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재밌는 일 없었어?"
"없었어."
"그냥 어떤 사람의 무슨 행동이 우스웠다던가, 어떤 말이 기억에 남는다던가 그런 거 같은 거 말이야."
"음... 없었어."
전 남자친구는 이해의 반경이 넓은 사람이었지만 이 질문에는 단호했다. 그는 아침 7시부터 저녁 8~9시까지 자주 야근을 했고 내가 그의 회사생활에 대해 질문했을 때 그는 늘 이렇게 답했다. 이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그에게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아무런 재미가 없는 곳에서 그리 오랜 시간을 일한다는 그 괴로움을 오롯이 이해할 수 없었다.
"회사 다니는 사람들 중에 자기 일을 그렇게 재밌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지인은 그렇게 말했다. 일은 재밌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이라고,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의문이 있었다. 하나 재미도 없는 일에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한다면 그 일을 오래 할 수 있을까?
택시를 하는 우리 아빠는 회사에서 정해준 약 25만 원 정도의 입금을 내고도 10~20만 원 정도의 수입을 늘 벌어오시는데 말이 쉽지 24시간 운전을 한다는 것은 정말 고된 일이다. 그럼에도 아빠는 휴일도 필요 없다는 듯 일을 나가는 워커홀릭이다. 아빠는 어느 회사를 가 달라는 손님에게서 그 직장에 대한 정보를 듣기도 하고 변호사가 타면 자신이 궁금했던 분야에 대한 법률자문을 얻기도 하고 임용고사를 보러 갔다 오는 손님이라면 자기 딸과 아들이 교사라며 자랑도 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말이야, 택시가 재밌어.”
사람은 재미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일은 일이고 재미는 일 외에서 찾으면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일도 재밌고 싶다면 그건 욕심일까. 지금은 많이 사라져 버렸지만 나도 이 일이 재미가 있었다. 아이들을 만나 첫 단체사진을 찍으며 잘 나왔다고 뿌듯하기도 하고, 연수에서 알게 된 내용을 아이들과 함께 할 생각에 신이 나기도 하고, 하물며 내가 맡은 업무가 수월하게 진행되었을 때의 뿌듯함과 성취감 속에서 ‘재미’라는 맑은 샘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것은 내 인생을 생기 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었다.
작은 학교 첫 주의 생활은 아침마다 내 눈꺼풀이 얼마나 무거운지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어느 학교든 3월은 매우 매우 바쁜 달이기에 특별히 우리 학교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첫날 나에게 접수된 약 20개의 공문을 보며 참으로 생경한 느낌을 받았다. 기한도 금주까지인 여러 공문을 뒤로한 채 부랴부랴 회식을 가 낯선 동료와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은 디멘터처럼 나의 에너지를 쏙쏙 빨아들이는 느낌이다.
아이들은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귀여웠고 순수했고 아이다웠다. 나는 늘 피곤했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 앞에 섰다. 잠시 아이들에게 과제를 주고 앉아 약을 먹는데 우리 반에 있는 외국인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토실한 볼살을 들어 올리며 빙긋 웃자 그 아이도 화답하는 듯 빙긋했다. 그럴 때 뭐랄까. 마치 텔레파시가 웃음이라는 길을 타고 통하는 것 같다.
그리고 쉴 새 없이 한주가 갔다. 솔직히 말하면 한 주가 한 달 같았다. 이 학교에서 일 년을 보낼 수 있을지 아득하다. 재미를 찾는 건 사치일지도 모른다. 겨우 7명의 교사가 한 학교의 업무를 무겁게 짊어지고 있는 현실에서는.
재미라는 맑은 샘물은 이제 나에게도 깡그리 말라버린 줄 알았는데, 오늘 하나 찾았다. 처음 만난 영양선생님께 말했다. “급식이 너~무 맛있어요.” 다소 촌스러운 색깔의 가운을 입은 영양선생님이 수줍게 웃었다. 앞으로 나의 재미는 우리 학교 식단을 살펴보는 것.
그래, 먹는 게 남는 거라는데, 그거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