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7. 뒷담화
Thursday, December 26, 2024
오늘은 박싱데이였다. 북미권에서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을 박싱데이라고 부르며, 블랙프라이데이처럼 큰 세일이 열리는 날이다. 공휴일은 아니지만, 일부 기업에서는 이 날을 쉬는 날로 지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름 의미가 있는 날이지만, 내가 일하는 Costco는 박싱데이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것 같다. 블랙프라이데이처럼 사람들이 몰려드는 날이 아니라서 그런지 매장은 오늘 생각보다 한산했다. 아무래도 Costco보다는 다른 전자제품 매장이나 소매점에 더 많이 사람들이 몰리는 것 같다.
오늘은 새로운 직원과 처음으로 같이 일하게 됐다. 들어온 지 일주일 정도 된 직원인데, 아직 서로 친해지지는 못했지만 일을 알려주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내가 먼저 일을 배웠으니, 이제는 새로운 직원에게 가르쳐 주는 입장이 됐다. 솔직히 이런 상황은 나에게 영어를 연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걸 영어로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회화 실력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업무적인 대화는 한계가 있다. 새로운 직원이 물어보는 것에만 대답하는 식이라 깊은 대화를 나누기는 어렵다. 그래서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예전에 내가 자주 썼던 방법을 떠올렸다. 바로 ‘뒷담화’다. 뒷담화를 한다는 게 꼭 좋은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와 가벼운 가십을 나누면 거리감이 확실히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가십을 하면 자연스럽게 대화도 많아지고, 분위기도 편해진다.
오늘 나는 새로운 직원에게 부서에서 있었던 일이나 다른 직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꺼냈다. 물론 없는 얘기를 지어내는 건 아니고, 내가 실제로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했다. 매니저 얘기도 하고, 내가 불만이 있던 직원 얘기도 했다. 그 직원도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웃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이런 대화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 이상이었다. 내가 이 직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도 줬다고 생각한다. 부서의 분위기나 조심해야 할 점들을 알려주는 차원에서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대화를 하면서 나도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다.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불만을 꺼내서 말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그렇다고 내가 이 직원에게 험담만 늘어놓은 건 아니다. 내 의도는 어디까지나 영어로 대화를 많이 하려는 데 있었고, 대화를 통해 서로 조금 더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오늘은 매장이 별로 바쁘지 않아서 수다를 떨면서 하루를 잘 보낸 것 같다. 아침에는 솔직히 일하기 싫어서 몸이 무거웠지만, 이렇게 새로운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씩 적응도 되고 워밍업도 된 느낌이다. 이제 다시 평소처럼 바빠질 테지만, 오늘 하루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오늘의 픽:
크리스마스 후유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