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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밤 Mar 26. 2024

너를 보면 내 마음에 벚꽃이 핀다.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 반에는 글똥누기라는 글쓰기 공책이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 등교하면 조용히 글똥누기를 쓴다. 오늘의 글똥누기 주제는 ‘다시 태어난다면 ~~~이 되고 싶다, +이유’였다.

아이들은 들어오자마자 주제가 흥미로운 듯 작게 수군거렸다. 저번에 분노조절로 어려움을 겼었던 재민이(가명)은 이번주는 꾸준히 약을 먹는지 조용히 글똥누기를 써 내려갔다. 나에게 ‘임’ 자를 어떻게 쓰는지 묻기도 했다. ‘임’이라고 써주니 임이 아니라 ‘님’ 자라고 말해주었다.     


오늘은 전담수업이 없는 6교시다. 전담수업이 없는 날엔 사뭇 부담이 된다. 잠깐 숨 돌릴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반은 10명 내외의 학생들이라 대규모 학교의 약 30명 내외의 학생들보다는 마음의 부담이 적기도 하다. 우리 반 학생들은 나를 만나기 전부터 조금 걱정스러운 반이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2명의 ADHD학생, 1명의 특수아동 때문이었다. 지지난 주에 불같은 일들을 보낸 후 나는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지도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다행히 내가 베트남어로 어머님께 번역하여 몇 번의 문자를 보낸 끝에 재민이는 저번주부터 약을 복용하고 있다. 결국 ADHD 2명의 아이가 모두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이다.

     

2교시 국어시간이 끝나고 나서 쉬는 시간. 재민이는 말했다.

“선생님 우리 아파트에 꽃 폈어요.”

학교에 있는 벚꽃은 아직 앙상한 꽃봉오리라

“그거 매화 아닐까?” 하며 컴퓨터로 매화사진을 검색해 보여주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이 꽃이 아니라 하여 벚꽃을 검색해서 보여주니 벚꽃모양이 맞다고 한다.

신기하다. 몇 킬로 안 나는 재민이네 아파트엔 벚꽃이 폈는데 우리 학교 벚꽃은 아직 필 기별이 없어 보인다. 아닌가, 오늘 아침 스산한 봄비를 맞으며 출근해서 더 그렇게 보였으려나.     


오늘 점심시간에는 교무실에서 회의가 있었는데 점심시간에도 아이들 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인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빠지거나 담당자에게 건의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참석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교무실에 우리 반 아이가 찾아왔다.

재민이었다. 방방을 타고 싶다는 말에 “지금은 안 돼.”라고 말하며 나가자 교실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던 전교 아이들이 복도에서 사정없이 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서 교실로 들어가라고 하자 나는 절대 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도망가는 우리 반 만석(가명)이가 보였다.     


교실로 돌아가자 아이들이 앉아있었다. 우리 반 ADHD 중 한 명인 건민(가명)이가 소리치며 말했다.

“선생님 점심시간에 재민이가 철수(가명)한테 책 꺼내라고 했는데 철수가 어쩌라고!!라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래서 재민이가 어떻게 했니?”

“혹시 때렸니?” 하니

건민이가 좀 생각하다 말했다.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리고 그 옆에 재민이는 조용히 앉아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칠판에 그림을 그려 재민이가 그런 상황에서 1. 때린다. 2. 소리친다. 3. 무시한다.(그냥 넘겨버린다.) 이런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데 오늘 3번의 선택을 했다며 아이를 칭찬하였다. 그리고 재민이는 달라질 거라고, 앞으로 더 잘할 거라고 친구들 앞에서 공표했다. 재민이의 눈빛이 수줍게 빛났다. 그리고 3학년 아이들의 작은 눈에도 재민이를 다르게 보는 느낌이 들었다. 재민이는 정말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었다.

“선생님 오늘 다모임에서 한글 찾기라는 활동을 생각해 낸 것도 재민이에요.”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 오늘 전교생 다모임에서 결정된 활동을 글쎄, 소그룹에서 재민이가 생각해 낸 것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가만히 앉아있기도 힘들어하고 어디엔가 나가 숨어있었을 재민이가 말이다! 나는 그가 보여주는 발전의 모습을 눈으로 귀로 모두 기억해 두었다.      

 

아이들이 모두 간 후 두 건의 상담이 있었다. 상담을 마치니 약 4시였다. 피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아이들 글똥누기를 가져와 검사하는데 '어라?' 하는 내용이 있었다. 부슬부슬 봄비가 내려 스산했지만 벚꽃이 핀 듯 마음이 봄처럼 따뜻해졌다. 짧디 짧은 재민이의 글똥누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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