ‘황금주’를 부여하고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는 등 상당한 양보를 한 만큼, 향후 경영 자율성과 수익성 확보가 과제로 남아있다. 또한 5조엔에 달하는 부채 부담을 어떻게 관리할지도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한국 철강업계는 이번 인수를 계기로 미국 시장 내 경쟁력 확보를 위한 현지 생산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현대제철과 포스코의 미국 내 투자 확대는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향후 글로벌 철강 시장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결국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는 단순한 기업 간 인수합병을 넘어, 글로벌 철강 산업의 구조 재편과 국제 통상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철강 산업 전반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