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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둥이 May 03. 2024

그거 참 별거 아니었네.


이사를 하고 한 달 만에 버스를 탔다. 몇 번 가족 모두가 차를 타고 나간 적은 있지만 혼자서 동네를 떠나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곳의 버스는 처음이라 다른 구역은 처음이라, 핑계 같은 걱정이 들었던 것도 잠시였다.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창밖을 보니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초록창에 출발지와 목적지를 설정하면 교통수단에 따른 안내가 상세하게 나온다. 로드뷰까지 더하면 처음 가보는 곳도 더 이상 모르는 곳이 아니다. 사실 그걸 알면서도 긴장이 된다. 혹시 지도상의 안내와 다르면 어떡하지? 쓸데없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오늘의 버스 투어(나름대로 큰맘 먹고 나간 거라 이름을 거창하게 지어봤다)는 목적지 정류장을 지나치는 아주 사소한 문제만 빼면 모두 괜찮았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일이었지만 꽤 오랫동안 생각해야 했고, 또 아주 다행이기도 했다.


내려야 하는 곳은 어떤 은행 앞이었는데 정확한 정류장 명칭을 알아놓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멍하게 밖을 보고 있는데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번 정류장은 ooo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전주한옥마을입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앞 정류장 이름은 뭐였더라? 난 한옥마을까지 가는 게 아닌데. 도대체 은행은 언제 지나친 거지?' 머릿속으로 혼자 생각하며 얼른 지도를 켰다. 다행히 목적지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풍년제과 본점이 보였다. 지도로 몇 번이나 봤던 외관이었다. 익숙함을 느낌과 동시에 방향치가 된 듯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길을 물어 방향을 잡고 다시 지도를 켰다. 몇 발자국 걷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까워서 당황스러웠다.


-버스투어 별거 아니네.


내가 하는 대부분의 걱정은,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면 그만큼의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문제 속에 있을 때는 그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 대담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잘 안된다.


남들보다 걱정이 많은 성격임에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해가 갈수록 고민의 시간이 줄어든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도 많아진다.


그동안은 10단계에 걸쳐 생각 회로를 돌렸다면 요즘은 7단계 정도로 가동 횟수가 줄었다. 그거 조금 낮아졌다고 별 차이 있을까 싶은데 티가 확 난다. 짜증과 화가 줄었다. 아등바등 화내고 소리쳐봤자 결국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밖에 더 남지 않을까.


마음이 편해지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빠르게 지나쳤던 주변의 풍경, 나를 향한 타인의 배려. 짜증스럽게 들렸던 동네 아이 우는소리마저 아름답게 들린다.


나는 또 언제 어떤 일로 머리를 싸매고 누울지 모른다. 하지만 예전처럼 마냥 누워있지는 않을 거다. 나가서 바람을 맞으며 꽃을 보고 세상을 느껴야지. 그리고 시간과 함께 걱정을 해결해 나갈 거다. '그거 참 별거 아니었네.' 하고 웃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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