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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 통조림.

가끔 떠올리는 기억

by 비밥 Feb 02. 2025

평범했던 날.




사람이 죽는걸 처음 경험 한 건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였다.


신입생 OT를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마치 몇 년째 이곳을 거니는 듯 능구렁이처럼 움직였지만 다분히 의식적이었다. 행여 누군가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초점은 내리깔고 첫날 걸어갔던 길을 답습하며 애써 익숙함을 찾아댔다. 소심한 축에 끼는 건지 겁쟁이로 봐야 할지. 조종당하는 로봇처럼 늘 가던 길 보던 곳만을 따라 걸었지만 늘 그렇듯 대대한 놈인 척 빳빳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후일 '척' 하는 완성상의 보탬이 되었을 지도.


어쨌든 3월의 봄.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날. 어쩌면 걸음조차 재미없던 그런 날이었을지 모른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파인애플 통조림.




그간 대대하게 으스대던 나는 가짜였다. 눈물이 많았고 심지어 콧물은 더 많았다. 인간의 몸이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새삼 이해가 다. 눈과 콧구멍에서 쉴 새 없이 물이 쏟아져넘치고 남아서 그런지 잘 걷고 잘 일어선다.


그나저나 조금 헷갈린다.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이렇게 많았었나? 아주 어릴 때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간헐적이긴 했지만 성장에 따른 기억을 함께 한 날이 많았던 것도 같다. 아빠, 엄마는 늘 맞벌이로 바쁘셨고, 가까운 동네가 아닌 이상 친한 친구들 만나는 것도 여의치 않때였다. 알게 모르게 할머니랑 제법 많은 시간을 보냈었나 보다.


마음은 술로 달래고 눈물은 밥으로 달랜다.


울고 나면 허기가 지는 걸까. 콧물로는 배를 채울 수가 없다. 그렇게 먹어대도 배가 아쉬운 걸 보면 역시 밥 배는 따로 있다는 건가. 감정은 본능을 누를 수 없으니, 먹기 위해 산다는 말도 조금 일리가 있어 보인다. 많이 운만큼 많이 먹고 마신다. 


가만 보면 장례식장은 꽤나 단순하다. 울고 마시고 때론 웃고 먹는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자는 떠들어댄다. 고요함으로 적막할 것 같은데 은근 재잘거리고 꽤나 시끄럽다. 나쁜 건 아니다. 거기엔 슬픔이 있고 삶도 있고 죽음도 있고 아쉬움도 있다.


마음이 아프다는 건 무얼까. 질문보단 명제 같은 느낌인데 은근슬쩍 희미하고 모호하고 애매하다. 할머니라는 사람. 의미로 따진다면 슬픔의 중심인 걸까?..


할머니께선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게워내는 게 먹는 것보다 많았을 것이다. 어느 날은 핼쑥해진 얼굴로 환하게 웃으시며 파인애플 통조림이 드시고 싶다 했다. 간호사 몰래 한 통을 반입했다. 식단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셨고 거의 못 드셨겠지만 잘 먹었다는 후문을 남겨주셨다. 짐작으국물만 조금 드신 것 같았다.




중경삼림.




공교롭게도 영화 개봉 몇 달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왕가위 감독에 빠져있을 때라 할머니의 파인애플 통조림 부탁이 간간히 삶 속에서 감정의 오버랩을 불러오기도 했을 거다.


아주 가끔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는다. 얼마만인지도 모를 만큼 가끔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접할 기회가 생겨난다. 하지만 그때마다 할머니가 떠오르진 않는다. 빠져버린 눈물 콧물이 다시 채워진 건지 잡다한 다른 기억들로 메워진 건지 모르겠으나 맛에 대한 두어 마디를 주고받을 뿐이다.


기억의 조건반사도 삶의 여유에 따라 건망증 같은 속도로 처리되다 보니 추억의 당김이 영 기민하지가 않다.


간만에 파인애플 통조림 하나. 오늘은 중경삼림 스타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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