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전을 하며 가끔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있다. 2월의 출근하는 아침이 그랬다.
“나중에 내가 죽어서 저승사자 앞에 간다는 상상을 했거든. 근데 그 저승사자 아니 사신이라고 할게. 저승엔 죽은 사람의 일대기를 써놓은 책이 있는데 사신이 앉아서 그 사람의 삶의 기록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는 거지. 내 차례가 되어 사신 앞으로 가자 사신이 내 책을 성의 없게 보더니 참 재미없게도 살았네!라고 말하는 거야. 다른 사람에 비해 내가 참 삶을 이리도 재미없게 살았던가? 하는 생각이 스치는 거지. 물론 삶의 재미가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것은 아니야. 근데 그 책에 말이야 지방의 한 도시에서 38년간 교직에 몸담으며 일생을 보냄! 이렇게 쓰여 있는 건 너무 재미없는 거 아니겠어?” 이야기는 대충 이런 것이었다.
나는 교사다. 올해로 15년 차 초등교사. 한 해도 쉬지 않고 교직생활을 이어왔다. 내가 사는 지역은 도 지역인데 이 도에서 태어나 이 도에 있는 대학교를 나와 이 도에서 근무하고 있다. 심지어 내가 태어난 ‘도시’에서 계속 살고 있다. 참 편안한 생활이다. 복 받았다. 그런데 문득 나는 이런 오만한 생각이 들었다.
‘아, 무료해.’
‘후훗 그럼 어디 저기 서해안 쪽으로 보내줄까?’ 하면 기겁할 일이지만.
나는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진부한 것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교사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학교생활, 수업시간표라는 일정한 틀 속에서 교사가 만들어갈 수 있는 큰 자율성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느덧 학교생활은 익숙해져 큰 무리 없이 그 생활을 나름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주는 편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웃음, 관계 맺기 등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 나는 올해 6개의 희망한 학교가 모두 떨어지고 난생처음 들어보는 학교에 발령이 났다. 전교생이 약 50명쯤 되는 작은 학교다.
아는 선생님이 물었다.
“거기가 어디쯤이지? 뭐가 있는 데지?”
“음... 글쎄요.. 국밥집이... 하나 보였어요.”
뭐 어디 주변에 있다고 설명할 만한 것이 없는 그런 학교다. 이삭을 털고 노쇠한 벼를 다 베어버린 논 주위에 우뚝 서 있는 야트막한 2층 건물의 학교. 하늘과 논과 바람과 그리고 학교. 윤동주시인이 보았다면 이렇게 제목을 지었으리라.
6 학급 학교는 한 학년이 한 학급밖에 없는 학교로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멀리 살기 때문에 통학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한다. 같이 입학한 아이들은 꼼짝없이 6년 동안 같은 반이다. 14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학교다. 희망하는 학교는 아니었지만 나는 이런 학교에서 한 번은 근무하고 싶었다. 사람이 북적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맞는 학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학교에 발령이 난 것을 나는 하나의 ‘운명’으로 생각했다. 새로운 경험은 나에게 심심한 자극을 줄 것이란 생각과 함께.
그런 마음으로 나는 교실을 치우고 앉아 이전 선생님이 두고 간 스킨답서스의 이파리가 햇빛에 반짝이는 것을 보며 올해 아이들은 어떨지 상상해 보았다. 특별히 엄청 행복할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도록 했다.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우리가 만나게 된 건 꽤나 엄청난 ‘운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