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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밤 Mar 15. 2024

욱신거리는 팔뚝을 주무르며

너는 원래 착한 사람이야.

신기하다. 주말 내내 마음이 불편했었는데 두부 하나로 마음이 싹 풀렸다. 우리 학교 청소여사님이 아침부터 집에서 손수 두부를 만드셔서 가져오셨다고 했다. 아이들을 두고 교무실이나 연구실에 오래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마음이 걸렸지만, 따끈하고 탄탄한 밀도를 가지고 있는 두부에 짭짤한 김치를 얹어 맛보고 나니 ‘이야~ 너무 좋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란 사람 참 단순하다. 두부 하나에 이 학교의 매력지수가 급히 올라갔냐?라고 비웃는다면 사실 이건 그냥 두부가 아니었다. 온 학교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웃음을 나누는 모습을 보니 나처럼 정 없는 개인주의자의 마음에 ‘아~ 따뜻해.’란 생각이 들어온 것이다.     


우리 반에는 여러 다문화 아이가 있다. 부모님 중 한 분이 베트남, 일본, 중국, 미국인 아이들인 경우다. 베트남 어머님을 둔 학생은 1학년에 전학 올 때부터 전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들을 모두 한 번씩 때렸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을 가졌는데 ADHD약을 먹으며 다행히 괜찮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 제출한 건강조사서에는 약을 안 먹고 있다고 적어 학생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였는데...     


이번주 월요일 영어시간에 게임을 하다 뒤에 서있는 학생의 뺨을 때리고, 수요일 체육시간에 술래잡기를 하다 자기가 아웃되었는데 다른 술래가 자기를 또 터치했다며 온갖 체육도구를 때리고 긁었다. 하물며 피구를 할 때 그를 챙겨주기 위해 내가 던져준 공이 그의 얼굴을 맞자 바닥에 있는 접시콘을 발로 쿵쿵 밟기도 했다. 목요일에는 영어시간이었는데 알파벳 숨기기 놀이를 하자 다른 팀 친구가 반칙을 했다며 화가 났는지 급식시간에 친구를 때리려 하고 급식을 먹고도 여러 곳에서 난리를 부리다 운동장에 다른 선생님에게 잡혀있었다. 아이는 무슨 말을 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상태로 분노하고 흥분해 있었고 남자선생님은 아이 몸을 뒤에서 잡고 진정시키고 있었다. 담임인 내가 교실로 데려가려 하자 아이가 온 힘을 다해 내 손을 뿌리치려 했다. 가까스로 아이를 교실로 데려왔지만 아이는 온몸에 힘을 주고 내 손을 벗어나려 했고 나도 젖 먹던 힘을 다해 아이를 놓칠 수 없었다. 한 손이 벗어나자 아이는 내 책상에 있던 종을 집어던졌다. 교실을 들어오려던 아이들은 상황을 본 후 문을 조용히 닫았다. 아마 옛날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온몸에 힘을 주고 있던 아이의 얼굴에 땀이 주루루룩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계속 안간힘을 쓰며 나의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하지만 나 또한 이 아이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약 20분 정도 아이에게 선생님은 너를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다. 라며 힘을 빼라고 얘기하자 아이는 의자에 앉아 힘을 풀었다. 목이 마른 듯하여 물을 주니 꿀꺽꿀꺽 마셨다. 뭐가 그리고 속상했냐고 하니 칠판에 ‘오이’라고 적었다. 영어시간에 오이팀이 반칙을 써서 아직 속상하다는 것이다. 다 이해해 주었다. 그리고 옳은 말도 해주었다. 큰 화산의 폭발이 잠잠해지듯 아이는 내 말을 모두 수용했다. 그리고 눈물을 닦고 친구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5교시를 시작해야 하는데 온몸이 아팠다. 체구가 작아도 분노하는 아이의 힘은 엄청난 것이어서 그걸 제압하는 과정에서는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때 아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아이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화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태였다. 분노조절이 어려웠다.

끝나고 나는 당장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지만 나는 베트남 어머님의 말을, 어머님은 내 한국말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버님한테도 전화를 걸었지만 아버님은 가정폭력으로 어머님과 따로 살고 있는 형편이었다. 나의 말을 전달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주양육자는 어머님이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파파고에 넣어 베트남어로 변환하였다. 혹시나 어머님의 마음이 상하지 않을지 몇 번이나 검토했다. 워낙 내용이 길어서 4개의 문자로 변환하여 보냈다.

그리고 2분 만에 답이 왔다. 약을 먹이겠다고.    

 

오늘 아이가 왔다. 아침에 아이의 모습은 다소 침잠해 보였다. 그러나 수업준비를 일등으로 했고, 수업 전 오늘 배울 부분의 책을 펴고 있었다. 눈은 살짝 공허해 보였으나 수업 에 손을 들고 발표를 하고 학습활동을 잘 따라왔다.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였던 혼잣말도 거의 없었다. 약이 효과를 보였다. 그리고 3~4교시 전담수업이 끝나기 5분 전. 전담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전담선생님의 전화는 늘 두렵다. 좋은 일로 얘기를 나누기보다는 늘 지도할 내용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OO이가 오늘 집에 가고 싶다고 소리를 질렀다는 내용이었다. OO 이는 우리 반 또 한 명의 ADHD 학생이다. 이 아이도 과학시간에 속상한 일이 있었다. 다행히 자기 마음을 잘 털어버리는 연습이 되어있어서 내 말을 이해하고 밥을 먹는 모습을 보였다.

    

퇴근 후 베트남 어머님께 아이의 오늘 학교생활을 베트남어로 번역해 보내드렸다. 어머님은 아이가 약을 먹으면 감정이 없어 보인다고 걱정하셨다. 증상을 말하고 약을 변경할 수 있다고 하니 한국말이 어렵다고 한다. 하긴 다른 나라에서 다른 나라 사람을 만나 애를 키우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싶다. 낯선 나라의 교사가 하는 말도 정말 우리 아이를 위한 것이 맞는 건지 의문스럽지 않을까. 나는 정확한 정보와 소통으로 그 마음을 안심시켜줘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전완근이 뻐근했다. 어제 아이와 대치한 상황 때문이었다. 누구한테 말은 못 하고 욱신거리는 팔을 주무를 수밖에 없었다.

문득 생각났다.  

“엄마가 착해지려면 약 먹어야 된다고 했어요.”라고 아까 아이가 말했다.

“너는 원래 착한 사람이야. 화가 날 때 도움을 받으려고 약을 먹는 거야. 선생님처럼.” 하며 나는 나의 디스크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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